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원 교수, "하이드록시우레아 내성 환자, 평균 수명 1~2년 불과"

진성적혈구증가증은 골수 기능 이상으로 적혈구가 과다 생성되는 희귀 혈액암이다. JAK2 돌연변이를 비롯한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적혈구가 과도하게 생성돼 혈전증, 색전증과 같은 심장계 합병증으로 사망하거나, 환자의 약 20%는 골수섬유증 또는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행될 정도로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다.

현재 국내에서 진성적혈구증가증 치료에 유일하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하이드록시우레아'는 혈전증 예방 및 사망률 감소에 효과적이긴 하지만, 질환에 대한 근본 치료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상황. 특히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에 내성이 발현될 경우 적혈구 용적률(hematocrit) 조절이 어렵고, 혈전증이나 심혈관계 합병증 등으로 인해 기대 여명이 1~2년까지 급감한다는 점에서 후속 치료 옵션에 대한 임상적 미충족 수요는 상당하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6년 11월 노바티스가 '자카비(성분명 룩소리티닙)'의 진성적혈구증가증 치료 적응증을 확대하고 두 번에 걸쳐 급여권 진입에 도전했지만 끝내 실패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21년 10월 허가 받은 파마에센시아 '베스레미(성분명 로페그인터페론 알파-2b)'가 올해 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신청서를 제출하고 급여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정철원 교수를 만나 진성적혈구증가증의 치료 지견과 국내 임상적 미충족 수요, '베스레미'의 급여 필요성에 대해 들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정철원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정철원 교수

-진성적혈구증가증은 희귀 혈액암이다 보니 알려진 정보가 적다. 진성적혈구증가증은 어떤 질환인가.

진성적혈구증가증은 혈액을 생산하는 골수 내 JAK2 돌연변이세포로 인해 이름처럼 적혈구만 과다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백혈구, 혈소판을 포함한 전체적 혈구가 증가하는 질환이다.

과다 생성된 혈액 세포는 점성이 높아 혈액 속에서 엉겨 다니며 뇌혈관이나 심장혈관을 막는다. 이 경우 혈전증이나 심근경색 등 혈관성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유전자 돌연변이가 지속되면 골수섬유화증, 급성골수성백혈병 같은 악성암으로 진행될 정도로 치명적인 질환이다. 현재 국내에는 약 5천 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성적혈구증가증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나.

건강검진이 활성화되면서 혈액검사에서 혈액질환 의심 소견을 받고 정밀 검사에서 확진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혈액질환의 경우 적혈구, 백혈구 및 혈소판의 수치 변동이 굉장히 큰 폭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검진만 한다면 빠르게 진단이 가능하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아 조기에 진단받고 빠르게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국내에서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진성적혈구증가증 치료법은 무엇인가.

위험군에 따라 치료 전략이 다르다. 60세 이상이거나 혈관 합병증 발병 위험이 높은 환자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저위험군은 아스피린으로 치료하거나 사혈 치료를 시도한다. 고위험군은 이에 더해 혈액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하이드록시우레아'를 사용하고 있다.

하이드록시우레아는 혈관성 합병증 발생률을 유의하게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근본 치료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한 개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로 피부 점막염이나 궤양, 위장장애 등 이상반응이 나타나 지속적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특히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 후 약 10%의 환자에서 내성 또는 불내성이 발현되는데, 이 경우 혈관성 합병증으로 인해 통계적으로 평균 1~2년밖에 생존하지 못할 정도로 생존율이 낮다.

-그렇다면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의 후속 치료 전략은 무엇인가.

'베스레미'와 '자카비' 두 가지 치료 옵션을 고려할 수 있다. 베스레미는 반감기가 긴 인터페론 제제로 면역 세포를 자극해 골수 내 이상 조혈 세포를 제거하는 기전을 가졌다. 베스레미는 하이드록시우레아로 치료받은 환자보다 높은 완전 혈액학적 반응률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무사건생존율을 유의하게 개선하며 질병의 진행 및 재발 위험을 낮췄다. 이런 효과를 바탕으로 NCCN 가이드라인에서 진성적혈구증가증 1, 2차 치료 옵션으로 권고되고 있다.

'자카비'은 JAK2 유전자의 신호 전달 경로를 차단하는 기전이다. 하이드록시우레아 치료에 내성이 있거나 이상반응이 나타난 환자의 증상 및 삶의 질 개선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질환의 진행 예방을 포함한 진성적혈구증가증 질환의 근본적 치료 가능성에 대해서는 임상 근거가 더 필요하다.

-불량한 예후에도 불구하고 하이드록시우레아로 치료 실패한 환자에서 급여로 사용할 수 있는 후속 치료 옵션이 전무한데.

하이드록시우레아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는 계속해서 혈관성 합병증의 위험에 노출돼 신약에 대한 접근성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신약 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환자가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10년 이상의 추적 생존율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약제가 없고, 하이드록시우레아 대비 높은 경제성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선뜻 보험급여를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로 하이드록시우레아를 쓰지 못하는 환자들은 증상이 심해서 일상생활에 곤란을 겪고 있고, 혈관 합병증의 위험에 계속 노출돼 있다. 언제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이런 환자들은 국내 발생 비율로 따져봤을 때 환자수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정부가 후속 치료제들의 급여 필요성을 인정하고 검토해주기를 임상 현장에서는 바라고 있다.

-국내 혈액암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 제언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현재 암질환심의위원회는 혈액암과 고형암 모두 비슷한 기준을 적용해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혈액암은 질환 특성상 발병률도 적고 생존 혜택을 입증할 만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질환 특수성을 고려해 혈액암 치료제 급여 적정성을 평가하는 별도의 위원회를 신설하거나 혈액암 전문가들의 의견을 중점적으로 반영해 심사하는 등 급여 적정성 평가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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