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인력난 극심…후진 양성도 어려워
감축한 내과 전공의 정원 700명 회복 시급
"필수의료 관점에서 내과 위기 다룰 때"
흔하지만 꼭 필요한 존재를 산소에 비유한다. 존재가 너무 당연해서 숨이 부족한 절체절명의 순간에야 산소 귀한 줄 안다고도 한다.
내과가 그렇다. 필수의료 한 축이라고 부르지만 지원 정책에서는 뒤로 밀려났다. 내과는 "아직 버틸 만하고" 내과는 "여전히 널리고 깔렸다"는 '산소 같은' 인식 때문이다. 사건사고 뒤를 쫓는 정부 지원 정책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를 한 바퀴 돌 때까지 내과는 순번을 받지 못했다.
곧 우리 사회가 '내과 귀한 줄 알 때'가 온다. 심장 질환을 다루고 암 환자를 보고 응급수술 후 회복기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이 대학병원을 떠나고 있다. 뒤를 이을 젊은 의사도 없다. 다른 필수의료 전문과처럼 내과도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는" 문제를 똑같이 겪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추계학술대회장에서 만난 대한내과학회 박중원 이사장(세브란스병원 알레르기내과)은 이를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3차 병원에서 의사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비수도권은 물론 수도권조차 교수 구하기 어렵다. 3차 병원이 중환자 진료를 못 한다. 남은 교수들도 힘들다고 한다. 진료하면서도 이게 맞는지 고민한다. 대학병원은 메리트가 사라졌다. 교수는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내과 의사는 줄어드는데 환자는 점점 늘고 있다. 암병원은 포화 상태고 환자들은 두세 가지 질환을 함께 앓는다. 오는 2025년 예정된 초고령사회는 고령층 만성질환자 '쓰나미'를 예고하고 있다. 내과는 말 그대로 "숨이 가쁜 상황"이다. 내과학회가 전문의를 안정적으로 배출하는 선순환 구조 회복을 위해 지원 정책을 요청하는 이유다.
해법 중 하나로 내과 전공의 정원 복원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600명 초반대인 배정 인원을 이전의 700명까지 다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내과 인력난이 모든 직역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학회는 정원 증원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와 맞물려 내과 수가 정상화와 의료전달체계 개선도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의사는 내과학회 임원진에게 현재 "턱 밑까지 밀려온" 내과 위기 상황과 그 대책에 대해 들었다.
이날 박 이사장과 진행한 인터뷰는 학회 강석민 총무이사(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와 김석진 홍보이사(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가 함께했다.
- 내과학회가 나서서 내과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학회 임원에 앞서 내과 의사로서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강석민: 외래 환자는 전날 미리 전자의무기록(EMR)을 보고 진단명이나 복용 약을 파악한다. 환자 모두 중증도가 높고 처방이 복잡하다 보니 이렇게 안 하면 당일 진료를 소화하기 어렵다. 교수는 물론 주니어 스태프들도 다 이 작업을 한다. 환자 중증도가 지난 10년 전보다 높아졌다. 심장내과 환자가 당뇨와 고혈압에 암까지 기본으로 같이 간다. 앞으로 10년 뒤는 중증도가 여기서 더 높아질 거다. 대체 환자를 어떻게 봐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김석진: 혈액종양내과 환자 쏠림이 극심하다. 하루에 90명씩 보기도 한다. 이전이면 입원했을 환자도 자리가 없으니 외래로 돌린다. 내 앞에 있는 환자는 암 환자다. 암 환자를 정말 이렇게 진료하는 게 맞나 싶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박중원: 병원이 암 환자를 알레르기 환자 보는 속도로 보고 있다. 처음 그 광경을 목격하고 뇌리에 박혀 떠나지를 않는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 최근 다수 전문과에서 교수가 대학병원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후진 양성도 어렵다고 한다. 내과도 그런가.
박중원: 그렇다. 대학병원 교수가 더 이상 메리트가 없어졌다. 젊은 교수를 중심으로 대학병원을 떠나고 분과 전문의 배출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강석민: 분과 선택 기준이 이제 편한 근무다. 심장내과 펠로우를 마치고 소화기내과 펠로우로 옮긴 경우도 봤다. 내시경 검사가 시술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심장내과 분과 전문의 수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다.
김석진: 혈액종양내과 신규 전문의가 한 해 20명밖에 안 나온다. 이제는 이마저도 혈액암을 보는 의사는 한두 명 수준이다. 분과 전문의도 줄고 있다. 대학병원 내과 모든 분야가 더 이상 선순환 구조로 돌아가지 않는다. 새로운 인력은 채용되지 않고 수련할 사람도 수련받을 사람도 없다.
