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황성일 교수

작년부터 시작됐던 필수의료 위기와 지방의료 공백사태로 인해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지방) 전공의 5:5 배치를 올해부터 주장하고 있다. 2023년 현재 6:4 이상으로 수도권 전공의 정원(TO)가 많은 것이 현실이며 지방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데는 어느 정도 컨센서스를 이뤄가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너무 급박하게 강행한다는 데 있다. 기존에는 대한의학회 산하 개별 전문학회가 전공의 TO를 정부에 제청하면 아주 약간의 조정 끝에 확정하는 게 관례였다. 올해 전문학회 절반 이상이 전공의 6:4 배치 의견을 냈지만 정부는 5:5 원칙을 수정할 계획도,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전공의 배정주체는 보건복지부 장관임이라며 강행 의지를 보였다.

물론 현재 수도권과 지방 간 의대생 비율은 지방이 월등히 높은 것이 사실이며, 지방이 의료진 부족으로 의료공백 위험에 처해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전공의 5:5 배정을 강행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분당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황성일 교수

전공의의 특수성 전공의는 그 특수성상 의사이기 이전에 피교육자의 역할이 강하다. 이는 특히나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 제정 이후 그 성격이 강화됐다. 즉 전공의를 배치하기 이전에 그 수련병원이 얼마나 전공의를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 증명돼야 한다. 의학회는 일찌감치 수련교육 강화를 위해 전공의 수첩, 역량기반평가(EPA), 지도전문의 역할강화 등을 주문했다. 이에 각 전문학회는 다년간 프로그램 개발에 힘써왔다. 그 결과 수련을 통해 우수한 전문의를 양성할 수 있는 기관별로 전공의를 배정해 왔다. 이를 도외시하고 전공의를 강제로 배분한다는 것은 전공의법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며, 의학회와 각 전문학회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전공의를 ‘그냥 싼 의료인력’으로 간주하고 이를 지방에 뿌려서 생색을 내기 위한 쇼잉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에서 정말로 부족한 것은 ‘제대로 진료를 할 전문의료인력’이지 단순 의사 수를 늘려 통계를 왜곡시킬 의료인력이 아니다.

전공의 당사자 의견 결여 전공의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바로 수련의(인턴)이다. 수련의의 병원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세부전공 선택을 위한 그 병원의 전공의 TO이다. 즉 이들 수련의의 병원 선택을 위해서 전공의 TO는 미리 결정되고 공표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항상 전공의 지원철에 임박해 정원이 발표돼 많은 지원자에게 어려움을 줬다. 올해는 이와 같은 혼란이 전 병원에서 극심하다. 그 병원의 TO가 얼마인지 모르는 관계로 지원자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고, 이는 예측가능한 인력수급에 큰 악재로 다가오고 있다. 전공의 TO는 최소 수련의가 병원을 정하기 이전에 미리 결정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전 그 정원이 공표돼야 한다.

필수의료 인력 왜곡 가능성 현재 불행히도 전공의들이 선호하는 과와 선호하지 않는 과가 정해져 있다. 또 한국의료의 여러가지 모순으로 인해 많은 필수의료과가 비선호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까지는 선호도가 떨어지는 과라도, 수련병원이 서울에 위치하고 있으면 전공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조치대로 5:5 강제 조정이 이뤄져 서울 수련병원 전공의 TO 중 상당수가 지방에 배치된다고 해서 전공의들이 지방까지 가서 비선호과를 선택할 가능성은 당연히 떨어진다. 현재 많은 의대생들이 전공의 과정을 선택하지 않고 일반의로 개원해 미용, 성형 등 비급여 진료 영역에 종사하려 한다. 이는 절대 한국의료환경에 바람직하지 않으나 정부의 전공의 강제조정이 이같은 흐름을 더 가속화해 필수의료인력은 더 부족해질 게 명약관화하다.

수도권이라는 이름의 착시 수도권은 서울과 경기, 인천이지만 이들 지역은 전혀 다른 의료환경에 처해 있다. 서울 지역 인적자원은 전국에서 가장 좋지만 경기 지역만 해도 남부와 북부 간 격차가 있다. 인천도 도시 규모에 비해 필수의료 지원 등은 열악하며, 영상의학과도 상급종합병원에 남아있는 ‘상근전문의’는 얼마 되지 않아, 지방과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열악한 부분이 있다. 이같은 지역적 차이를 무시하고 ‘수도권’ 전체로 뭉뚱그려 5:5로 배분한다는 것은 인적 자원 불균형 심화할 것이다.

의대생 TO가 지방에 많은 이유는 국가의 균형 발전과 의료의 균등배분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전 정부에서 의료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강제로 의대를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서울 지역 학생들이 의전원에 진학했고 이들은 졸업 이후 대부분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동해 전공의 수련을 받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당시에도 의료계는 반대했지만 정부는 일방통행이었다.

현재 지방 의대에서 그 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우대하는 것은 적절하다. 중요한 것은 의사 숫자나 전공의 숫자가 아니라 그 지역에서 근무하는 전문의의 숫자가 얼마인가 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앞으로도 강화돼야 하고 국가적으로도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양질의 수련이 담보돼야 할 전공의 TO를 강제로 배정한다고 해서 지역에 남는 의사가 얼마나 늘지는 의문이다. 일부 인기과는 수련을 위해서 지방에 갈 수 있겠지만 단지 수련을 위해 지방으로 가는 전공의가 그 지역에 안착할지는 미지수다. 불충분한 수련으로 인한 전문의 수준 저하는 국민 전체의 피해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이번 전공의 강제 배치는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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