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의도성모병원 혈액내과 전영우 교수
“2세대 BTK 억제제, 1세대 단점 보완…부작용 감소”
“글로벌 스탠다드로 발맞춰…MZL 급여 확대 기대”

백혈병이라는 진단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영화나 드라마 속 백혈병 환자의 이미지는 강력한 항암 치료와 탈모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Chronic Lymphocytic Leukemia, CLL)은 그 진단명과 달리 매우 천천히 진행되는 질환으로, 초기 몇 년간은 큰 변화 없이 무병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드문 희귀암 중 하나인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B 세포 림프구가 성장하면서 암으로 변해 정상적인 혈액세포의 생산을 방해하며 발생하는 질환이다. 주로 고령자에서 많이 발생하며, 재발과 관해를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치료제로는 브루톤 티로신 키나아제(Bruton tyrosine kinase, BTK) 억제제가 대표적이다. BTK는 B 세포 수용체 신호 전달 경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B 세포의 활성화, 증식, 생존에 관여하는데 BTK 억제제가 이 신호 전달 경로를 차단함으로써 질환의 진행을 억제한다.

국내에는 1세대 BTK 억제제 ‘임브루비카(성분명 이브루티닙)’가 처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2세대 BTK 억제제인 ‘브루킨사(성분명 자누브루티닙)’가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게 되면서 환자들의 치료 환경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혈액내과 전영우 교수를 만나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특성과 치료 과정, 최신 약제의 임상적 의의 등에 대해 들어봤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혈액내과 전영우 교수.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혈액내과 전영우 교수.

-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국내 발생 빈도는 어느 수준인가.

매년 150~200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는 70세 이상 고령 환자 비율이 매우 높으며, 국내에서는 60대 초중반에 많이 발병한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다른 혈액암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며, 이로 인해 환자나 가족들이 이 질병을 인지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주요 특징은 무엇이고, 환자가 진단받게 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나눠보면 첫 번째는 기력저하나 체력저하로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다. 보통 현대인들이 느끼는 피곤함의 개념을 넘어선,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이 생겨 직장을 쉬거나 그만두어야 할 정도의 체력저하가 나타난다. 하지만 초반에 피검사를 통해 백혈구 수치를 측정해도 거의 정상이거나 소량 증가하기 때문에 확진하기가 쉽지 않다.

두 번째로는 림프절이 커지는 경우인데 모든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다. 림프절 비대는 어느 정도 질병이 진행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니 치료 시기가 늦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세 번째로 환자에게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다. 종합건강검진을 했는데 우연히 백혈구 이상증이 확인돼 정밀 검사를 해보니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고 진단받는 경우도 있다.

-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진단이 내려졌다고 해도 많은 경우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항암제는 암 세포를 파괴하고 완치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안타깝게도 완치가 어렵다. 따라서 현재의 치료 전략은 몇 가지 치료제를 이용해 최대한 무병 상태를 장기간 유지하는 데 맞춰져 있다.

진단 후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보통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진단받더라도 초기 몇 년 간 환자에게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진행 상태를 지켜보는 것(Watch-and-wait)이 치료를 위해 고려되는 방법 중 하나다.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은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거나 림프절 크기가 몇 개월 만에 2배 이상 커진다거나 하는 등 평소와 다른 지표를 보일 때다. 혈액암 특성상 국소 치료는 힘들고, 보통 전신 항암 치료가 권장된다.

- 그렇다면 국내 환자들은 현재 어떤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가?

과거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발견을 해도 치료 옵션이 부족한 대표적인 질병이었다. 치료 기술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에는 세포독성 항암제가 사용됐고, 치료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는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10여 년간 획기적인 치료법들이 등장하면서 과거에 사용하던 치료 방법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예전에 쓰이던 치료제는 머리가 빠지고 구토를 하는 등 치료 과정에서 환자 부담이 컸는데,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 세포독성 항암제에 비해 독성이 약한 경구 표적항암제가 사용되고 있다.

표적항암제 중 대표적인 약제는 BTK 억제제로, 암세포가 발현되는 특정 길목을 차단해 병을 치료하는 기전을 가졌다. 1세대부터 지속적으로 개발됐고, 현재는 3세대 치료제까지 나와 있다. 5~6년 전부터 1세대 BTK 억제제가 국내 환자들에게 사용되기 시작했고 최근 2세대 BTK 억제제가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게 돼 좋은 치료 옵션이 늘었다.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치료 방향성을 국내 환자들에게 적용해 나가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래도 2세대가 1세대의 단점들을 보완해 개발된 치료제이다 보니 2세대 처방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진행속도 특성상 효과를 알아내기엔 장기간에 걸친 데이터가 필요해 처방에 따른 결과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세대별 BTK 억제제의 안전성 프로파일은 어떠한가?

