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5곳 공동 연구로 수가 개발 근거 마련
"중환자 일상 복귀 위해 적절한 재활 수가 필요"
중환자들이 중환자실 퇴원 후 근육 쇠약, 섬망 등 후유증을 겪지 않으려면 재활치료가 필요하지만 한국 의료 현실은 이를 장려하지 않고 있다.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중환자 재활치료 수가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중환자재활학회는 중환자 재활치료 수가 개발을 추진하고 그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중환자재활학회는 11일 세종대 대양 AI센터에서 개최한 제2회 학술대회에서 중환자 재활치료 수가 개발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별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환자 재활치료의 중요성과 현실을 지적했다.
중환자재활학회 홍석경 회장(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은 기자간담회에서 중환자 재활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수가 체계가 없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국내는 중환자 의료 인프라가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중환자 재활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국내에서도 안전하고 체계적인 재활을 위한 수가 책정이 필수"라고 했다.
홍 회장은 중환자실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 중 일부가 근육 쇠약, 인지장애, 기억력 감퇴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중환자실 치료 증후군(Post-intensive care syndrome, PICS)'을 겪는다고 했다. 이에 해외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중환자 재활을 임상에 적용했으며, 그 효과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홍 회장은 "많은 연구에서 중환자 재활치료가 중환자실 재원일수와 병원 입원일수를 감소시키고, 중환자실 장기 재원의 원인 중 하나인 섬망을 줄여준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퇴원 시 신체기능을 호전시켰다는 결과가 공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환자재활학회는 현재 중환자 재활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부와 면담을 통해 수가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현재 한국보건의료원(NECA) 지원을 받아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서지영 교수를 책임자로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충남대병원, 전북대병원, 부산대병원에서 중환자 재활치료 효과를 분석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해당 연구에서는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200명을 집중 재활치료를 수행한 그룹과 일상적인 임상 물리 치료를 수행한 그룹으로 나눈다. 이후 퇴원 후 1년 간 정기적인 설문조사를 진행해 건강 상태와 의료기관 이용 실태, 삶의 질을 비교 분석한다.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구 대상에서 고령자와 암환자 등을 제외했으며, 중환자실 입원 전 일반인이었던 환자로 한정했다. 현재 15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며, 오는 2023년 내 200명에 대한 연구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홍 회장은 “현재 여러 기관이 참여해 연구 데이터를 수집 하고 있다. 내년이나 내후년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며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와 수가를 논의하려고 했지만 필수의료 확충 계획, 이태원 참사 등 여러 이유로 불발됐다. 학술대회 이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중환자 재활, 단순물리치료만 처방 가능…수가 마련해야"
중환자실-병실-재활치료실 연계하는 재활치료 프로그램 제안
보험이사를 맡고 있는 전북대병원 재활의학과 원유희 교수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중환자 재활 활성화를 위한 수가 개발'을 주제로 발표하며 수가 제정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중환자실-병실-재활치료실로 연계하는 재활치료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원 교수에 따르면 국내 상급종합병원 6개소에서 의뢰된 중환자 재활 협진 건수는 지난 2016년 600.8건에서 2018년 836.3건으로 증가했으며, 중환자 재활치료 건수도 3,876.0건에서 4,610.2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전문재활치료가 가능한 중추신경계 상병 외에는 단순물리치료만 처방 가능한 실정으로, 중추신경계 질환이 아닌 중증도가 높은 장애를 가진 환자에게 적절한 재활치료가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원 교수의 지적이다.
원 교수는 "수가가 보장되는 전문재활치료의 경우 상병의 종류가 중요하다. 중추신경계 상병이 있어야 전문재활치료가 가능한데, 중환자 중 중추신경계 질환자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병원에서 10분 이상 단순물리치료를 시행할 때 나오는 수가가 4,450원이다. 이 금액으로는 중환자 재활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며 "기존 재활 수가 외에 중환자 재활에 필요한 평가와 적절한 수가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원 교수는 중환자 재활치료를 중환자실, 병실, 재활치료실로 연계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지속적인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대상은 중환자실 입실 이후 72시간 이상 치료를 받은 환자 또는 48시간 이상 기계 환기가 필요한 환자 중 신체기능 저하가 예상되는 환자로, 1일 2회 50~60분씩 관절가동범위 운동, 유산소 운동 등을 진행한다.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중환자 전담 전문의와 상의해 치료 계획을 수립하고 물리치료사의 보조 하에 적절한 치료를 수행한다. 간호사는 환자의 활력징후 등을 모니터링해 의사에게 보고한다.
의료진이 환자 치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다학제 재활평가 수가도 필요하다고 했다. 원 교수는 "평가 수가가 산정되지 않으면 다학제로 논의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원 교수는 “수가를 개발할 때 재활치료에 의한 환자의 건강상태와 삶의 질 차이를 고려해야한다”며 “최종적으로 급성 중증 질환의 치료 과정 중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중환자실뿐 아니라 병실, 재활치료실까지 연계해 환자가 병원 내에서 충분히 재활치료를 받고 퇴원후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책 수가로 도입하고 인건비를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인제대 일산백병원 재활의학과 임길병 교수는 “현재 수가체계로는 인건비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수가로 도입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중환자 재활 시행 여부를 의료질평가 기준에 반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고려의대 흉부외과 정재승 교수는 “인건비 중 전문의가 가장 비싸다. 중환자 재활의 경우 중환자 담당 전문의,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수가를 개발할 때 반드시 필수인력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창원 의료수가개발부장은 시범사업과 신의료기술 선정 등을 통한 급여화를 제안했다.
이 부장은 “환자 결과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고 근거도 있다면 신의료기술로 급여를 적용하거나 시범사업 형태로 시도해본 뒤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며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경우에는 심평원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복지부와 상의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