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vs 아스트라제네카…'국내 최초' 타이틀은 누구?
내년 상반기 국내 승인 기대…'진단·접근성·제도 지원'이 관건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릴리의 '임루네스트란트'를 승인하면서 경구용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분해제(Selective Estrogen Receptor Degrader, 이하 SERD) 시장에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펼쳐졌다.
한국에서도 릴리 '임루네스트란트'와 아스트라제네카 '카미제스트란트'가 동시에 허가 절차를 밟고 있어, 누가 '국내 최초' 타이틀을 거머쥘지 귀추가 주목된다.
FDA는 지난 25일 '최초 1회 이상 내분비요법을 받고 질병이 진행한 진행성 혹은 전이성 호르몬수용체 양성 및 인간 표피성장인자수용체2 음성(HR+/HER2-) 유방암 환자 중 ESR1 변이를 가진 환자'에서 임루네스트란트 단독요법을 승인했다.
지난 2023년 1월 메나리니의 '엘라쎄스트란트'가 경구용 SERD로 최초 승인을 받은 데 이어 두 번째 품목이 FDA 문턱을 넘으면서, 해당 시장이 본격적인 경쟁 체제로 전환된 것이다.
글로벌 시장이 경쟁 체제에 돌입함과 동시에, 국내에서도 경구용 SERD 도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릴리는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임루네스트란트' 허가를 신청해 정식 심사에 들어갔다. 이는 올해 인상된 허가 심사 수수료 체계에서 접수된 첫 신약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식약처가 수수료 인상 당시 심사 기간 단축을 목표로 내세운 만큼, 첫 적용 사례인 임루네스트란트의 허가 시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면, 아스트라제네카의 '카미제스트란트'는 보다 전략적으로 허가 가속화 트랙을 확보했다.
혁신형 제약기업 제도를 활용해 식약처의 신속심사 프로그램인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 지원체계(GIFT)' 약제로 선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심사 기간이 대폭 단축될 가능성이 커졌으며, 카미제스트란트가 '국내 최초' 타이틀을 가져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두 회사의 전략 차이는 임상시험 설계와 예상 적응증에서도 확실하게 엿볼 수 있다.
'임루네스트란트'는 앞서 말한 FDA 승인 사례와 동일한 적응증을 획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EMBER-3 연구 결과에 기반한 것으로, ESR1 변이를 보유한 환자군에서 임루네스트란트 단독요법은 대조군(풀베스트란트 혹은 엑스메스탄) 대비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38% 낮췄다.
반면, '카미제스트란트'는 SERENA-6 연구 데이터를 근거로 한다. 현재 아로마타제 억제제 기반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에서 정기적 모니터링을 통해 ESR1 변이가 발견되면, 영상학적 질병 진행 이전에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카미제스트란트로 교체하는 전략이다. 이런 선제적 조치를 통해 무진행생존기간(PFS)을 연장할 수 있다.
실제 지난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회의(ASCO 2025)에서 발표된 SERENA-6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카미제스트란트로의 전환이 기존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질병 진행 및 사망 위험을 56% 감소시켰다.
즉, 릴리가 '진행 후 치료 옵션'을 제공한다면, 아스트라제네카는 '진행 전 선제적 교체 전략'을 내세우는 셈이다. 두 치료제 모두 ESR1 변이를 가진 환자만 대상으로 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실제 시장 내 활용 패턴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한편 두 약물이 국내에서 허가를 받더라도, 국내 임상 환경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석아 교수에 따르면, 서양에서는 ESR1 변이가 약 30~40% 환자에서 보고되지만 국내에서는 약 10% 수준에 그쳐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시장에서 경구용 SERD의 활용 범위가 제한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진단 환경도 문제다. 현재 ESR1 변이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데, 유방암 환자의 경우 현행 선별급여 기준에 따라 검사 비용의 8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검사비 경감이나 선별급여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카미제스트란트는 추가 과제를 안고 있다. 해당 임상시험에서는 환자 모니터링을 위해 혈액 기반의 ctDNA 액체생검을 활용했는데, 이는 반복적인 조직생검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NGS 선별급여 항목에 액체생검이 포함돼 있지 않아 제도적 한계가 존재한다.
두 치료제 모두 빠르면 내년 상반기 국내 허가가 기대된다. 누가 '국내 최초' 타이틀을 차지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두 약물이 국내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허가 속도가 아니라 환자 진단 체계 개선, 접근성 확대, 제도적 지원, 임상 전략 차별화 등 복합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년 상반기, 국내 유방암 치료 환경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업계와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