-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보나.
박중원: 그 근간에는 결국 내과 정원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내과는 한때 700명에 이르던 전공의 모집 정원을 600명대까지 지속적으로 감축했다. 전공의 정원 감축으로 전문의 배출 규모는 축소됐는데 고령화로 내과 진료 수요는 많아지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김석진: 수도권은 병원도 환자도 쏠리는데 비수도권은 환자가 너무 적어서 고민한다. 수도권은 교수가 진료 부담으로 연구나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비수도권 교수는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환자가 진단만 받고 치료는 수도권 병원으로 간다. 본인 연구를 위한 사례 축적이 안 된다. 혈액종양내과는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강석민: 여기에 비수도권은 교수 당직 부담이 더 크다. 일주일에 3~4번은 당직한다. 연구하고 논문 쓸 여력이 도저히 안 난다. 나가면 지금보다 보수를 3배 이상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나간다.
곧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면서 재택의료나 원격의료 정책에 부심한다. 지금은 내과 인프라 대책 마련이 더 절실하다. 고령 환자를 돌볼 의사, 중증 내과 질환을 다룰 의사, 만성질환자를 볼 의사가 없어질 수 있다. 순서가 완전히 뒤죽박죽이다.
- 그럼 현재 내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박중원: 다른 대책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전공의 정원 증원이 시급하다. 이전 수준으로 회복해야 한다. 현재 위기를 타개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다.
전공의 정원을 조정하는 더 명확한 기준도 있어야 한다. 인구 구조나 사회 변화에 따른 의료 수요 변화를 예상하고 여기 맞춰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 수요는 정말 변화무쌍하다.
-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 차원에서 내과 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전공의 정원을 증원하는 조건으로 의과대학의 정원 확대를 추진한다면.
박중원: 고려는 하겠다. '예스'냐 '노'냐 단언하기 어렵다. 학회 내부에서도 치열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김석진: 여기에 대학병원 내과 계열 수가 정상화가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병원이 내과 교수를 비롯해 인력을 충분히 채용한다. 지금은 수가가 워낙 낮으니 대학병원은 교수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적자다. 90명, 100명을 봤는데 '환자는 보면 볼수록 적자'라는 소리가 돌아온다. 교수가 힘이 날 리 없다.
강석민: 행위별 수가제에서 내과는 한계가 많다. 현실화하지 않으면 위기는 계속된다. 만성질환 고령 환자는 진료부터 처방까지 몇 배 더 공이 든다. 하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젊은 의사를 내과로 이끌 수 없다.
의료전달체계도 손봐야 한다. 일차 의료기관은 상급 병원으로 가기 위한 통행로고 환자들은 '빅5'를 한 번씩 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만 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중증 질환 중심으로 진료하고 그에 맞게 수가를 현실화하면 여력이 생긴다.
-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과는 괜찮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다. 필수의료 인프라 회복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이때 '내과 살리기'가 왜 중요한가.
강석민: 정부와 사회가 바라보고 있는 필수의료 분야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심근경색으로 실려 온 환자와 뇌출혈로 수술받은 환자 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건 바로 내과 의사다. 지금은 당장 사람이 없다고 외과계에 이목이 쏠려 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중증 신부전 환자, 암 환자, 만성질환자가 쓰나미처럼 밀려든다.
질환마다 권역별 센터를 설치하면 그 환자 사후 진료를 담당할 내과 인력에 대한 안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인력이 제대로 일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도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응급·수술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을 주목할 때다.
김석진: 내과는 국민주치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중증 환자를 다루는 명의와 의학 발전을 이끌 의사과학자도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할 의사를 배출하는 게 내과 역할이었다. 내과가 사라지면 그 역할을 과연 누가 맡을까. 이제 '내과는 흔하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내과도 사라질 수 있다.
박중원: 내과는 다양한 분과를 두고 본인 특성에 맞는 곳을 찾아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과다. 의학의 기본인 만큼 다른 과와 협업 기회가 풍부하기도 하다. 의사과학자 역할이 조명받고 이공계와 협업이 중시되는데 결국 연구와 개발 과정에서 공학과 의료가 접목하는 지점은 내과에서 시작한다.
내과 의사가 앞장서서 발전시켜 나갈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그 길 하나하나 살릴 받침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국민주치의 육성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후진 양성도 중요하다. 내과학회는 진료하는 의사이자 교육하고 연구하는 의사를 키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도 양쪽 모두를 보고 균형 잡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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