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무사 봉합 수술 맡긴 산부인과 의사 무더기 처벌
醫 자율정화 강조해도 현장은 "이러다 수술 못한다"
"만성적 인력 문제 방치한 정부, 이제라도 대책 내야"
수술 마지막 단계에서 피부 봉합을 간호조무사에게 맡긴 산부인과 전문의 6명이 한꺼번에 유죄를 선고 받자 의료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절개된 피부 표면을 봉합하는 마무리를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에게 맡기는 병원이 많기 때문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대리 수술이니 처벌해야 한다"며 자율 정화와 재발 방지를 강조하는 목소리와 함께 수술 인력 부족이라는 원인은 방치한 채 몇몇 병원만 처벌하는 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울산지방법원은 간호조무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A병원 산부인과 의사 6명과 간호조무사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선고는 지난 12월 23일 이뤄졌다. 실형을 받은 대표 원장을 비롯한 의사 2명과 간호조무사는 법정 구속됐다. 3년 6개월간 이 간호조무사가 한 피부 봉합만 600회가 넘는다. 의사가 자궁과 복벽, 근막까지 봉합하면 간호조무사가 피하지방과 피부층 봉합 등 마무리 과정을 맡았다. A병원에서 피부 봉합 마무리를 했던 간호사는 기소되지 않았다. 법원은 A병원에서 대리 수술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대한의사협회는 유감을 표하면서 중앙윤리위원회 징계심의 회부를 검토하고 재발 방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지난 2021년 척추전문병원 대리 수술 의혹이 연이어 발생하자 무자격자·무면허자 의료행위에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 대응하겠다면서 자율 정화를 강조해왔다(관련 기사: 의협 “제 식구 감싸기 없다”…불법 저지른 회원 ‘제명’ 추진).
의협 박수현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지난 3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불법 대리 수술이 또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 간호조무사가 봉합을 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 사건 관련자 중윤위 회부 여부를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더 이상 무자격자가 수술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의협 차원에서 자율정화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진행하는 PA 타당성 검증 시범사업에서도 봉합과 발사(Stitch out), 수술보조는 반드시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로 분류됐다. 복지부는 봉합의 경우 법령·유권해석 상 반드시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행위로 위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리 수술 소식을 접한 의료계 속사정은 복잡하다. 대학병원이 수술에 진료보조인력(PA)으로 간호사를 참여시키는 것처럼 개원가는 간호조무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해야 할 수술은 많고 인력은 부족한 상황에서 비교적 '간단한' 피부 표면봉합은 진료보조인력에게 맡기고 의사는 다른 수술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일선 현장은 이들의 보조가 없으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 정형외과병원장은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환자 위해가 적은 마무리 단계는 간호사가 많이 한다. 관행적으로 하는 일이다. 이번 사건처럼 마무리까지 의사가 다 해야 한다면 안 걸리는 병원이 거의 없다"면서 "솔직히 충격적인 결과"라고 했다.
다른 산부인과병원장은 "대학(병원 수련) 때부터 교수가 (봉합은) 이렇게 하라고 가르친다. 2년 차가 (수술)하면 1년 차가 마무리하고 퍼스트(의사)가 해놓으면 피부 봉합은 세컨드나 어시스트가 하는 식"이라면서 "개원가는 이게 간호조무사까지 간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의료현장에서 무면허 의료행위가 관행화된 근본적인 원인을 짚고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운 나쁜 병원' 한두 곳만 처벌하고 그 뒤에 자리한 인력 부족과 인프라 문제를 덮어둬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사이 병원 필요에 따라 PA가 관행화되면서 벌어진 일"이라면서 "제대로 된 후속조치가 따라와야 한다. 의료 인력 문제에 대한 대책은 물론 법적, 제도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대학병원은 공개적으로 PA 양성화를 거론하고 있는데 개원가는 사법 처리되고 있다.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의료 현장 상황을 참작해 대책을 내지도 않는다. 이렇게 '걸린 사람'만 죄가 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현재 의료계 상황에서 어려운 문제는 맞다. 지금 당장 '강력 대응'에 나서면 수술 못하는 병원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처럼 산부인과병원이 처벌되면 그 지역 분만 인프라가 흔들린다"면서 "그러나 정부가 제대로 역할했다면 사전에 예방됐을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계속 방관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제라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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