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주최 토론회서 '조력존엄사' 전문가 의견 엇갈려
윤영호 교수, "웰다잉 불평등으로 인권 침해 심각"
김율리 박사 "경제적 문제로 조력자살 선택할 수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2일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청년의사).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2일 인권위 인권교육센터에서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청년의사).

의사조력자살이 말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한 '최후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재차 나오고 있다. 환자들이 호스피스완화의료보다 더 쉽고 비용이 덜 드는 의사조력자살을 택하도록 내몰릴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2일 인권교육센터에서 개최한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에서는 의사조력자살 논란을 일으킨 일명 ‘조력존엄사법’에 대한 찬반의견이 이어졌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는 호스피스완화의료가 가능한 질병이 제한되는 등 '웰다잉(Well-dying)'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암 사망자의 23%만이 호스피스완화의료 기관을 이용했으며 이는 전체 사망자의 6% 수준이다.

윤 교수는 “웰다잉의 불평등으로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며 “의사조력자살을 원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의사조력자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위스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 등록한 한국인은 2022년 기준 117명으로 아시아 국가 중 최다”라고 전했다.

대다수 국민이 의사조력자살에 찬성하고 있으며, 의료계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의사들이 동참하고 있다고도 했다.

윤 교수는 “지난 12일 KBS·서울신문·케이스텟리서치가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1% 국회의원의 51%, 의사의 50%가 의사조력자살에 찬성했다”며 “대한의사협회는 그동안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 자체 조사를 거친 후 입장을 밝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와 호스피스완화의료 확대를 병행해 말기환자의 웰다잉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윤 교수는 “벨기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사조력자살 실행 환자의 74%가 임종 전 완화의료를 이용했다. 미국 오레곤주와 워싱턴주에서도 76%의 환자가 의사조력자살 전 호스피스를 이용했다”며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는 협조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로 절감된 의료비를 기금으로 사용하면 된다”며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인정하고 병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확인을 의무화하는 등 자기 결정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적 부담으로 의사조력자살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 것"

(왼쪽부터)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 도쿄대학 사생학·생명윤리전공 김율리 박사(ⓒ청년의사)
(왼쪽부터)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 도쿄대학 사생학·생명윤리전공 김율리 박사(ⓒ청년의사)

반면 도쿄대학 사생학·생명윤리전공 김율리 박사는 해외 사례를 통해 의사조력자살제도와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 활성화 병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지난 2011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의 한 대학병원은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 후 완화의료 의사를 2명에서 1.5명으로 줄였다”며 "완화의료를 제공하려면 임상의의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사조력자살이 쉬운 해결책으로 인식되면 완화의료 제공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의사조력자살이 환자가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될 경우 보험이 적용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조력자살로 사망하는 비용은 입원치료비용보다 더 저렴할 것"이라며 "어쩔 수 없이 치료 대신 조력자살을 선택하는 환자도 있을 수 있다. 윤리적 문제뿐 아니라 경제적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조력자살이 도입되더라도 소수의 의사만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말기 환자가 적시에 처치를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도 했다.

김 박사는 “미국 의사들에게 물었을 때, 의사조력자살을 유효한 의료 옵션으로 승인하는 의견에 49%가 찬성했지만 무조건 수행하겠다고 답한 의사는 9%에 불과했다”며 "의사조력자살이 도입된 후 소수의 의사만 시행한다면 대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명의를 찾아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현재의 의료상황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말기 환자에 대한 의료 시설과 재정적 지원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의사조력자살이 선택 가능한 치료가 될 수 있는가”라며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나 그 방법이 반드시 의사조력자살일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안규백 의원실 "법안 통과 시 완화의료 인프라 제도적으로 보완"

조력존엄사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한 안규백 의원실 이정효 보좌관은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했다.

이 보좌관은 “법안은 대상자를 ▲말기환자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는 경우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로 조력자살을 희망할 경우로 한정한다”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호스피스완화의료로 안내할 수 있다. 향후 법안이 통과되면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 투자 등 제도적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법안 부칙에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돼 있다”며 “한국 의료 시스템이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는 만큼 의료계에서 관련 가이드라인과 프로토콜 개발, 의료진 간 협력을 강화 등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원실도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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