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심사 결과 변경도 수가 조정 업무에 포함"
한의사에 조정 금액 2,600만원 보험사 반환 선고
대법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심사 결과 직권 조정 권한을 확인했다. 보험사와 의료기관이 심평원 심사 결과 통보 후 90일 이내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그 결과에 합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최근 A 보험사가 한의사 B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심평원이 삭감한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정산금을 보험사에 돌려주도록 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심평원은 지난 2021년 10월 21일경 한의사 B씨가 운영하는 C 한의원 현지확인심사를 진행하고 같은 해 7월 14일부터 10월 7일 사이 심사한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조정해 정산금액 3,570만9,480원을 반환하라고 통보했다. 조정 대상은 교통사고 내원 환자 271명에 대한 입원료와 투자법침술, 한방물리요법 진료수가다.
A 보험사는 B씨의 허위청구로 삭감 당한 정산금액 3,570만9,480원은 부당이득금이므로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과 시행규칙에 따르면 의료기관과 보험사는 심평원 심사 결과 통보일로부터 90일 내 이의제기가 가능하므로 "심평원 결정 후 90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결정이 확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A 보험사는 "심평원이 C 한의원 최초 심사를 하고 90일 이내 현지 심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불복기간인 90일 내에 변경했다. 최초 심사 결정이 현지 심사 후 결정으로 변경됐다고 봐야 한다. 한의사 B씨는 이로부터 30일 내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에 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기간이 끝나는 날 심평원의 현지 심사 결정이 확정됐다"면서 부당이득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3년 6월 이 사건 1심 재판에서는 A 보험사 청구가 기각됐다.
재판부는 "최초 심사 결정이 통지되면 심평원은 이의제기가 있을 경우에만 그에 대해 심사할 수 있을 뿐"이라면서 "이의제기가 없는 상태에서 심평원 스스로 최초 심사 결정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의제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보험사와 한의사 사이에 최초 심사 결정대로 진료수가가 합의됐다고 봐야 한다. 보험사가 지급한 돈은 이 합의를 따랐으므로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한 돈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A 보험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90일 이의제기 기간이 지난 912만5,530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2,658만3,950원은 부당이득으로 B씨가 반환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지연이자 지급도 요구했다.
한의사 B씨는 "자배법 등에는 심평원이 현지확인 결과를 통해 심의결과를 임의로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 따라서 현지 심사 후 결정은 법률상 근거가 없고 법적 구속력도 없다"고 반박했다. 당시 A 보험사가 최초 심사 결정에 대해 이의제기나 심사 청구를 하지 않았으므로 "A 보험사가 최초 심사 결정 내용에 합의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24년 11월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1-1민사부는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A 보험사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B씨에게 부당이득금을 반환하고 지연이자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소송 총비용도 부담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최초 심사 결과 통보 이후 90일이 경과하지 않았고 보험사나 의료기관이 이의제기도 하지 않은 시점에 심평원이 종전 심사 결과를 변경하는 취지로 새 심사 결정을 하고 그 결과를 통보했을 때 의료기관 등이 90일 동안 새로운 심사 결과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후행 심사 결과에 합의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심평원은 보험회사로부터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심사·조정 등 업무를 위탁받았다. 심평원의 기존 심사 결과 변경도 수가 '조정' 업무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심사 결과 변경이 조정 업무에 해당하는 이상 심평원은 자배법 시행규칙에 따라 기존 심사 결과의 변경 결정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지 심사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경우 "기존 심사 결정을 번복하고 수정할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도 했다. 여기에 "합의가 의제되지 않은 심사 결과를 번복해 수정한다고 해서 정의 관념에 반하거나 당사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판결이 뒤집히자 이번에는 한의사 B씨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대법원은 원심(2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면서 만장일치로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심평원은 (구)자배법에 따라 심사 결과에 대한 합의 의제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직권으로 기존 심사 결과를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보험사나 의료기관이 심사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심평원도 기존 심사 결과를 조정하는 심사 결정을 하지 않은 채 90일이 지나야 보험사와 의료기관이 이의 없이 심평원 심사 결과에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