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자리의원 노동훈 원장(대한비뇨의학회 홍보이사)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자는 논의로 전국이 시끄럽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의료가 붕괴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민들은 제때,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대한민국 의사 숫자는 인구 1,000명 당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꼴지에 가깝다고 하고, 인구 고령화로 의사 숫자가 더 부족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사 단체만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니 뭔가 이상한 꿍꿍이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노동훈 썸네일노동훈 편한자리의원장(대한비뇨의학회 홍보이사)
노동훈 편한자리의원장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했고, 한국과 유사한 단일 건강보험 제도를 가진 일본의 의사 인력 정책을 보자. 일본은 정책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렸다. 지난 2007~2008년 7,000명이던 의대생 숫자를 10~15% 늘려 현재 9,000명 대다. 최근 일본 중앙정부 후생노동성은 이대로 가면 의료인력 과잉이 온다고 의대 정원을 줄이려 했다. 일본의 고령화로 미래 인구가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다. 일본의 지방정부, 의사 단체는 반발했다. 일본 의사는 팀으로 근무하는 형태가 많아 의사 숫자가 많은 게 유리하다. 의료 수가도 한국의 5~6배다.

OECD 통계상 2022년 기준 한국과 일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동일하다. 1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명이었다. 2002년 이후 한국의 의대 정원은 동결됐는데, 어떻게 인구 1,000명당 의사 숫자가 30% 가까이 늘었을까. 의대 정원은 그대로지만 인구가 감소했고 의사는 과거보다 더 오랫동안 일하기 때문이다. OECD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평균 3.7명이다. 한국은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아도, 현재의 인구 추세가 유지된다면 20년 뒤에 평균 3.7명을 따라잡게 된다.

의사 숫자가 늘었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늘어난 의사를 양성하는 비용, 건강보험 재정 증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의사 숫자가 늘어나면 경쟁에서 뒤쳐진 의사가 지방으로 갈 것이다’ ‘경쟁에서 뒤처진 의사가 필수의료로 갈 것이다’는 ‘낙수효과’만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인구 1,000명당 의사 4.6명인 리투아니아를 포함해 대부분의 OECD 국가 의사는 도시에서 일한다. 경쟁에서 뒤처진 의사가 지방으로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의사 숫자가 많아지면 경쟁에서 뒤처진 의사가 필수의료를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자. 필수의료는 생명과 관련된 의사가 많을 것이다. 경쟁에서 뒤처진, 실력이 떨어지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은가. 일본도 성형외과, 피부과의 인기가 많다. 일본의 소청과, 산부인과 수가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그래서 의료 쏠림 현상이 덜하다. 한국 지방의료원에서 연봉 5억원에도 의사를 못 구한다는 것은 숨겨진 사실이 있다. 혼자 근무하므로 당직도 혼자, 책임도 혼자, 의료 사고도 혼자 책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간다.

우리는 OECD 평균과 유럽 의료를 좋아한다. 그들은 정부가 의사 고용과 월급을 보장해준다. 주어진 시간에 받는 월급이 같으니 공무원이다. 의사가 3배인 그리스 의사는 연간 500명의 환자를 본다. 하루에 2명 진료를 보는 것이다. 의사 수 2위인 포르투갈 의사도 하루 3명 정도 환자를 본다. 많은 환자를 보면 근무 강도가 높아지고, 의료 사고에 휘말릴 소지도 많아진다. 그래서 최대한 진료를 적게 본다. 이런 환경에서 의사단체는 의사 숫자를 늘려 달라, 의사 급여를 높여 달라 단체 행동을 한다.

반대로 우리는 수가로 통제한다. 경영 리스크, 파산, 의료사고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 소득 보장도, 근로 시간 보장도 없다. 대학병원 전공의는 주 80시간의 근무를 한다. 다른 직종에서 주 80시간 근무를 요구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될 것이지만, 대한민국 대학병원은 그렇게 유지된다. 한국 의사는 진료 횟수를 늘려야 소득이 보장된다. 한국 의사는 1년에 6,000건, 일본은 4,000건 진료를 본다. 의료 시스템 차이가 만든 결과다. OECD 평균만 적용하기엔 시스템이 너무 다르다. 그리고 증가하는 의료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어떤 정책을 입안한다면 기존의 문제는 무엇이며, 향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이며,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 비용 대비 효용성 등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 증가되는 의료비용 부담 등이 논의된 적은 없는 것 같다. 현재 건강보험 예비비는 60조원 정도로 3개월 정도의 의료비를 충당할 수 있다. 건강보험 법정 상한은 8%로 제한된다. 증가하는 의료비에 대한 논의 없이 의대생 숫자만 늘린다는 것은 미래 세대에 큰 불행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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