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택 의원 발의 '알코올전문병원 등 설립제한'에 전문가들 한숨
전용준 원장 “환자 낙인 찍어버리면 그 환자 회복할 길 없어”
홍나래 홍보이사 “치료받으면 좋아지지만 편견 타파 어려워”

알코올중독전문병원과 정신병원을 학교 주변에 건립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자 병원을 ‘혐오·기피 시설화’ 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권이 나서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9일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은 학교부터 직선거리 300미터 범위 안에는 알코올전문병원 또는 정신병원을 설치·지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법률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 의원은 “학교 앞 알코올전문병원이나 정신병원 건립이 학생들의 등·하굣길 안전과 교육환경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해당 병원을 학교 주변 설치금지 시설로 지정해 아이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쾌적한 교육환경을 유지·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알코올전문병원이나 정신병원 건립을 막기 위해 정치권이 나선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알코올 의존증환자나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전문병원인 다사랑중앙병원 전용준 원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이게 바로 전형적인 님비(Not In My Backyard) 현상이다. 알코올전문병원이나 정신병원은 단지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일 뿐”이라며 “알코올 의존증 환자나 정신질환자들을 낙인찍고 마치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처럼 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 원장은 “환자가 가족과 동반해서 병원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입원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위해를 끼친다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다사랑중앙병원 근처에도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데 20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환자들이 학교에 가서 무슨 행패를 부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중학생들은 지금도 병원 앞을 지나 등하교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고등학교에 나가 알코올 의존증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게 ‘낙인찍는 것을 하지말라’는 것”이라며 “알코올 의존증이 일종의 정신질환이긴 하지만 충분히 관리·회복될 수 있다. 그런데도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환자를 낙인 찍어버리면 그 환자는 회복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조현병학회 이정석 홍보이사는 법안으로 인해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면 오히려 질환이 심각해진 환자들이 사건·사고를 더 일으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이사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편견들이 많다.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자는 대부분 치료받지 못한 사람”이라며 “안 그래도 정신병원들은 도시와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법안으로 인해) 병원 접근성이 더 떨어져서 환자들이 치료를 잘 못 받게 된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나래 대외협력홍보이사도 “(알코올전문병원과 정신병원은) 엄연한 환자 치료시설인데 혐오시설로 몰아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편견들을 타파해 나가는 게 쉽지 않아 학회에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홍 이사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사고는 제대로 된 치료가 이뤄지지 않은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것이지 치료 잘 받고 있는 환자로부터 범죄가 발생할 일은 많지 않다”며 “환자들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되고 있고 (그렇게 되면) 점점 환자들은 치료 받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련 법안이 나오기 전부터 청주시 알코올전문병원 건립 반대 건으로 학회에서도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며 “누구나 다 치료받으면 좋아질 수 있는데 치료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깝다”고 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더 커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의사회 김동욱 회장은 “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 접근성이 좋으면 오히려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건·사고 발생)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며 “편견이 커져서 나중에는 정신건강의학과의원 마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했다.

의사회 조근호 정책이사는 “알코올전문병원이나 정신병원의 환경이 상당히 개선됐다. 이곳들 모두 의료기관이지 혐오시설이 아니다”라며 “(정 의원은) 입법 발의를 철회하고 환자의 권익 증진과 회복을 위해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