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도 분류 개편 앞두고 고도화된 기준 마련 필요성 대두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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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상급종합병원(이하 상종) 구조전환 시범사업으로 당뇨병, 특히 중증 당뇨병 환자들의 진료 환경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종 구조전환 시범사업은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상종이 집중할 수 있도록 중증진료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지역 및 병상 규모에 따라 일반병상을 5~15% 감축하는 내용이 골자다. 또 상종과 진료협력병원 간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숙련된 전문의 중심의 인력 배치를 통해 전공의 수련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만성질환 환자들이 상종에 몰리는 현상을 완화하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현행 중증도 분류 체계의 한계로 인해 당뇨병 환자들의 상종 진료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의료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증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 상종에서의 진료가 제한되거나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실제 환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증 프레임'에 갇힌 당뇨병…실제 중증도와의 괴리

현재 당뇨병은 정부의 일차의료 중심 만성질환 정책 기조 하에서 '경증' 질환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2011년 2형 당뇨병을 포함한 51개 상병을 의원 중심의 역점질환으로 지정하면서 본격화됐다. 이때 상종에서 해당 질환으로 진료받는 환자에 대해 약제비 본인부담률을 최대 50%까지 상향 적용했고, 이후 의료계의 반발로 일부 조건에 대해 차등 적용이 완화됐으나 당뇨병의 경증 프레임은 그대로 유지됐다.

2016년에는 합병증을 동반한 2형 당뇨병이 경증질환 지정에서 제외됐지만, 본인부담 차등제도와 같은 정책은 여전히 상종 진료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합병증이 없는 당뇨병 환자가 상종에서 외래 진료를 받을 경우 본인부담금이 100%에 달하고, 인슐린 투여 등 전문적 교육상담은 비급여로 분류되어 환자 부담이 크다. 반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당뇨병 진료 시 본인부담 경감, 교육수가 제공 등 각종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입원 환자 진료에 있어서도 문제는 이어진다. 현행 중증도 분류 체계 상, 당뇨병은 아무리 심각한 합병증을 동반하더라도 '일반/단순진료질병군'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당뇨병성 케톤산증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급성 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더라도 '중증(전문진료질병군)' 진료로 인정되지 않으며, 이는 상종의 지정 평가 및 수가 정책에서 불이익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당뇨병을 전문으로 다루는 전임의 수가 감소하고, 해당 분야 전문성도 약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학제 협진과 정밀 진료 요구…중증도 기준 재설계 절실

당뇨병은 실제로 고혈압, 고지혈증, 심혈관계 질환, 망막병증, 신부전 등 다양한 합병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합병증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검사와 다학제 협진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상종의 역할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재는 단순히 합병증 유무로 중증·비중증을 구분하고 있어, 실질적인 치료 필요성이 중증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비중증으로 간주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증도 분류 체계가 단편적이지 않게 환자 상태를 다차원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일차의료 기관에서 오랫동안 진료를 보았음에도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는 환자 ▲췌도부전 등 인슐린 저항성 및 베타 세포의 기능 장애/사멸이 나타나 인슐린 투여가 필수적인 환자 ▲합병증은 없으나 높은 혈당 수치로 초기에 적극적으로 혈당 조절이 필요한 환자 등도 상종에서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당뇨병 환자가 수술을 앞둔 경우, 당뇨병 전문의의 협진 없이는 수술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혈당 조절 실패 시 수술 후 합병증이나 사망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당뇨병 환자 중에서도 중증으로 분류돼야 할 임상적 필요성이 높은 환자군이 존재함은 분명하다.

대한당뇨병학회 차봉수 이사장
대한당뇨병학회 차봉수 이사장

대한당뇨병학회 차봉수 이사장(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기존 당뇨병 분류에서 1형은 중증, 2형은 경증이라는 인식의 폐해가 있었다"라며 "최근 당뇨병 분류의 국제적 트렌드는 3개의 중증 및 2개의 경증 그룹, 총 5종류의 당뇨병 클러스트로 구분하는 것이다. 환자 맞춤형 치료 실현이 가능해짐에 따라 우리나라도 상병 기준이 아닌, 연령 및 기저질환 등 환자 상태가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당뇨병학회는 2024년부터 중증 당뇨병 TFT(Task Force Team)를 구성해 병태생리 기반의 정의 및 분류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정부의 중증도 분류체계 개편 논의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증 당뇨병 환자들의 진료 환경 개선과 상종 내 치료 체계 유지가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도 이에 대한 우려를 인지하고 있으며, 단순 상병 기준이 아닌 환자의 상태를 반영한 중증도 분류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기준과 실행 방식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환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정밀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상종 구조전환은 의료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갖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뇨병을 포함한 만성질환자의 진료 공백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경증'이라는 이름 아래 진료 접근성을 잃고 있는 환자들의 목소리에 정부와 학계가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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