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영 교수 "핵심은 의사의 지속 가능한 자존감"
성취와 보람 체감할 수 있는 적정 보상 필요성 강조
"필수의료 정책 개선과 조직 문화 개선 같이 가야"

"병원 스스로 정떨어지는 직장을 만들고 억만금을 줘도 의사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극심한 필수의료 분야 구인난을 겪는 공공병원들은 '수억 원을 줘도 의사가 오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4억원', '10억원'이라는 액수가 가린 이면에는 "의사의 자존감을 고려하지 않는" 잘못된 문화가 도사리고 있다. 의료계에서 "수억원을 줘도 근무할 의사가 없는 병원은 기피할 만한 문제가 있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 문재영 교수는 지난 15일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필수의료 관련 정책과 제도 한계를 짚으며 "핵심은 의사들의 '지속 가능한 자존심'"이라고 했다. '억만금'의 급여가 아니라고 했다. "의사도 사람"이고 지금 필수의료 현장은 의사를 "사명감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공공의료원의 조직 문화와 진료 시스템이 정말 환자 진료에 집중하길 원하는 의사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만족시키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문제가 된 의료원들이 억대 연봉을 제시하며 내건 업무는 "사명감 있는 의사가 지역 의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게 아니라 1년짜리 일회용 계약직으로 취급하는 업무"라고 했다.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 문재영 교수는 단순히 '억대 연봉'이 아니라 의사의 진료를 존중하고 제대로 보상하는 문화 개선이 필수의료 정책과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청년의사).

정부가 의료기관을 지원해도 수익 사업에 사용하지 필수의료 인력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부족한 인력으로 당직을 돌지만 "근로기준법대로 당직비를 주는 병원은 없다". 병원이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감사나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전문의나 교수의 노동조합 설립 노력은 "억대 연봉자가 무슨 노조냐"며 외면받는다.

문 교수는 "정책과 제도만 바꾸면 혼란과 갈등만 조장한다. 문화와 인식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면서 "융통성 없는 규정과 근거 없는 사회적 편견은 제도를 디테일하게 시행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필수의료 정책 실행에는 융통성 없는 규정과 근거, 사회적 편견이 동시에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부 필수의료 정책과 제도는 "이 의사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핵심 요소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정책에 참여하는 의사가 비전과 효과를 기대해 볼 만하고 체감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흉부외과 의사는 중증응급진료 대신 하지정맥류 수술로 개업하고 신경외과 의사는 뇌혈관 수술 대신 척추질환으로 전공을 바꾸고 산부인과 의사는 응급 분만 당직을 해야 하는 대학병원을 그만둔다"고 했다.

문 교수는 "보람과 성취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보람과 성취만으로 살 수 없다. 의사도 사람이다. 사명감과 현실 사이에서 저울질한다"며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사가 늘어나고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가 늘어나며 선배들을 보고 지원하는 전공의가 늘어난다"고 했다.

문재영 교수는 필수의료 정책과 제도 개선에서 정부가 의사의 '지속 가능한 자존감'을 핵심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문재영 교수는 필수의료 정책과 제도 개선에서 정부가 의사의 '지속 가능한 자존감'을 핵심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보건복지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도 제도와 조직 문화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공직사회도 더 이상 "사명감이나 책임감만 앞세우기 어려운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이 정책관은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악화됐지만 어떤 병원은 정원을 다 채운다. 그 병원만의 조직 문화가 영향을 줄 것이다. 그 문화나 인식, 공유된 가치가 의료계 전체로 확산돼야 한다"며 "이는 정부 부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 나은 대안은 충분히 검토하고 디테일은 세심하게 챙기겠다. 지금 필수의료 위기는 복잡하고 체계적이며 구조적이다. 의료계에 각별하게 도움을 청한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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