BTK 억제제의 특성상 출혈, 심장 기능 저하, 부정맥이 따라올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거나 설정한 타깃이 아닌 대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오프타깃 효과(off-target effect)라고 하는데, 2세대 치료제는 오프타겟 효과를 개선시켜 심장 기능저하 또는 부정맥 발생률을 통계상 절반으로 감소시켰다.

현재까지 1세대 치료제를 처방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난 환자가 소수 있었다. 특히 부정맥이 심한 환자는 1세대 치료제를 사용하기 어렵다. 가슴 두근거림이나 약을 먹을 때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감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용량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하기도 한다. 반면, 2세대 치료제를 장기간 사용한 환자들 기준으로는 아직까지 심장 기능 저하 이상반응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2세대 BTK 억제제의 효과와 안전성을 관찰한 SEQUOIA 연구, 1세대와 2세대를 비교한 ALPINE 연구의 결과에서 나타났듯이, 안전성 면에서도 1세대와 2세대 간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2세대의 한계점으로는 1세대처럼 장기간 누적된 관찰결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피르토브루티닙’과 같은 3세대 BTK 억제제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

3세대 치료제는 1, 2세대 치료제와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1세대와 2세대를 사용해 치료했는데 재발할 경우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라 볼 수 있다.

- BTK 억제제 처방 시 내성이 발생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혈액암 계통의 치료제가 실패하는 경우는 보통 내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BTK 억제제의 치료 반응률은 80%에 육박하고, 내성은 20% 이하 수준이다. 그럴 때에는 3세대 치료제 혹은 BCL-2 억제제(베네토클락스) 등 다른 계통의 치료제가 필요할 수 있다. 내성 면에서는 1세대보다 2세대가 약 10% 정도 개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국내외 가이드라인에 세대별 BTK 억제제는 어떻게 반영돼 있나.

NCCN의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및 소림프구성 림프종(SLL) 가이드라인에서는 1차 및 2차 이상의 후속 치료 옵션까지 모든 범주에서 자누브루티닙 단독요법, 아칼라브루티닙(제품명 칼퀀스) 단독요법 또는 오비누투주맙(제품명 가싸이바)과의 병용요법 등 2세대 BTK 억제제 요법을 선호되는 치료법(preferred regimen)으로서 최상위 등급인 ‘category 1’로 권고했다.

BTK 억제제로 가장 먼저 등장한 이브루티닙이 최근까지 1차 및 2차 이상에서 선호되는 치료법(preferred regimens) 범주에 권고되고 있었는데, 2세대가 등장하면서 안타깝게도 순위에서 밀려 기타 권유되는 치료법(other recommended regimens) 범주로 이동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6월 1일자로 자누브루티닙이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소림프구성 림프종의 1차 및 2차 치료에서 보험 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됐는데, 국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내 환자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 브루킨사 급여 확대로 소림프구성 림프종 치료 환경도 개선됐다 볼 수 있나.

소림프구성 림프종은 희귀한 질환인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보다도 더 희귀하게 발병한다. 그 수가 매우 적다 보니 1세대 BTK 억제제가 급여 승인받을 때 소림프구성 림프종까지는 받지 못했다. BTK 억제제를 사용해야 하는 환자인데 급여 적용이 안 되니 차선책으로 세포독성 항암제를 사용했던 경험이 있다. 자누브루티닙이 소림프구성 림프종에까지 급여 적용이 되면서 환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B세포 림프종(B cell lymphoma) 중 변연부 B세포 림프종(Marginal zone lymphoma, MZL)은 질병의 발생 기전이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과 매우 유사한 카테고리로 분류되며 치료제도 비슷하다. BTK 억제제가 해당 질환에서도 급여 적용을 받아 환자들의 삶의 질이 더욱 개선되길 기대한다.

- 마지막으로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희귀질환이다 보니 진단명을 환자에게 알려주면 청천벽력이라 느끼는 것이 대부분이고, 더 나아가 삶을 정리하겠다고 하는 환자도 있었다. 아직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이니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의료 기술로 완치는 힘들지만 진단과 동시에 치료제를 거의 평생을 복용하며 관리할 수 있다. 장기간 치료하던 환자들은 수년이 경과하고 나면 자신이 희귀한 림프종 환자라는 사실을 무덤덤하게 느낀다고 말하기도 한다.

완치가 되지 않더라도, 환자에게 부여된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있고, 이를 도와주는 치료제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부디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치의와 면밀히 소통하면서 진료받기를 바란다. 마라톤이라는 대회를 나가, 주치의라는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인생의 길을 같이 뛴다고 생각하며 희망을 갖고 긴 호흡으로 임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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