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명예교수 "정부 언어 빌려오기만 해서야" 지적
이제는 '대국민 설득'이 더 중요…"정확한 현실 알릴 때"
"직역 갈등 봉합하고 '우군'되도록 개방성 키워야"
의정 갈등 국면에서 의료계 소통 전략을 조언해 온 서강대 이덕환 명예교수가 "정부를 향한 투쟁은 의미를 잃었다"면서 국민을 상대로 한 메시지를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2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의 의사 인력 수급 전망 포럼 토론 패널로 참석해 지난 1년 의료계 행보를 되짚으면서 "정부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그간 소홀히 했던 대국민 설득 작업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정부 정책을 비판해왔다. 의대 증원 중단 시국선언에도 이름을 올렸다.
먼저 의료계가 사용하는 표현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쓰는 말을 그저 빌려다 쓰니 엉뚱한 길로 간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의사 인력 '과학적' 추계와 의사 증원 '낙수효과', 전공의 '파업'과 수련·입영 '특례'라는 표현이다.
이 교수는 "인력 추계는 '과학적'일 수가 없다. 과학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을 강조한다고 해서 곧 설득력을 확보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우리가 봤듯이 모자라는 추계, 남아도는 추계도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전공의 복귀'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복귀 대신 '병원 재임용'이라고 고쳐 써야 한다고 했다. 전공의는 수련병원을 사직했으므로 "돌아갈 곳이 없다"며 "사직자의 재임용이 아닌 복귀라고 부른다면 지난 1년 간 젊은 의사들이 미래를 포기하고 저항하고자 사직을 결정했던 그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대국민 설득 작업에 "정확한 현실을 알려주는 것"도 포함하라고 했다. "의료 문제를 극복하고 의료 현장이 정상화"될 거란 국민의 "착각이자 희망고문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엉터리 처방과 오진 문제를 정확히 짚어주면서 이제 의학 교육 수준이 훼손됐고 의료 현장도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국민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키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의사 악마화' 작업 여파도 돌이키기 어려울 거라 했다. 의대 정원 국면이 해소된다고 해도 '의사 악마화' 영향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의사가 볼 피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국민에게 의사는 악마다. 의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사라지면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두렵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를 해결할 유일할 처방은 개방"이라고 했다. 의료계 내부 갈등은 물론 "간호사, 한의사, 약사 등 타 직역과 갈등도 서둘러 봉합하고 우군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지난 1년 의료계를 지켜봤지만 굉장히 이기적이고 폐쇄적이다.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의사 사회를 확실하게 개방해야 한다"고 했다.
의협이 정부에 요구 중인 '의학 교육 마스터플랜'도 "사실은 교육부가 아니라 의대 교수들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의대 교수에게 요구하라"고 했다. "의학 교육 내용은 의대 교수가 책임질 일이다. 교육부 장관이 책임질 일은 전혀 아니다. 마스터플랜을 내놓으라고 해도 장관은 내놓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의대와 대형병원이 정부 정책 방향에 미온적이라고도 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질병 치료 외에도 전문의 수련 책임이 있다. 그런데 (잘못된 정책으로) 전공의를 병원에서 다 빼내겠다고 하는데도 의대 교수들은 가만히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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