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욕’을 얻어먹은 곳은 어디일까.

사람마다 가장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는 곳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정부가 뭔가 숨기다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인식은 대동소이 할 것 같다.

그런 인식의 중심에 질병관리본부가 있었다. 당시 질본 소속으로 일한 공무원들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메르스로 두려움에 떨어던 국민들이 보기에 질본이 발표하는 내용은 인터넷 등을 타고 퍼지는 현장 소식을 따라가지 못했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유언비어처럼 떠도는 경우도 많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질본을 포함한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질본은 메르스 후 집중 징계 대상이 됐고 국민들로부터 믿을 수 없는 기관이라는 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질본이 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삼고 질본이 낼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공개하고 있다.

메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질본은 아직도 국내 메르스환자 현황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메르스뿐만 아니라 국내 유행 가능성이 있는 해외유행감염병 정보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질본 홈페이지 등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메르스 사태 당시 ‘뭔가 숨기는 곳’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질본이 독하게 맘먹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이 정보에 관심을 갖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이 공개할 수 있는 정보를 대부분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질본이 대중과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은 질본을 잘 모른다’는 발표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질본은 최근 ‘2017년 국민인식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결과가 참담했다.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질본을 모른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으며,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은 ‘불신한다’고 답했다.

또한 질본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질병 관련 위기대응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60% 이상이 ‘잘못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어느 하나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조사였다.

하지만 질본은 이같은 조사 결과를 숨김없이 공개했다. 질본이 국민인식 조사를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결과 발표를 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몰랐을 치부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다르다. 당장 생각해봐도 정부기관이 감사 등을 통해 드러난 치부를 공개하는 것 외 스스로 조사한 기관의 약점을 공개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질본의 이런 변화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정부기관 특성상 수장이 바뀌면 기조도 바뀔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질본의 이같은 노력은 앞으로도 변할 수 없는 단단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번 질본의 국민인식 조사결과가 사뭇 궁금해 진다. 확언할 순 없지만 지금보단 분명 나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이런 선순환이 질본을 변화시키는 힘이될 것이다.

아울러 질본에서 시작된 이 변화가 정부 내 다른 부처로 확대되길 기대해본다. 국민이 원하는 정보는 질본만이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국민과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하는 곳도 질본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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