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협회, 의료-요양-돌봄 통합판정체계 시범사업 현황 발표
의료필요도-요양필요도로 요양병원·시설·재가서비스 분류
김기주 부회장 "간병비 급여화 전제…진료비 낮은 요양병원 활용해야"
남상용 기획이사 "병상 기능분화와 다양한 주거형태 지원 먼저"
정부가 생활·요양 등을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회적 입원’을 줄이고자 의료와 요양, 돌봄을 연계하는 통합판정체계 도입을 준비하고 있지만, 요양병원 현장에서는 그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모습이다.
노인의 필요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간병비 급여화는 물론 요양병원 병상의 기능 분화 등 요양병원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보험연구원 한은정 장기요양수요연구센터장은 대한요양병원협회가 29일 서울 백범기구기념관에서 개최한 ‘2023 춘계 학술세미나’에서 ‘의료-요양 통합판정체계 시범사업 추진 현황과 향후 과제’를 발표했다.
‘의료-요양-돌봄 통합판정체계’는 노인의 필요에 맞는 의료와 돌봄 자원을 안내해 노인의 필요를 중심으로 통합케어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통합판정체계는 대상자 노인의 신청을 통해 노쇠평가를 진행한 후 통합판정조사를 활용해 대상자의 의료필요도와 요양필요도를 포괄적으로 평가한다. 이후 의료필요도와 요양필요도에 따라 요양병원·시설서비스·재가서비스·지역돌봄 대상자를 분류하고 요양병원과 공단, 지방자치단체에서 각각 필요에 맞는 장기요양 서비스와 지역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는 올해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1차 시범사업은 이달 6일 시작해 오는 5월 31일까지 13주 동안 약 18개 운영센터 3,50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통합판정체계 개선안을 검증하고 적정 급여 수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 센터장은 “노인의 상태 변화에 따라 의료와 돌봄이 연속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돌봄 체계는 각각 다른 전달체계로 이뤄져 중복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합판정만으로는 모든게 해결되지 않는다”며 “요양병원 기능과 서비스 개선도 필요하며, 요양병원 퇴원 후 의료서비스 문제, 퇴원 이후 주거와 돌봄이 충족되지 못한 사람을 위한 서비스도 부족하다.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졌을 때에만 통합판정체계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판정체계 도입하기에 현장 인프라 미비"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의료와 돌봄을 연계해 의료비를 절감하는 취지에는 동감했다. 하지만 통합판정체계를 도입해 노인들의 다양한 필요를 반영할 만한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요양병원협회 김기주 부회장은 통합판정체계로 노인을 분류하는 것의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며, 특히 간병비 급여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회장은 “현재 요양병원 치료가 필요함에도 간병비 부담으로 입원하지 못 하는 사람도 많다”며 “이런 현실에서 통합판정체계로 요양병원 입소가 결정되도 현실적으로 입원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통합판정체계로 노인들을 분류할 시 말기 암 환자와 중증치매 환자,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한 중증환자 등이 의료필요도에서 중등도 혹은 경도로 분류돼 요양병원 입소가 어려워진다”며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통합판정체계의 도입 취지가 불필요한 자원 소모를 방지하는 것인 만큼 진료비가 낮은 요양병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김 부회장은 “요양병원 중 70~80%는 중증환자를 진료하는데, 요양병원 진료비는 상급종합병원의 1/9, 종합병원의 1/7, 재활병원의 1/3 수준”이라며 “요양병원의 순기능 중 하나가 의료비 절감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시스템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요양병원 퇴원 후 복합다학제 진료가 필요해 방문진료가 필요한 환자도 있다. 하지만 이번 통합판정체계에서는 제외됐다”며 “방문치료에 대한 인센티브 등을 도입해 요양병원들도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천시립노인전문병원 남상용 기획이사는 일본의 사례를 들어 노인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요양병원 병상의 기능 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남 이사는 “일본은 의료와 요양의 혼재로 인한 의료비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요양병상을 재편성했다”며 “일본 요양병원에는 치매 치료, 암 회복기, 재활 등 다양한 병상이 있다. ‘중간시설’이라는 요양원과 병원 사이에서 재활이 필요한 환자를 위한 시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우리나라 정부는 요양병원을 호스피스, 치매, 암 등 기능으로 분화한다고 했지만 시범사업에 그치며 답보인 상태”라며 “중간시설이나 다양한 주거형태도 없다. 통합판정체계의 취지인 노인 중심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 기능별로 요양병원 인프라를 다양하게 갖춘 후 통합판정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