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대 의협 회장 후보 지지자 칼럼]
미래의료포럼 발기인 조성윤 신경외과 전문의

혼란한 정국이다. 의대 증원 사태로 1년 가까이 한국 의료는 혼돈에 빠져있다. 사태 해결은커녕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놓였다. 이보다 앞서 의료계는 대한의사협회장 불신임(탄핵) 상황을 겪었다. 그리고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는 보궐선거를 시작했다. 제43대 의협 회장 후보는 5명이다. 이들 중 한 명이 이 혼란한 정국을 타개해야 한다. 이 글은 각 후보 지지자가 생각하는 ‘그가 의협 회장이 돼야 하는 이유’다. 글은 보내온 순으로 게재된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투쟁 당시 나는 의대 3학년 학생이었다. 모교는 의대 학생회도 따로 없어서 중학교 주번처럼 복사비나 걷고 교수님 전달사항을 공지하는 게 내 일이었다. 그렇게 평범한 대학생이던 내가 자퇴 투쟁을 이끌며 투쟁 전면에 서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주수호 후보와 인연을 맺은 의약분업 투쟁 당시 조성윤 전문의(사진: 본인 제공)
주수호 후보와 인연을 맺은 의약분업 투쟁 당시 조성윤 전문의. 조 전문의는 당시 전국의대생비대위 부대표였다(사진: 본인 제공)

의대생 중앙 조직이 만들어진 뒤로 각 학교 의학과 3학년이 비대위원장직을 하고 근처 학교끼리 정책국·투쟁국·조직국 등을 나눠 맡게 되었다. 학생회가 없던 우리 대학은 어쩌다 보니 내가 대표자가 됐다. 그리고 엉겁결에 의대생 중앙 조직 부위원장이라는 직책까지 맡았다. 그렇게 '참의료실현을 위한 전국 의대생 비상대책위원회'가 세워졌다.

자퇴 투쟁으로 수개월간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 나는 대한의사협회 회관 근처에서 합숙하며 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24년 전에도 학교를 떠난 학생의 힘은 대단했다. 선배 의사는 교정을 떠난 의대생에게 상당한 부채의식이 있었다. 이에 나는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에서 중앙위원으로 교수 비대위원장과 나란히 앉아 발언권을 얻게 됐다. 의협 회원도 아닌 의대생이 의쟁투 중앙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당시 의쟁투 대변인 역할이 컸다. 그 대변인이 바로 주수호 후보다.

의약분업 투쟁은 반쪽짜리 성공으로 끝났고 4학년이 돼 한창 내과 실습을 돌던 때였다.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서 연락이 왔다.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죄목은 공정거래법 위반인데 공안부로 조사받으러 오라니…. 부모님께 알리지도 못하고 서초동에서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의사못하게 만들겠다'며 담당 주사가 협박도 했지만 다행히 무혐의 처분을 받고 무사히 졸업했다.

차마 부모님께 알리지 못하고 검찰 소환 조사를 받게 된 내가 사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 사람도 주 후보다. 본인도 의쟁투 대변인 활동으로 처벌받을 상황이었는데 내가 힘들지 않도록 많은 조언을 해줬다.

사실 2000년 투쟁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커서 의협이라면 그 근처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래도 주 후보와 인연은 계속 이어졌고 지난해 창립한 미래의료포럼에도 흔쾌히 참여했다. 주 후보는 늘 의사가 하나가 되면 얼마나 큰 힘이 생기는지 우리 스스로 먼저 알아야 된다고 했다. 의대생 시절 이를 실제 체감했고 그 말에 무한히 공감해 포럼에 참여했다.

지난 제42대 의협 회장 선거에서도 나는 주 후보를 응원했다. 음주 사망 사고라는 큰 과오가 있는데도 응원한 이유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지금이 평시가 아닌 전시 상황이고 전쟁에서 이기려면 가장 잘 싸우는 장수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장수는 주 후보다.

24년이 지났지만 의약분업 투쟁과 지금은 꼭 닮았다. 그만큼 의료계에는 의대생과 전공의를 아우르고 포용할 수 있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주 후보 주위에는 의대생과 전공의, 교수, 봉직의, 개원의 등 각 직역 인물이 몰리고 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현재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리더는 '주수호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의사를 하나로 이끄는 힘을 가진 주 후보를 우리의 리더이자 의협 회장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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