가톨릭중앙의료원 류옥하다 전공의

지난 26일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의료의 미래를 바꾸는 제2차관-전공의 대화’에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전공의 대표 자격으로 현장에 참여했다. 간담회는 '현장-zoom'으로 동시에 진행됐고, 위치적 여건상 현장에는 대부분 수도권 전공의가 주를 이뤘다. 지방에서 상경한 전공의는 본인 한 명인 듯했다. ​

서울성모병원 류옥하다 인턴
가톨릭중앙의료원 류옥하다 전공의

이날 복지부는 구체적이지 않은 계획과 모호한 답변만 내놓아 아쉬움이 많았다. 이 자리가 단지 의료정책을 강행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몇 동료 전공의들은 현장에서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화상 채팅으로도 항의가 나왔다. 개인적으로도 착잡하고 답답한 순간 많았다.

간담회 후 여러 커뮤니티와 SNS에는 요약본이라거나 이를 정리한 카드뉴스가 돌아다녔다. 대부분 필수의료에 닥친 위기에 대한 현장의 진심어린 탄식과 고민들이었다. 그러나 일부 게시글은 맥락에 맞지 않는 발언들을 모아 악의적으로 편집하거나 심지어는 간담회에서 나오지 않았던 발언과 주장들이 적혀 있기도 했다. 복지부 관계자에게 들었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었다. ​

하지만 냉철해야 할 때이다. '가짜뉴스'는 거르고 핵심에 접근해야 한다. 의사들도 체감하는 필수의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필수의료의 위기는 사법 리스크로부터 시작

​합병증이나 사망 위험이 크더라도 환자 예후에 좋은 방향이라면 실패를 무릅쓰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 의사다. 그러나 기껏 고난도 치료를 시행했음에도 환자에게 장애가 발생하거나 사망할 경우 가족들은 책임 대상을 찾기 마련이고 그 대상은 의사가 되기 일쑤다.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로 수십억원을 배상할 책임에 놓인 산부인과 의사,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해 형사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한 응급의학과 전공의, 기관삽관을 했는데도 15분간 '기록'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억원원을 배상할 상황에 처한 의사까지 있다. 이러한 사법부 판단에 현장 의사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소송 결과나 그 과정을 바라보는 소비자환자단체, 법원과 의사 간의 시각에는 괴리가 있다.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가 예상되더라도, 피소당한 의사 입장에서는 재판에 출석하고 증언하고 수년에 이르는 지난한 소송 과정에 지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과실이 없어도 일단 합의하는 의사들이 상당하다고 알고 있다.

"의사에 대한 완전한 면책 특권은 불가능"

하지만 일부 의사들이 주장하는 완전한 면책 특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법으로 면책 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대통령, 국회의원, 외교관과 같은 특수한 경우다. 국회의원도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시대에, 의사에게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약 남용, 성폭행 의사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큰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무리다.

그러나 필수의료에 대한 사법적인 부담 완화(de-risking)는 반드시 필요하다.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소송을 남발한다면 그 어떤 의사가 필수의료 분야에 남겠는가. 어떤 새내기 의사도 정신적인 고통, 지난한 소송을 향해 바보같이 걸어들어가지 않는다. 복지부도 이런 우려를 일부 공감하고 있었다.

복지부의 '사법 안전망' 대책, 방향은 현실적이고 합리적

복지부는 간담회에서 '교통사고 특례법'을 모델로 한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 법제화'를 제안했다. 교통사고는 애초에 구조적으로 의료사고와 유사하다. 자격 요건을 가진 이들에게 독점적으로 면허가 주어지고, 과실이 없더라도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며,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과실이 있는 사고도 언제든 발생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의료사고와 달리 교통사고에서는 형사처벌이 이루어지거나 민사소송이 매번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은 '교통사고 특례법'이 있어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운전자에게는 12대 중과실을 비롯한 주요한 과실이 아닌 이상 형사책임을 면제하기 때문이다.

정말 중한 과실을 제외하고는 형사 처벌을 면책하게 하는 대신 보험사가 합의나 보상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필수의료 의사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런 사법 안전망 대책은 상당히 실현 가능하며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

"'정부 주도의 의무 종합보험'은 의료 형평성에 기여"

복지부는 간담회에서 미용시장, 비(非)필수의료, 필수의료 등 모든 의사가 참여하는 정부 주도의 의무 종합보험을 제안했다.

미용시장도 결코 소송과 형사처벌에서 예외가 아니다. '쁘띠성형' 도중 사망 사고가 발생해 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피부 관리에 따른 부작용으로 상당한 금액을 배상하기도 한다. ​그렇다 한들 본질적으로 비급여 시장은 저위험-고수익이고, 필수의료 분야는 고위험-저수익이다.구조적으로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위별수가제 제도 내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균형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 의무 종합보험'이 신설되면 의사 집단 전체의 위험성을 평탄화시키며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미래 의사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배상 리스크'를 제거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를 위한 기금도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모든 의사'가 '의무적'으로 참여한다는 명분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쏟아지는 가짜 뉴스들을 보며

복지부의 행태는 분명 답답한 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의사로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의료서비스 전체를 구성하는 소비자단체, 대한병원협회, 환자단체, 보건의료노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민 여론과 VIP(대통령) 의중까지 더해지면 이들의 행보는 고난도 외줄타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복지부는 붕괴하는 필수의료를 개선하면서도 여론을 우호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만한 정책들을 개발하고,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분명 합리적으로 고민한 흔적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거시적으로 보지 못한 채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집중해 진의를 왜곡하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 우리가 지향하는 '합리적인 전문가 집단'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 의사 스스로 가짜 뉴스를 걸러내고 실행 가능한 계획을 위해 복지부, 환자 단체, 노조, 나아가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필수 의료에 닥친 위기가 해결되길 바란다.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가 없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받아줄 응급실이 없어 뺑뺑이를 돌다 사람이 죽지는 않기를 소망한다. 의사가 소송이 두려워 수술을 망설이고, 손해배상이 두려워 사명감을 내려놓는 일이 사라지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 생명의 최전선에서 노력하는 모든 분야의 의사들이 정의로운 대우를 받고, 인정받으며 존경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 동료들이 다른 이들에게 과장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고, 대화하고,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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