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법, 의사 폭행하고 '정당행위' 주장 환자 항소 기각
대전·수원에서도 응급실 폭력 사건에 유죄 선고 잇따라
'빨리 치료해 주지 않아 항의하다가', '의사가 원하는 대로 안 해줘서', '아무 이유 없이' 응급실 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잇따라 처벌받았다.
대구지방법원은 최근 경북대병원 응급실에서 의사를 폭행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1심) 판결을 유지했다. A씨 측은 '정당행위'라며 처벌이 너무 무겁다고 주장했으나 기각됐다.
A씨는 지난해 경북대병원 응급실에서 문진하려는 의사의 명치 부위를 2차례 가격하고 난동을 부렸다. 다른 의료진과 경찰이 제지했지만 소용없었다. A씨는 법정에서 "의사가 신속히 치료해 주지 않아 항의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항소심 재판에서도 "피해자를 탓하기만 할 뿐 본인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령인 A씨가 어지러움 등으로 응급실을 방문했고 신속히 치료받고자 하는 마음에 우발적으로" 범행했으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치료해 주지 않고 (의사가) 문진 먼저 했다는 등 이유로 응급의료종사자인 피해자를 폭행해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했다.
대전에서는 지난해 7월 칼로 자해해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 B씨가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쳐 기소됐다. 대전지방법원은 최근 B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 사회봉사와 알코올 치료 강의 수강도 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의 폭행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수원지방법원도 최근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를 위협하며 폭언을 해 기소된 C씨를 징역 4개월에 처했다. C씨는 "의료진이 아니라 동행한 지인에게 한 행동"이라며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현장 녹음 파일에는 "XX놈, 따까리" 등 의료진을 향한 C씨의 욕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수원지법 재판부는 "생명이나 신체에 급박한 위험이 있는 응급 환자 치료가 이뤄지는 응급실에서 의료진을 향해 욕설을 하거나 이들을 폭행할 것처럼 소란을 피워 응급의료 종사자의 진료 업무를 방해했다"며 "그 죄질이 좋지 않다"고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공개한 '2023년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전공의 49.4%가 근무 중 폭언·욕설을 들었다. 22.8%는 물리적 폭력을 겪었다. 지난 2022년 대한의사협회 대회원 설문조사에서는 의사 78.1%가 최근 1년 내 환자나 보호자에게 폭언 또는 폭행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매일 한두 차례는 폭언·폭행을 경험한다는 의사도 1.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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