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료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과 암의 분자적 특성을 기반으로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제시하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이다. 암 치료에서는 특정 바이오마커를 기반으로 한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가 개발되며 환자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단, 이러한 치료의 필수 전제는 바이오마커를 정확히 진단하는 '동반진단'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면역조직화학(immunohistochemistry, 이하 IHC) 검사는 암 조직에서 특정 단백질 발현을 확인하는 주요한 동반진단 검사로, 암 치료제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HER2', 'PD-L1', 'ALK' 등 이미 임상에서 사용되는 주요 바이오마커들이 IHC 검사를 통해 진단되며, '클라우딘18.2(CLDN18.2)'와 'FR-α' 같은 새로운 바이오마커도 점차 임상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동반진단수가제도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며, 오히려 암 치료 접근성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IHC 검사에서 동반진단수가(Level 2)를 인정받은 바이오마커는 'PD-L1'과 'ALK' 두 가지에 불과하다. 이는 기존 치료제와 바이오마커를 대상으로 동반진단수가가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HER2는 유방암과 위암에서 매우 중요한 바이오마커로, 표적치료제 사용을 위해 HER2 상태를 평가하는 IHC 검사는 정밀의료 시대를 연 주요한 검사다. 그러나 HER2는 동반진단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이전부터 임상에서 사용됐기 때문에, 현재 동반진단수가 항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런 가운데 HER2 '양성'을 넘어 HER2 '저발현' 및 '초저발현' 유방암 환자에게도 효과를 보이는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의 등장은, 국내 동반진단수가제도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나게 만들었다.

단백질 발현이 미미한 HER2 저발현 및 초저발현을 진단하려면 병리의사에게 더 많은 업무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동반진단수가가 마련되지 않으면 그 부담은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며, 이는 결국 환자들의 검사 접근성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최근 위암 치료에서 떠오르고 있는 클라우딘18.2는 새로운 바이오마커에 대한 현행 동반진단수가제도의 경직성을 보여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9월 말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클라우딘 18.2 표적치료제 '빌로이'(성분명 졸베툭시맙)'를 허가하며, 동반진단(CDx) 기기인 'VENTANA CLDN18(43-14A) RxDx Assay'도 함께 허가했다. 하지만 실제 동반진단수가의 부재로 인해 빌로이의 임상 적용 시점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아스텔라스는 빌로이 허가 후 곧바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신청서를 제출하고 내년 1월 비급여 출시를 계획 중에 있지만, 동반진단기기의 신의료기술 평가 여부에 따라 길게는 빌로이의 비급여 사용이 1년 뒤까지 미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는 내년에도 똑같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난소암 치료 분야에 혁신을 불러온 애브비 '미르베툭시맙 소라브탄신(mirvetuximab soravtansine-gynx, 미국 상품명 엘라히어)'이 내년 국내 허가를 기다리고 있고, 이는 곧 새로운 바이오마커 FR-α에 대한 동일한 동반진단수가 이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르베툭시맙 소라브탄신 역시 동반진단기기인 'VENTANA FOLR1 (FOLR1-2.1) RxDx Assay'와 동시에 식약처 허가를 받게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신의료기술 평가 등 새로운 바이오마커가 동반진단수가 항목에 들어가기까지 생기는 진단 공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 평가가 이미 식약처의 허가심사 과정에서 검토된 데이터를 재검토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동반진단수가 등재까지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이는 곧 새로운 치료제의 국내 도입이 지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밀의료 시대에 동반진단 검사는 필수적인 도구이며, 이를 지원하는 수가 체계는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엔허투', '빌로이', 그리고 '미르베툭시맙 소라브탄신'까지 최신 치료제들이 임상 현장에서 진가를 발휘하려면 동반진단수가제도의 전면적인 개편과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 동반진단수가제도가 더 이상 암 치료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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