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side&人sight] <자폐부모 교육> 출간한 서울대병원 김붕년 교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즉 ASD(Autism Spectrum Disorder)는 복합적 발달장애를 아우르는 진단명이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등이 여기에 속하며, 최근 20년간 유병률이 증가추세에 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예일대 김영신 교수팀이 진행한 대규모 전수조사에서 초등학생의 ASD 유병률이 2.64%로 나타날 정도로 높은 편이지만 아직까지 ASD 어린이와 그 부모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양육 정보는 턱 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최근 출간된 <자폐부모 교육>은 ASD 자녀를 둔 부모들의 지침서로 소아정신과 의료진, 특수교육 교사, 그리고 사회복지 전문가가 뜻을 모아 저술했다. 지금까지 부모들이 ASD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짚어주고, 앞으로 양육과 치료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대표저자인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김붕년 교수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자폐부모 교육>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첫째는 정보제공, 둘째는 부모들의 교육 참여 장려를 위해 쓴 것이다. 국내에 믿을만한 치료 기관이 몇 개 되지 않는 데다 경제적 시간적 등의 이유로 꾸준히 치료에 참여할 수 있는 부모들도 많지 않다. 더 이상 부모들이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에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아이의 호전을 위해 부모가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 아이들이 처음 ASD 진단을 받는 시기는 언제쯤인가?

과거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내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병원에 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시기가 많이 앞당겨졌고 보통 학령기 전에 병원을 찾아온다. 생후 18~36개월 때 데리고 오는 부모도 3분의 1이나 된다. 요즘 ASD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덕분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내용을 접하기도 하고, 관련 교육사업과 치료 프로그램들이 많아지면서 복합적으로 부모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ASD는 조기에 개입할수록 예후가 좋은 만큼 영아기 때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48개월 이전에 특수교육을 충분히 시작한 아이들과 그 시기를 놓친 아이들이 나중에 7∼10세가 되었을 때 지적 발달이나 언어 발달, 그리고 사회성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조기치료의 중요성을 인식한 스웨덴과 덴마크는 18개월이 되면 전국 영아들을 대상으로 자폐검진을 실시한다. 물론 뇌 발달은 20대 중반까지도 계속 되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지 못했더라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 ASD 환자들을 보면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음악, 그림, 수리, 연산 등에 관심을 갖고 반복하는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ASD 중에 그렇게 지능이 높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70%는 IQ가 65 미만이며 창의적 행동을 하기보다는 비기능적 반복행동을 보인다. 세탁기 돌아가는 것만 하루 종일 보거나 엘리베이터를 계속 타거나 하는 행동들이 그 예다. 결국 100명 중 1∼2명만 천재성을 보이는 것인데 이 친구들이 영화나 뉴스 등 미디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보니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환자 부모들을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TV에 나오는 아이와 자신의 아이가 다르기 때문에. ASD 환자 대다수는 그런 영재성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 특수교육을 받을 때 부모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아이의 프로그램을 부모가 직접 다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 큰 문제다. 우리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느 기관이 어떤 치료를 잘하는지 양질의 정보가 부족하다. 게다가 기관들 대부분이 사설이고 각자 분절되어 있다 보니 통합적 서비스를 받기도 힘들다. 예를 들어 언어/감각/놀이 프로그램이 우리 아이에게 필요하다면, 해당 기관들을 부모가 직접 알아보고 비용과 시간을 각각의 기관에 투자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곳의 치료사들이 ASD에 적합한 전문가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도 대부분 광고뿐이고. 한 달에 200만∼300만원씩 들여서 아이에게 전혀 효과가 없는 엉뚱한 치료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작년에 발달장애인법이 통과되면서 집중교육 프로그램, 특수교사 양성, 원스톱 서비스 등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만들어졌다. 시행만 잘 된다면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 국내 치료 환경은 잘 갖춰져 있나?

아이들이 적절한 훈련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기관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치료자들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형태로 있지만, 아이와 부모의 관계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 참여형 놀이나 교육은 많지 않다. 앞으로 그 점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며,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모아애착 프로그램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현재 이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러 오는 기관들도 많이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를 비롯해 대학병원, 복지기관 등이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곳에만 제공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자폐와 관련해 근거 있는 치료를 할 수 있는 인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치료자 양성 또한 중요한 숙제 중 하나다.

- 양육과정에서 부모가 명심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ASD 어린이는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즐거움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은 아이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이다.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교육적인 관점으로 다가가기 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 집착행동을 통제해서도 안 된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자동차에 집착하자 일부러 자동차 장난감을 빼앗고 행동을 억제시키는데 이는 오히려 관계만 악화시키고 다른 집착행동을 불러오게 한다. 게다가 통제도 더욱 어렵게 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감각적 자극과 일정한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안정감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아이가 어떤 자극과 행동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정확한 관찰이 중요하다. 같은 ASD여도 아이마다 특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어떤 애가 이 치료를 받고 좋아졌다더라, 자폐아들은 뭘 좋아한다더라’ 이런 말만 듣고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 우리 아이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테스트를 통해 특정 행동에 대해 자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 마지막으로 ASD 환자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0년 전만 해도 자폐를 하나의 단일질환으로 접근하다보니 증세가 심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됐었다. 자폐증이라고 하면 90% 이상이 의존적인 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조기 검진과 조기 치료를 바탕으로 결과가 향상된 데이터들이 있기 때문이다. ASD 환자 3분의 1은 조기에 치료가 진행되면 나중에 일반학교에 다닐 수 있고 성인이 된 후 직업적 성취나 가정형성 능력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장기적 예후에 개인차는 발생하지만, 이제는 자폐가 완전히 의존적 상태에 머무는 병이 아니라 독립적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 그 점을 부모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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