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의사 출신 번역가인 꿈꿀자유 강병철 대표
"과학적으로 검증된 책만" 출판하는 그의 소신
임상 떠났지만 "의료를 싼값에 해결하려는 한국" 우려

번역가이면서 출판사까지 운영하는 의사가 있다. 이 분야에서 이미 '유명'한 꿈꿀자유·서울의학서적 강병철 대표다. 그가 번역, 출판한 책들은 믿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콰먼이 쓴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국내에 소개한 것도 강 대표다. 지난 2012년 나온 책을 2017년 한글로 번역해 출판했다. 지난 2015년 한국에서 발생한 메르스(MERS) 사태를 지켜보며 팬데믹 관련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빛을 보게 됐다.

강 대표는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번역해 지난 2021년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도 강 대표 출판사에서 냈다.

이제는 의사보다는 번역가, 출판사 대표가 더 잘 어울리는 그이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하루 300명이 넘는 환자가 '소청과 전문의 강병철'을 찾았었다. 제주도에서 소청과의원을 운영하던 때다.

출판사 꿈꿀자유와 서울의학서적을 이끄는 강병철 대표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임상을 떠나 번역가, 출판사 대표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사진: 본인 제공).
출판사 꿈꿀자유와 서울의학서적을 이끄는 강병철 대표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임상을 떠나 번역가, 출판사 대표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사진: 본인 제공).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의 개원의 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영국 의사면허까지 취득하며 해외 이주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었고, 아이가 아프기도 했다. 그는 결국 영국행을 포기하고 지난 2008년 휴식을 위해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 정착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했다.

번역을 하기 위해 찾았던 도서관에서 환자들이 사서에게 건강과 관련된 책을 추천받는 풍경을 보고 한국 환자를 위한 '올바른' 책을 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꿈꿀자유를 차렸다.

의료현장을 떠난 강 대표지만 한국 의료가 처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강 대표는 "의료를 싼값에 해결하고자 하면 궁극적으로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소청과는 시작이며 다른 과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했다.

의사로 지냈던 인생의 전반기를 지나 번역가로서 중반기를 살고 있다는 그에게 의사 출신 출판사 대표로서의 삶에 대해 물었다.

-출판사 이름을 ‘꿈꿀자유’로 지은 이유는?

지난 1985년 2월, 대학 입학을 목전에 두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다 돈암동에서 ‘꿈꿀자유’라는 이름의 카페를 봤다. 가난했지만 꿈은 많았다. 돈이 없어도 꿈꾸는 것은 '내 자유'이지 않은가. 그건 누구도 침범할 수 없으며, '꿈꿀자유'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자유라고 생각했다. 지난 1998년 공중보건의사 시절 PC통신에서 재즈칼럼을 연재할 때도 꿈꿀자유라는 닉네임을 썼다. 그리고 독자들이 책을 읽고 변화할 수 있다는 자유를 꿈꾸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판사 이름을 지었다.

서울의학서적은 꿈꿀자유 내에 독립된 전문의학서적 브랜드다. 꿈꿀자유가 더 넓은 범위에서 의학·과학 관련 책들을 낸다면, 서울의학서적은 의학과 관련된 책을 출판한다.

- 개원의 생활을 접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출판사를 열게 된 이유는?

원래 전공했던 콩팥·신장학을 쭉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공부를 못 하고 제주도 서귀포시에 조그마한 소아과를 열었는데, 너무 잘 됐다. 하지만 이 일을 평생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하루에 300명 봤는데, 매일 비슷한 환자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전공과 관련된 혈뇨를 보는 환자가 왔는데도 마음이 예전같지 않았다. 신장학을 인생의 열정으로 여겨왔는데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03년부터 해외 여행을 다녔는데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에 푹 빠졌다. 더 이상 한국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지난 2005년 12월 영국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이주를 준비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아이의 정신질환도 겹쳤다. 당시 영국 뉴캐슬에 있는 병원에서 면접 제의도 왔지만 결국 영국행을 포기하고 휴식을 위해 2008년 밴쿠버로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밴쿠버에서 먹고 살 길을 찾아보니 번역이 있더라. 마침 개원의 시절 작업한 번역서도 4권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 문과였던지라 적성도 맞았다. 그렇게 상업 번역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번역 작업을 하던 도서관에서 서가를 둘러봤는데 건강에 대한 책이 굉장히 많았다. 게다가 사람들이 아프면 도서관을 찾아와서 책을 읽어보더라.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몸이 아프면 일단 지식인에 검색하거나 주변에 물어보지 않나. 좋은 책들을 국내 환자들에게 소개해보면 어떨까 싶어 지난 2013년 출판사를 열었다.

