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고법, 응급치료 담당 전공의·병원·가해자 4억 배상 판결
"가해자 폭행과 전공의 의료 과실 간 객관적 공동성 있다"
경악한 의료계 "의료진 최선 다했는데…응급의료 더 위축"
데이트폭력을 당해 전남대병원에서 응급치료 받던 피해자가 숨지자 법원이 담당 전공의와 병원에 가해자와 공동 책임을 물렸다. 의료계는 범죄자와 동일 선상에 뒀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의료계에 따르면 광주고등법원 제3민사부는 최근 피해자 유가족이 가해자와 의료진, 전남대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이들의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하고 공동으로 손해 배상금 약 4억4,000만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배상 금액도 원심(1심)보다 약 8,000만원 늘렸다.
사망한 피해자 A씨는 지난 2017년 10월 남자친구인 가해자 B씨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경막외출혈 등 상해를 입었다. A씨는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혈종 제거 수술을 받기로 했으나 준비 과정에 중심정맥관 관통상을 입어 숨졌다.
법원은 중심정맥관 삽입을 맡은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과실로 A씨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봤다. 병원도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서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A씨에게 폭력을 행사해 상해를 입힌 가해자 B씨와 책임을 나눠서 져야한다고 본 것이다. 광주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B씨가 저지른 폭행 치상 행위와 전공의·병원의 의료 과실이 "객관적으로 관련 공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구체적인 배상 분담 비율은 별개 소송으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의료계는 경악했다. 해당 판결이 알려지자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7일 성명을 내고 "피해자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진을 데이트폭력 가해자와 동일한 범죄자로 취급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번 판결이 향후 응급조치와 수술을 위축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폭행으로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의 뇌출혈 환자라면 사망 가능성이 있는 중증 환자다. 이를 초래한 것은 당연히 가해자"라면서 "법원이 의료진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피해자가 의료진을 만나지 않았으면 살았으리란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 논리대로면 "의료진이 중심정맥을 잡지 않아 수술 중 혈압이 떨어져 환자가 사망했더라도 마찬가지로 의료진 책임을 물었을 것"이라고 했다. 병원에 지운 설명의무 위반 책임도 "그들만의 잣대"이며 "복통 환자에게 사망 가능성부터 4,000가지 병명을 다 설명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모든 술기와 처치는 위험성과 합병증을 동반한다. 어쩔 수 없이 벌어진 문제를 법원이 처벌한다면 위험하고 합병증이 예상되는 모든 환자가 어떤 의료기관에서도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서 "비전문가 법원이 마음대로 휘두른 판결의 칼날은 의료계에 대한 또 다른 '처단'이고 치료 포기를 종용하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성남시의사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해당 판결을 규탄했다.
성남시의사회는 "의료진의 판단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폭행 가해자와 동일한 수준의 공동 책임을 부과했다. 결과 책임을 의료진에게 전가하는 위험한 판결이자 필수의료와 응급의료를 위축시킬 판결"이라고 했다.
정부와 국회에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의료사고특례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필수의료와 응급의료를 지킬 실질적인 방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진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강력히 대응하겠다"며 "정부와 사법부가 의료 현실을 외면하고 계속 의료진에게 과도한 책임을 전가한다면 국민 생명과 안전도 결국 지키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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