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의료법인 상대 손해배상 청구 기각
"수술 후 뇌경색 사실만으로 의료진 과실 단정 못해"
의료진 과실로 뇌경색 후유장애를 입었다며 7억원대 소송을 당한 병원이 배상 책임을 벗었다. 법원은 의료진이 불가항력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병원 운영진을 상대로 한 환자 측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5년 만이다.
소송을 제기한 환자 A씨는 지난 2017년 3월 13일 B의료법인이 운영하는 C병원에서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심장 수술을 받았다. C병원 의료진은 A씨가 심부전과 대동맥 파열 가능성이 있고 수술 외 방법이 없다고 보고 가급적 빨리 치료받길 권했다.
이에 A씨는 이날 오전 8시경 상행 대동맥 치환술과 기계 판막을 이용한 대동맥판막 치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을 마치고 인공심폐기를 떼어낸 직후 대량 출혈이 일어났다. 의료진은 심폐기를 재가동해 지혈하고 14일 오전 2시 30분에 A씨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14일 오후 깨어난 A씨가 신체 왼쪽에 위약감을 호소하자 의료진은 환자 상태를 고려해 18일 뇌CT검사를 실시했으나 병변은 관찰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A씨 의식이 불명료해지고 섬망 증상이 나타나자 22일 중환자의학과로 전과하고 상태를 계속 지켜봤다. 27일 A씨는 전신성 강직성간대성 발작 증상을 보였고 뇌MRI 검사에서 급성 뇌경색 소견을 받았다. 현재 A씨는 이로 인한 뇌병변 장애로 의식 저하와 사지마비, 인지 저하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에 A씨 측은 B의료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금으로 7억2,989만1,890원과 지연 이자 지급을 요구했다. 수술 중 의료진 과실로 뇌경색이 일어났는데 진단과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A씨 측은 "판막 조직 손상을 피하고 수술 부위에 남은 조직을 충분히 세척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했다"며 "대동맥벽이 죽상경화로 약해졌는데도 수술을 중단하지 않았고 인공심폐기를 최소한만 사용하는 데도 소홀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환자가 수술 직후 왼쪽 몸에 위약감을 호소했는데도 CT·MRI 검사와 재관류 치료를 지체해 뇌경색을 악화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같은 환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입은 장애와 C병원에서 받은 수술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진 과실을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오히려 C병원 의료진이 "A씨 수술 부위 상태를 확인해 최선의 조치를 다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뇌경색은 환자가 받은 수술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합병증에 해당한다. 따라서 급성 뇌경색이 관찰됐다는 소견만으로 수술 과정에 의료진 과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했다.
A씨 대동맥 판막이 이미 심한 석회화가 일어났고 판막 조직이 "조각조각 파손돼 판윤 주위를 제외하고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인 상황에서 C병원 의료진은 "판막 조직이 떨어져 나가 전신 색전을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판막을 제거했고 남은 조직이 있는지 여러 차례 세척과 확인 절차를 거쳤다"는 점도 지적했다.
수술 직후 혈압 상승으로 봉합 부위에 출혈이 발생했으나 감정의 의견을 받아들여 "집도의가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수술을 마쳤다면 수술 후 약해진 대동맥 벽에서 출혈이 발생한 것은 불가항력적이었다"고 판단했다.
지혈을 위해 인공심폐기를 재가동하면서 뇌 손상을 입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량 출혈이 발생한 상황에서 인공심폐기를 다시 가동하고 심장을 정지하는 방법 외에 다른 지혈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봤다.
의료진이 뇌CT·MRI 검사를 지연해 뇌경색 진단이 늦었고 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도 근거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는 수술 직후에는 몸 왼쪽 위약감만 호소했고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난 시점은 뇌CT검사를 한 18일경이다. 그간 의료진은 뇌경색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A씨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신대체요법과 항응고제 투여를 해왔다"며 "A씨는 대동맥 수술을 받아 재관류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항응고제 치료만 계속했다고 과실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뇌경색 발병 24시간 내에는 뇌CT 검사에서 병변을 명확하게 관찰할 수 없고 뇌경색으로 진단한다고 해서 치료 방법이 달라지지 않는다"며 "A씨의 뇌경색이 27일 발생한 경련 발작으로 유발됐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이전인 20일경에 뇌MRI 검사를 했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료진이 수술 전 설명의무와 수술 후 지도·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A씨 청구에 이유가 없다면서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도 부담하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