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H·FDA 중단, 한국의 의료 연구활동 및 미국 진출 기업에도 변수
최근 발효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은 메디케어 지급 지연, 원격진료 축소, 국립보건원(NIH) 연구 중단, 식품의약국(FDA) 심사 차질 등 보건의료 전반에 심각한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미국의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한국의 연구와 신약 개발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연방정부가 10월 1일(현지시간)부로 2026년 예산안 합의에 실패해 셧다운에 돌입했다.
셧다운은 연방정부가 법정 시한 내에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정부 기능의 일시 중단이다. 이번 사태는 하원이 11월 21일까지 정부 운영을 연장하는 단기지출법(Continuing Resolution, CR)을 단독 통과시켰으나, 상원 민주당이 별도의 대안을 내놓으며 합의에 실패한 데서 비롯됐다.
상원안은 10월 말까지 정부를 운영하는 대신 건강보험 보조금 연장, 메디케이드 삭감 철회 등을 포함했으나, 공화당의 반발로 무산됐다. 결국 법정 시한인 9월 30일까지 단기·정식 예산안 모두 처리되지 못하면서 셧다운이 현실화됐다.
보건복지부(HHS)와 산하기관들의 비상운영계획(Contingency Plan)에 따르면, 메디케어 청구·지급은 계속되지만 규정·인력 공백으로 지연이 불가피하고, 팬데믹 기간 한시 완화됐던 메디케어 원격의료 유연성은 9월 30일부로 대부분 만료돼 이용 범위가 대폭 축소됐다.
국립보건원(NIH) 임상센터의 신규 환자 입원은 중단되며, 동료평가 및 새로운 연구비 집행도 멈춘다. 식품의약국(FDA)은 수수료 잔액 등으로 핵심 심사 기능을 유지하되 신규 의약품 신청 접수와 일부 심사가 제한된다. 보건복지부 전체로는 직원의 41%가 즉시 무급휴직에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메디케어 "지급 유지되지만 지연 불가피"
보건의료 현장에서 가장 직접적인 파장은 메디케어다. 미국의 노인·장애인 대상 공적보험인 메디케어는 법적으로 의무지출 항목이라 지급 자체는 멈추지 않는다. 다만 청구 처리와 행정 지원을 담당하는 인력이 대거 휴직에 들어가 장기화할 경우 지급 지연이 불가피하다.
특히 매년 11월 전후 발표되는 의사 수가(Physician Fee Schedule), 외래환자 진료수가(Hospital Outpatient Prospective Payment System) 등 핵심 규정의 최종 확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셧다운과 동시에 메디케어 원격진료 특례가 만료된 점도 환자 접근성에 심각한 차질을 예고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확대됐던 재택 진료, 음성통화 진료 등은 모두 중단됐다. 이제 메디케어 수급자는 농촌 지역 환자에 한해 지정된 의료기관으로 직접 이동해야만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 가정에서의 진료나 음성통화 서비스는 불가능해졌다.
의학 관련 연구사업 사실상 중단
국립보건원(NIH)의 연구 활동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보건복지부의 비상 운영계획에 따르면 필수 안전관리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NIH 인력이 휴직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NIH 임상센터는 기존 환자 치료만 유지하고 신규 환자 모집은 전면 중단된다.
동물실험 유지, 필수 실험실 관리 등 최소한의 기능은 유지되지만, 외부 연구자 지원 업무는 중단된다. 연구비 수혜자는 기존에 지급된 자금을 사용할 수 있으나, 프로그램 담당자와의 연락, 전산 지원, 신규 과제 신청 및 심사 모두 불가능하다. 셧다운 기간 제출된 연구비 신청서는 정부 재개 후 재접수가 권고된다.
특히 10월 1일 이후 발효 예정이던 신규 연구비 수혜자는 공식 통보(Notice of Award)를 받지 못해 연구 개시 자체가 지연된다. NIH 심사위원회(peer review) 회의, 자문위원회 활동도 모두 중단돼 연구 일정이 줄줄이 미뤄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가 지원하는 의학 연구 프로그램인 CDMRP(Congressionally Directed Medical Research Program)도 대부분 인력이 휴직에 들어간다. 기존 계약은 선지급 방식으로 운영돼 당분간 연구가 유지되지만, 담당자 부재로 심사와 행정 절차는 중단된다.
FDA는 사용자 수수료 기반으로 핵심 기능을 유지하지만, 신규 허가 신청 접수와 일부 심사가 지연된다. FDA의 신규 접수 제한은 후기임상·허가 임계점에 도달한 기업에 실질적 타격이 될 전망이다. 일부 기업은 보완자료 제출이나 회의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자금조달·상장 계획, 파트너십 딜 클로징에도 변수로 작용한다.
한국에 미칠 파장은?
한국 제약사와 연구자는 다수의 임상시험을 미국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NIH가 신규 연구비 지급을 멈추고, 신규 환자 모집을 중단하면 이들 임상시험의 개시·진행이 지연된다. 이미 승인받은 과제도 담당자 부재로 행정 지원이 막히면서 연구 일정 전반이 늦어질 수 있다.
특히 항암제·혈액질환 신약 연구처럼 미국 환자 모집 비중이 큰 임상은 직접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한국 내 연구 진행 속도에도 영향을 미쳐, 최종 신약 개발 시점이 늦춰질 위험이 있다.
또 NIH 연구비 중단은 다국가 협력 과제에도 영향을 준다. 한국 연구자가 참여 중인 국제 공동연구는 행정·재정 지원이 끊기면서 협력 구조가 약화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신약이나 바이오시밀러의 미국 허가 신청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FDA가 신규 허가 접수를 중단하거나 심사 속도를 늦추면, 이미 신청을 마친 기업조차 허가 일정이 뒤로 밀린다. 이는 해외 진출 전략, 투자 유치, 라이선스 아웃 계약에도 변수로 작용한다.
미국의 셧다운 사태는 의료 재정과 연구 지원이 정치적 변수에 따라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국도 글로벌 협력 연구와 신약 개발을 활발히 추진하는 만큼, 미국 정치 상황은 단순한 외부 뉴스가 아니라 국내 연구·산업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다.
정치적 교착이 환자와 연구 현장을 위협하는 상황은 결국 세계적인 신약 개발 지형에도 파급력을 가진다. 이번 사태는 한국 의료계에도 '정치와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진료·연구가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