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구 교수의 ‘액티메디’, 통합 재활 솔루션으로 혁신 예고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운동 열심히 하셔야 해요.”
정형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의사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막막하다. ‘어떤 운동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듣기 어렵다. 값비싼 도수 치료를 몇 번 받아보지만 그걸로 끝. 결국 대부분의 환자들은 수술 후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을 제대로 된 재활 없이 보내며 더딘 회복과 통증에 시달린다.
국내 무릎 스포츠 의학의 권위자인 한양대 명지병원 정형외과 김진구 교수(의료원장)는 지난 30년간 이런 환자들을 수없이 마주했다.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것이 수술 그 자체가 아니라 수술 후의 꾸준한 관리와 운동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의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은 수술 후 재활에 대한 보상 체계가 거의 전무합니다. 의사도, 병원도 열정만으로 환자 재활에 매달리기엔 한계가 명확했죠. 이 ‘끊어진 고리’를 잇고 싶었습니다.”
‘운동이 약’이라는 철학, 첨단 기술과 만나다
그렇게 10년간의 고민 끝에 그가 내놓은 해답은 ‘창업’이었다. 2024년 설립된 ‘액티메디(Actimedi)’는 그의 오랜 신념인 ‘운동이 약이다(Exercise is Medicine)’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한 결정체다. 액티메디는 단순히 운동 동작을 알려주는 앱이 아니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 환자의 정밀 데이터 측정,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 제공, AI 상담, 데이터 축적 및 분석까지, 환자의 회복 전 과정을 아우르는 거대한 ‘통합 디지털 치료 플랫폼’이다.
액티메디 시스템의 핵심은 환자용 앱 ‘니프레시(KneeFresh)’와 의료진용 데이터 시스템 ‘라이즈케이(RISE-K)’다. 환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의사는 ‘라이즈케이’에 환자의 진단명, 수술 정보, 운동 제한 조건 등을 클릭 몇 번 혹은 음성 명령만으로 입력한다. 그러면 환자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니프레시’ 앱으로 개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재활 운동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전송된다.
환자는 집에 돌아와 앱을 켜고 운동을 시작한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환자의 자세와 관절 각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자세가 정확합니다”, “조금 더 천천히”와 같은 피드백을 준다. 운동 중 궁금한 점이 생기거나 통증이 느껴지면 AI 어시스턴트 ‘액티버디(ActiBuddy)’에게 질문하면 된다.
그러면 김진구 교수의 얼굴을 한 ‘메타휴먼’이 나타나 그의 저서와 논문을 기반으로 10초 안에 정확한 답변을 영상으로 설명해준다. 마치 주치의가 24시간 곁에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흩어진 데이터를 ‘가치’로…의사와 환자 모두를 위한 혁신
“그동안 의사들은 논문을 쓰기 위해 따로 연구원을 고용해 환자 데이터를 엑셀에 손으로 입력했습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죠. 이 비효율을 깨고 싶었습니다.”
액티메디의 또 다른 축인 ‘라이즈케이’는 의료 데이터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의사가 수술실에서 “ACL 수술, 몇 mm 사용했고 접근은 어떻게…”라고 말하면, 음성인식 AI가 이를 분석해 국제 표준 양식에 맞춰 데이터를 자동으로 구조화하고 저장한다. 이렇게 쌓인 양질의 ‘리얼 월드 데이터’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먼저 환자에게 ‘초개인화’된 치료를 제공한다. 수많은 환자들의 회복 과정 데이터가 쌓이면, AI는 특정 환자와 가장 유사한 그룹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당신은 3주 후에 조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정밀한 예측과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또 의료진에게는 최고의 연구 플랫폼이 된다. 여러 병원의 데이터가 익명화된 상태로 ‘라이즈케이’에 모이면, 의사들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20년 내공을 200억 가치로, 과감한 도전이 현실로
김진구 대표의 아이디어는 혁신적이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처음에는 외주 개발을 맡겼다가 7개월 치 결과물을 모두 폐기하는 쓰라린 경험도 했다.
“의사의 언어와 개발자의 언어는 너무 달랐습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계속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의료 프로그램을 ‘완성품’으로 접근하는 외주 방식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는 방향을 틀었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을 직접 채용해 내부 팀을 꾸렸다. 그리고 투자 유치에 나섰다. 그는 “내 20년 연구 결과와 노하우의 가치”라며 회사 밸류를 200억원으로 과감히 제시했고, 그의 비전을 알아본 한 투자사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액티메디는 현재 임상시험을 준비하며 내년 초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수술만 하고 나면 끝’이었던 기존 정형외과 진료의 한계를 넘어, 병원과 환자를 데이터로 연결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이제 막 첫발을 떼었다.
30년간 환자의 무릎을 고쳐온 노교수의 마지막 도전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어떤 혁신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