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HN 함자 회장 "환자 위한 다양한 방법 강구해야"
국내 전문가들, 완화의료 보상 강화 필요성 강조
아시아태평양 지역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가도 의사조력자살(조력존엄사)에 반대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라고도 했다. 국내에는 지난해 6월 의사조력자살을 도입하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관련 논쟁을 촉발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와 APHN(Asia Pacific Hospice Palliative Care Network)이 5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개최한 '제15차 아시아태평양 호스피스완화의료 학술대회(Asia Pacific Hospice, APHC 2023)' 기자회견에서는 의사조력자살이 말기 환자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전문가 지적이 이어졌다.
개인의 자기 결정권이 중시되는 서구권과 달리 가족 관계성을 중시하는 아시아 문화권에서 의사조력자살이 확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APHN 에드닌 함자(Ednin Hamzah) 회장은 “서구에서 개인의 의사결정권을 중시하는 반면 아시아는 가족 관계를 중시한다. 서구권에서 가족과의 관계성이 약해지 의사조력자살이 확산됐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의사인 함자 회장은 지역사회 호스피스·완화의료 제공 자선단체인 '호스피스 말레이시아(Hospis Malaysia)' 회장도 맡고 있는 완화의료 전문가다.
함자 회장은 “말기 환자들의 경우 고통이 더 극심하며 그런 부분에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다. 완화의료는 고통을 완화하고 환자들이 사회·가족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며 “사회에서도 의사조력자살을 해결책으로 고려하는 게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다양하고 좋은 방법을 강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함자 회장은 “의학이 발전하며 죽음에 의료적인 개입이 늘어났다. 이에 집 등 지역사회가 아닌 집중치료실이나 병원 입원 중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그러나 의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다. 사람 간 관계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애도하는 아시아 문화의 가치를 더욱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의사조력자살보다 생애말기돌봄과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PHC 2023 조직위원회 홍영선 대회장(서울성모병원)은 “의사조력자살을 시행하는 나라에서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처음 시행됐을 때는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나 경제적인 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며 “우리나라에서 1년에 자살 예방을 위해 쓰는 예산이 70억원이다. 자살 예방을 위해 수십억원을 쓰는데 한편에선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나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경희 조직위원장(영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도 “의사조력자살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생애말기돌봄을 적극 지원하는 게 우선”이라며 “지난해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때 국민의 60% 이상이 생애말기돌봄을 우선 지원한 다음 의사조력자살을 논의해야 한다고도 했다”고 강조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위한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심재용 학술위원장(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환자의 의미 있는 삶이 아닌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만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환자를 가족·사회에 연결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으며 완화의료를 하는 의사들의 번아웃도 심해지고 있다”며 “환자를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환자를 파악하고 알아가는 과정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APHC 2023은 지난 2005년 이후 18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된 학술대회로,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27개국에서 1,300여명이 참석했다.
올해는 '새로운 시대의 완화의료 지평확대'라는 주제로 총 487편의 초록을 채택했으며 강연 등을 통해 호스피스·완화의료 분야의 최신 지견을 공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