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순 기자의 '꽉찬생각'

지난달 30일 약사 출신 서영석 의원은 경찰청의 ‘성폭력 범죄자 직업별 현황 자료’를 인용해 ‘최근 4년간 의사 성폭력 범죄자 602명, 전문직 중 가장 많아’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서영석 의원은 그러면서 "의사의 성폭력 범죄는 반드시 면허 취소 등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돼야 근절될 수 있다”며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성폭력 등 강력범죄에 대한 의사 면허취소법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 의원이 인용한 경찰청의 ‘성폭력 범죄자 직업별 현황 자료’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 경찰청 직업별 현황에서는 ‘의사’라는 분류에 치과의사, 한의사는 물론 수의사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 의원의 자료 어디에도 여기서 의사란 한의사, 치과의사 등을 포함한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의사(Doctor)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결국 이 자료만 봤을 때는 최근 4년간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602명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고 읽혀진다.

이미 수년전부터 경찰청 직업별 현황자료에 문제가 있다는 의료계의 지적이 있어왔지만 국정감사 시즌만 되면 마치 의사들이 다른 직종에 비해 성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양 국회의원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경찰청도 해당 분류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문제가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 올 초 의료계 한 단체에서 문제제기도 했다. 현재 시스템 개선을 위한 예산을 책정한 상태다. 예산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시스템에 입력하는 원자료까지 뒤지지 않는 이상 시스템상으로는 의사 604명 중 몇명이 의사고 몇명이 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인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최근 4년간 의사 성폭령 범죄자 602명, 전문직 중 가장 많아’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서 의원은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서 의원은 알고 있었다.

서 의원실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경찰청 관련 자료를 분석한 자료인데 경찰청 통계분류상 그렇게 돼 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매년 나오는 자료다"라며 "의사에 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역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는 분들은 의사라고 하면 의과대학을 나온 사람만 의사로 생각하지만 일반인들은 (의사만이 아닌 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를 포함해)다 의사라고 하지 않느냐”라며 “(의사라는 표현으로 인해 최근 4년간 의대를 나온 의사 602명이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그렇게 해석될 수는 있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즉, 서영석 의원 측은 경찰청 분류상 의사에 치과의사‧한의사‧수의사가 포함된다는 것도 알고, 자료를 내면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보도자료를 냈던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는 말이 있듯 잘못된 보도자료 하나에 진료시 환자들과의 접촉이 불가피한 의사들로서는 성범죄 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서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다. 어느 국회의원보다 보건의료정책에 관심을 갖고 전문성도 갖춰야 하는 자리다. 심지어 서 의원은 약사 출신으로 보건의료계 각 직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이런 서 의원이 ‘의사’라고 함은 사회통념상 ‘의과대학을 졸업한 자’라는 점을 알면서도 별다른 설명없이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심지어 수의사까지 한 틀에 넣어 ‘의사’로 분류한 경찰청 자료를 별다른 설명없이 그대로 인용해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기자 또한 행정안전위원회가 아닌 복지위, 그것도 약사출신 의원이 낸 보도자료인 만큼 이중으로 팩트를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게 서 의원실의 해명이지만 ‘약사’ 출신 서 의원이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의 성범죄를 강조하기 위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자료를 일부러 발표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막중한 자리다. 국회의원이 발표하는 자료 하나하나에 민심이 흔들리고 여론이 요동칠 수 있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만큼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자료를 별다른 설명없이 그대로 인용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국정감사가 곧 시작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좀 더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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