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기기와 의약품은 다르다" 대법 '판단 기준' 적용 안 해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에 한의사가 리도카인 쓸 필요 없다"
"교육·지식 여부보다 의료행위 할 면허 갖췄는지가 우선"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 17일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은 불법이라는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 17일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은 불법이라는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법원이 한의사 진단기기 허용이 전문의약품 사용까지 인정한 건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한의사가 의료행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지식을 갖췄다고 해서 의료법이 정한 면허 범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도 했다.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환자를 위해 '보조적 수단'으로 전문의약품 리도카인을 썼다는 한의사에게 법원이 내린 결론이다. '보건위생상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써야 할 필요성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3-2형사부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1심) 판결을 유지했다. 약침에 국소마취제 '리도카인'을 섞어 사용해 한의사 면허 범위를 벗어나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고 본 1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 A씨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청년의사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항소심 재판부는 한의사 A씨 측이 내세운 항소 이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없고 통증 완화라는 보조적 수단으로 최저한도 내에서 썼다거나 한의사도 리도카인 사용법을 교육한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한의사 진단기기 허용 大法 "'새 판단 기준' 전문의약품에 적용 안 돼"

특히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허가한 지난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사건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법원 전합 판결은 "의료기기 중에서도 '진단용'에 한정해 새 기준을 설시했다. 그 밖의 '치료용 의료기기 내지 적극적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술'에 대한 기준까지 폐기·변경하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다.

초음파 진단기기는 "범용성과 대중성, 기술적 안정성이 담보"됐고 "일반적으로 초음파 투입으로 인체에 어떤 생화학적 반응이나 조직의 특성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세포막이나 염색체 손상, 산화, 중합반응 등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고 임산부나 태아도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리도카인은 "쇼크, 혈압 저하 등 중독과 의식 소실, 저혈압, 심정지 등 심장억제작용 같은 부작용이 있고 3개월 이하 영아는 쓸 수 없다. 사용 후 혈압저하나 맥박 이상, 호흡 억제 등 증상을 보이면 의사에게 즉시 알려야 하는 주의사항도 있다"면서 "리도카인 투여로 사망한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초음파 진단기기와 마찬가지 수준으로 안전성이 담보된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의사 전문약 사용은 '이원적 의료체계' 취지 반해 "의사 권한 침범"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은 의료법 취지에 반하므로 허용할 수 없다고도 했다.

비록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의료법이 규정한 이원적 의료체계 취지를 고려"했을 때 "한의학적 입장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 기준에 따라 품목허가 받은 의약품만 처방·조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법이 정한 서양의학의 범위와 의사의 의료 관련 권한을 침범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약사법은 의약품과 한약, 한약제제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리도카인은 약사법 등에 따라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고 한약이나 한약제제에 명백하게 해당하지 않는다"며 "동시에 한의학적 원리 내지는 한방의학에 기초하고 있지도 않다"고 했다.

약품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에서 한의학적 입장과 서양의학적 입장의 심사기준이 다르지 않으니 한의사에게 한쪽만 쓰도록 제한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관련 고시는 한약제제 심사 기준으로 '한약서의 원리'를 따르라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약품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에서 한의학적 입장과 서양의학적 입장의 심사기준이 동일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의사들이 '이미' 생리식염주사액이나 포비돈요오드액 등 전문의약품을 쓰더라도 리도카인을 똑같이 취급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생리식염수는 리도카인과 용법이 다르고 안전성과 유효성 측면에서 리도카인과 차이가 크다"며 "포비돈요오드액은 주로 환부에 바른다. 체내에 주입하는 리도카인과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지식 등 '자질' 관계없다…의료행위 할 면허 부여됐는지가 우선"

한의사 A씨가 리도카인 사용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췄다'는 주장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는 "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면허가 부여됐는지"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설령 한의사가 교육이나 훈련 등으로 사용법을 익혔더라도" 의료법상 한의사가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한다면 "실제 그 한의사가 그런 자질을 가졌는지와 무관하게 무면허 의료행위로서 치료 결과 등에 관계없이 처벌된다"고 했다.

"보건위생상 우려 감수하면서까지 한의사가 쓸 필요 없다"

한의사의 리도카인 사용은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존재하며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사용할 필요성이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리도카인은 사용 용량을 판단하고 부작용 발생시 대처하기 위해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지식은 물론 풍부한 임상 경험 역시 요구된다"며 "원심(1심) 증언에 따르면 한의학 교육과정이나 실습 과정에 리도카인을 사용할 일이 없고 한의대에서 리도카인을 사용한 임상실습을 제대로 한다는 자료도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한의대에서 리도카인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교육한다는 사정만으로는 한의사가 리도카인 사용의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심정지 등 부작용이 발생해도 한의사는 에피네프린 등을 처방할 권한이 없으므로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적시에 적절한 부작용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없는 만큼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사용하면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상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보조적 수단'이나 '고의성 없다' 주장 모두 인정 안 해

리도카인을 약침과 섞어 '보조적 수단'으로 썼다는 한의사 A씨 진술도 부적절하다고 했다. 변론에서 한의사 A씨는 환자 통증과 알레르기 반응을 다스려 편하게 치료받게 하고자 리도카인을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통증과 알레르기 반응 감소'를 위해 사용했다는 진술은 곧 '국소마취로 통증이나 촉각에 대한 반응을 둔감하게 한다'는 리도카인의 약리적 효능과 "그 사용 목적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했다. 따라서 한의사 A씨는 "한방의료행위를 위한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리도카인의 독립적 효능과 효과를 얻고자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한의사 A씨가 사용한 약침액과 리도카인 혼합이 "충분한 연구와 검증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 없다"고 했다. '새로운 의료기술' 차원에서 "시도할 여지는 있더라도 실제 사용은 공식 검증 후" 가능하고 "그전까지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여기에 한의사 리도카인 사용으로 환자가 사망해 처벌된 사례가 이미 존재하고 "의사와 한의사 간에 전문의약품 사용의 면허범위를 두고 공개적 논쟁"이 이어진 점에 비춰봤을 때 "한의사 A씨의 무면허 의료행위에 고의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한의사 측 주장에 모두 이유가 없다면서 항소를 기각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