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율 올랐지만 전공의 수는 33% 줄어
전문의 충원 안되고 교수 사직은 늘어
“잘못된 결정, 외과·소아과에도 미안”

전공의 지원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육책으로 내놓은 수련 기간 단축이 의료현장에 또 다른 어려움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청년의사).
전공의 지원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육책으로 내놓은 수련 기간 단축이 의료현장에 또 다른 어려움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청년의사).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전공의를 모집하기 쉽지 않은 ‘기피과’ 상황을 대한산부인과학회 박중신 이사장은 “밑 빠진 독”에 비유했다. 그래도 학회들은 “밑 빠진 독을 메우기 위해” 수련교육 기간을 단축하고 정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지원율을 끌어올리려 애써 왔다. 내과는 3년제로, 비뇨의학과는 전공의 정원 감축으로 미달 사태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그러자 기피과로 분류되는 외과와 소아청소년과도 수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은 의료 현장에 또 다른 어려움을 불러왔다. 수련 기간 단축과 정원 감축으로 전공의 수는 줄고 교수와 전임의(펠로우)들의 업무 부담은 커졌다. 인력 유입도 쉽지 않아 야간과 주말에는 대학병원이 ‘무의촌’이 되는 상황도 우려된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대학병원에 남아 ‘선배 의사들처럼'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는 전공의 지원율 하락에 가장 먼저 3년제를 택한 내과의 상황이다. 대한내과학회 수련이사인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내분비대사내과)는 15일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 대한의학회 학술대회 ‘전공의 지원 현황과 대책’ 세션에서 3년제 전환 후 내과 전공의 지원율은 상승했지만 대학병원에서 일할 인력은 오히려 줄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3년제로 수련기간을 단축한 결정이 잘못됐다고도 했다.

‘인기과’에 속했던 내과는 700명이던 전공의 정원을 지난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였는데도 2015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지원율 97.6%로 미달 사태를 맞았다. 2016년도에도 620명 모집에 618명만 지원했으며 최종 확보율은 86.6%였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내과학회는 지난 2017년 수련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이후 내과 전공의 지원은 다시 늘어 2023년도 모집에서는 지원율 117.0%를 기록했다.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인는 16일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 대한의학회 학술대회 ‘전공의 지원 현황과 대책’ 세션에서 내과가 3년제로 수련기간을 단축한 결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대한내과학회 김대중 수련이사인는 16일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열린 대한의학회 학술대회 ‘전공의 지원 현황과 대책’ 세션에서 내과가 3년제로 수련기간을 단축한 결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김 교수는 “내과 3년제 발표 이후 전공의 지원이 다시 늘어 원상회복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원율만 보면 성공했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허점이 있다”고도 했다.

지방 수련병원들은 내과 3년제 이후에도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전문의 자격 취득 후 전임의 과정을 밟는 젊은 의사도 줄었다. 김 교수는 “소화기내과 과정을 밟으러 들어와 내시경 시술 트레이닝을 1~2년 정도 받고는 분과전문의 자격 시험은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한해 내과 전문의가 600명 정도 배출되는데 분과전문의는 400명 정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특정 분과로 쏠린다. 2023년 기준 내과 분과별 신규 전임의 총 716명 중 71.5%가 소화기내과와 신장내과에 있었다.

김 교수는 “지도전문의보다 전공의 수가 적다.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의 중증도는 올라가는데 일할 인력이 줄었다. 줄어든 전공의 공백을 채워주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4년제이던 지난 2010년 내과 전공의는 총 2,800명이었지만 3년제로 전환된 현재 총 1,881명으로 33%가 줄었다.

김 교수는 “감소한 전공의 인력을 전문의로 채우겠다는 게 내과학회 방침이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내과에 충원된 입원전담전문의는 110명 밖에 안된다”며 “3년제 시행 이후 고년차 전공의가 저년차를 지도하는 수련 백업 시스템이 사라졌다. 지도전문의인 교수가 사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과 전문의가 된 이후 분과전임의 지원 편중이 심해졌다. 소화기내과나 신장내과 지원은 개업을 전제로 이뤄지기에 대학병원에 필요한 인력은 감소하고 있다”며 “입원환자는 전공의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무의촌 사태가 생긴다. 야간과 주말 전공의 당직이 줄어 이때 무의촌이 되는 심각한 상황이 생긴다”며 우려했다.

김 교수는 “내과학회 수련위원회에서 13년째 일하면서 느낀 것은 3년제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했다. 내과에 이어 3년제를 택한 외과와 소아청소년과에도 미안한 일”이라고도 했다.

기피과들은 내과처럼 3년제로 수련 기간을 단축하거나 비뇨의학과처럼 정원을 감축해 전공의 지원율을 끌어올리는 고육책을 쓰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김경환 이사장(서울대병원)은 “몇 년 전 심장혈관흉부외과도 3년제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된 적 있다. 당시 절대 안된다고 했다”며 “흉부외과와 같이 전공의 지원자가 적은 과는 3년제를 하면 소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수련위원장(고려대구로병원)은 “비뇨의학과가 전공의 지원율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한 요인 중 하나가 엄격한 산아제한이었지만 언제든지 분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산부인과는 당직 때문에 전공의 정원을 감축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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