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욱 미래의료포럼 상임위원
며칠전 있었던 보건복지부 차관과 전공의 간담회 후 후기 형태로 쓴 한 전공의의 칼럼을 봤다. 정부의 사법 리스크 완화 정책에 대한 환영의 뜻과 그에 대한 일부 의료계의 반발 의견에 대한 질타가 섞인 글이었다. 양비론일 수는 있으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정부의 사법 리스크 완화 정책은 어디 까지나 형사 처벌과 관련된 부분에 국한된다. 민사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제외된 정책이다. 복지부 차관이 언급한 전제 조건, 의료진의 ‘진심 어린 사과’는 민사소송에 있어 매우 큰 부담이 된다. 이 부분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부가 제시한 사법리스크 완화 정책은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과 같다. 의무적으로 책임 보험에 가입하면 형사 처벌을 면제 혹은 감경 해주도록 하는 것인데, 문제는 전제 조건이 사과이다.
예를 들어 나의 차는 도로에 정지해 있는 상태에 있었음에도 시동이 걸려 있었다면 보행자가 지나가다 부딪혀도 사고이고, 나의 잘못이 없어도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는 인사 사고에 대한 형사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나는 잘못이 없지만 사과를 했으니 이 보행자가 민사 소송을 통해 대인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응해야 한다.
물론 자동차 사고의 경우 과실 유무에 따라 손해배상이 달라진다. 하지만 의료의 경우 과거 판례에서 보듯 의사 또는 의료진의 과실이 없다 하더라도 정신적 피해 보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과실 유무를 떠난 진심 어린 사과를 전제로 한 사법리스크 완화 정책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의료는 망가진 생명의 균형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결국 죽음으로 간다. 다시 말하면, 의료가 개입하지 않으면 기능을 잃거나, 생명을 잃는 즉,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입하는, 의료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가.
우리나라 필수의료가 사법 리스크로 인해 망가진 이유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들어갔는데 못 구했다고 살인자 누명을 씌우기 때문이다. 살인자 누명을 씌우고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한다. 살인자가 되고 얻지도 못할 보따리까지 내놓는 것보다는 차라리 구하러 들어가지 않는 편이 낫다.
정부가 내세운 사법 리스크 완화 정책은 의사들은 돈을 많이 벌고 있으니, 살인자는 되지 않게 해 줄테니 대신 손해배상 즉, 보따리를 더 많이 내놓으라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정책을 볼 때는 그 정책을 적용받는 대상과 그 대상이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측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사과를 받았다고 해서 감정적 해소와 위안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통사고가 나면 일단 드러누워 입원하고 보는 것처럼 소송과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형사 처벌이 줄어든다면 반대로 민사 배상 요구가 늘어나게 된다고 봐야 한다.
다시 돌아와서, 의사가 사과하지 않아 형사 처벌을 위한 소송이 증가한 것인가. 의사가 사과했다면 형사 처벌을 위한 소송은 하지 않았을 거란 말인인가. 복지부 차관이 제시한 사법리스크 완화 대책은 문제의 원인과 맞물리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의료정책들이 그래왔다. 언뜻 보면 맞는 정책인 듯 싶지만 뜯어보면 전혀 맞지 않는 그런 정책들. 책상에 앉아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내놓는 정책들에 의사들이 반대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머리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내놓는 정책이 만들어 낸 폐해가 의료 현실이다.
복지부 차관은 말한다. 의사가 사과를 먼저 한다면 정부는 형사 처벌을 면제해 주거나 감경해 주겠다고. 그렇다면 민사 소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해결해 주는 척하고 국민끼리 더 싸우도록 부추기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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