- 이제까지 출간한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

우선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가 있다. 지난 2015년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 의사로서 팬데믹 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담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 책을 찾았는데,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출판사에 편지를 써서 이 책이 우리나라에 정말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라며 선인세를 낮춰준다면 최고 수준으로 번역하겠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한국에서 책을 냈는데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러다 자금을 다 쓰고 출판사를 접으려고 했는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이 책이 주목 받았고 전화위복이 됐다.

지난 2021년 번역, 출판한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도 있다. 꿈꿀자유를 설립하기 전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을 번역했는데, 내 자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읽었다가 번역과 출판까지 했다. 어떻게 보면 출판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그 연장선상이다. 당시 자폐 환자의 부모와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에 참여해 책을 만들 수 있었다.

-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

아무래도 '돈'이 제일 어렵다. 책 한 권을 내는데 보통 1,000만원에서 2,000만원 가까이 든다. 하지만 들어오는 돈은 1권당 만원 남짓이다. 1권당 비용이 이정도 드는 것도 그나마 내가 번역해서다. 본전을 찾을 수 있는 책도 많지 않고 대부분은 실패한다. 번역을 도맡아서 하다 보니 시간도 부족하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지 고민하고 있다. 뜻이 있는 의사들과 힘을 합쳐 올바른 의학지식을 보급하는 일을 함께 해보고 싶다.

- 출판사를 설립한 계기가 환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지 않은 책이 많다는 의미인가.

믿고 따르면 안 될 것 같은 근거없는 책들이 너무 많았다. 왜 그런 책을 내는지 살펴보니 해외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이유로 번역해서 마케팅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의사로서 절대 그런 책은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책만 낼 것이다.

'3분 진료'하던 개원의 시절도 생각났다. ‘나는 환자들에게 과연 올바른 정보를 충분한 시간 동안 알아듣게 설명했을까’라는 회의감도 들더라. 앞으로도 환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담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

- 이제까지 출간한 책 중 의사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의사는 ‘과학’과 ‘역사’ 두 가지 축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만 알면 딴 길로 새기 쉽고 과학만 알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자폐에 관한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예전에는 자폐를 극복할 수 없는 장애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정신적으로 한쪽이 굉장히 발달했거나 덜 발달한 현상으로 여긴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자폐 성향을 조금씩은 갖고 있을 것이라는 인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의사의 특징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인드인데, 역사를 알고 나면 ‘과연 이게 고치거나 없애야 하는 문제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단순히 질병을 고치는 것에서 질병마저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로 바꿔나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까지 사고가 확장되는 것이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의사가 된다. 그들이 과학적인 지식과 더불어 역사적인 맥락까지 알게 되면 포용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최근 들어 한국에서 '필수의료'가 주목받고 있다. 관련 분야 전공을 기피하면서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소청과를 전공하려는 의사가 거의 없다.

캐나다에서는 환자가 질환이 심각하지 않은데 CT나 MRI 검사를 받겠다고 하면 의사가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라고 환자를 설득한다. 물론 환자들은 불만이 있다. 그래서 정부와 의사가 한 팀이 돼 머리를 맞대 치열하게 정책을 고민하며 환자를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가 의사 집단의 지혜를 빌리겠다는 생각이 없다. 그야말로 정부와 의사, 국민이 ‘각자도생’하는 형국이다.

의료에 훨씬 더 많은 자원을 쏟아야 한다. 예를 들어 소아 환자의 흉부엑스레이를 찍고 폐렴을 진단하는 수가를 비교할 때, 지난 2005년 기준 호주는 8만원에서 10만원 정도인 반면 우리나라는 1만원대였다. 정부가 의료에 투자할 의지가 없다. 의료를 싼값에 해결하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소청과는 시작이며, 다른 과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 임상이 아닌 다양한 분야로 나가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가 끓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새로운 사회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밴쿠버로 왔는데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제주도에서 병원을 하고 있었으면 지금보다 고생도 덜하고 돈도 더 많이 벌었을 것이다. 그대신 이전에는 경험해볼 수 없던 수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가끔 환자와 이야기하던 시절을 떠올리거나 연구에 매진하고 열심히 환자를 보는 동료를 생각하면 나도 저렇게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환자와 국민에게 올바른 의학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진료나 연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절대 길지 않다. 50대 중반에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힘들다. 대부분의 의사가 자리를 잡는 시기가 40대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이 별로 없다. 피가 끓는 일을 빨리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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