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학회, 의대생·젊은의사 위한 ‘Hematology 캠프’ 개최
모집 인원 2배 몰리며 성황…"혈액종양 인식 바뀌었다" 평가
“의정 갈등을 겪으면서 그동안 가져온 바이탈 그리고 혈액내과라는 꿈이 많이 흔들리고,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과 타협해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이라 포기가 안 됐는데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혈액종양은 치료가 아니라 죽음을 보는 과라 들었는데 죽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끝까지 싸우고 책임을 다하는 과라는 깨달음을 주는 강연이었다. 그래서 혈액종양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
지난달 28일 대한혈액학회가 주최한 의대생, 젊은의사 ‘Hematology 캠프’에 참가한 참석자들의 소감이다.
혈액학회는 혈액질환 분야를 전공하려는 젊은 의사들이 줄어들면서 의료진 부족현상이 심화되자 지난달 28일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을 위한 ‘Hematology 캠프’를 개최했다. ‘Hematology 캠프’를 통해 알고 보면 흥미진진한 혈액질환 진료 및 혈액학의 참모습을 소개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Hematology 캠프’가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에게 진로탐색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Hematology 캠프’는 당초 정원을 60명으로 정하고 모집에 들어갔지만 5일만에 신청자가 60명을 넘어섰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자 학회는 2배가 넘는 145명까지 신청을 받았다.
혈액학회 김석진(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사장은 “이번 행사를 기획하면서 혈액학의 특성상 60명 정도만 와도 좋을 것 같다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이 신청해 놀라웠다. 진즉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했던 것 같다”면서 “혈액질환이 너무 전문적이다보니 의대생이나 젊은 의사들께 부담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저했던 것도 사실이다. Hematology 캠프를 계기로 학회에서도 의대생은 물론 젊은 의사들과 소통을 하는데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김석진 이사장은 또 “혈액학회는 지난 1957년 창립된 역사와 전통으로 보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학회”라며 “최근 들어 여러 진료과가 모여 통합진료를 하는 병원들이 많은데 혈액학회는 이미 창립 때부터 내과와 소아과, 진단검사의학과가 모여 만든 학회로 다학제 학회의 효시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다학제 학회 답게 이번 Hematology 캠프에서는 내과(혈액내과), 소아청소년과(소아혈액종양), 진단검사의학과 분야에서 혈액진료를 하는 교수들이 강연자로 나섰다.
우선 국내 혈액학 분야의 대가인 의정부을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동욱 교수가 직접 ‘혈액학은 어떤 학문인가’를 주제로 혈액학에 대한 개념부터 진단법, 치료제, 연구분야 등 국내 혈액질환 치료환경의 변화를 소개했다.
김동욱 교수는 “혈액학은 최점단 생명공학과 산업공학, 나노공학, 정보학의 집합체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소통하며, 협력연구가 가능한, 지속적인 발전과 확장이 있는 분야”라면서 “특히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분야로서 치료효율이 가장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혈액학을 하면 개업을 못한다는 게 통상적인 개념이었는데 오늘날 그렇지 않다”면서 “표적항암제가 개발되면서 외래베이스에서도 관리가 가능하게 됐고, 외래와 주사실 기반의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세암병원 혈액내과 정준원 교수는 ‘내과의사의 혈액전공’이라는 강연에서 “세부분과를 고민할 때 모든 의료진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환자를 살리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 때 혈액내과를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지원 동기를 소개했다.
정 교수는 “혈액학을 3D(Dangerous, Difficult, Depressing)라 하지만 'Dangerous'하다는 것은 헌신이 필요하고, 'Difficult'는 매우 학문이 깊다는 뜻이며, 'Depressing'은 (질환과)싸우는데 행복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그래도 기쁨을 찾을 수 있는 3D가 혈액학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소아암 환자를 주로 보는 양산부산대병원 양유진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혈액 전공’이라는 강연을 통해 "소아혈액종양을 한다고 하면 외로운 길을 간다는 것에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격려를 많이 받는다"며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소아청소년과 1년 차 때 만났던 부모가 자살을 해서 병동에 혼자 남은 소아암 환자의 사연을 소개하며, "소아과 의사를 해서 멋있거나 하는 것보다는 한명의 사람에게 완벽한 우주가 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느낌이 황홀해 혈액종양의 길을 가게 됐다"고 전했다.
서울대병원 장윤환 교수는 임상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효과를 판정하고 예후를 추정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진단검사의학 분야 의사로서 ‘진단검사의학과 의사의 혈액전공’ 비전을 소개했다.
장 교수는 “의대정원 사태로 늦게까지 일하느라 힘들지만 내가 이걸 안했으면 다른 것은 무엇을 했을까 생각해봐도 막상 떠오르는 게 없더라”라며 “과를 정할 때는 잘할 수 있고, 평생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 일에 주안점을 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더욱이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이 관리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면서 “뛰어난 진단검사 장비로 나온 결과라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고경남 교수와 순천향대서울병원 종양혈액내과 김경하 교수는 ‘대학병원 교수로서의 삶’에 대해 소개했다.
고경남 교수는 "의사로서 생명을 구하기도 하지만 생명을 잃는 것을 옆에서 지켜주기도 해야 한다. 잘 지켜주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라며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굉장히 많다"고 했다.
대학병원 교수로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식년이나 장기연수 등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고 교수는 “교수가 되면 굉장히 자율적이다. 환자보고, 교육하고, 근무하고, 출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든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거나 늦게 퇴근하면 일찍 퇴근할 수도 있다"며 "환자보는 것, 연구하는 것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장점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특히 “대학에 있으면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보게 되는데 중증도가 높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 깊게 관여를 하고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혈액학은 분명)매력이 있는 분야”라고 조언했다.
김경하 교수는 “본과 3학년 때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야 하는 의사가 필요하고, 그것도 중요한 것이구나 생각했다”며 “혈액종양내과 의사는 병의 진행을 막지만 삶을 정리하는 시간에 동행하는 역할, 철학적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분야가 혈액학이라 생각해서 혈액내과 의사의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밴더빌트대학교 메디컬센터에서 혈액학, 조혈모세포이식 분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김태곤 교수를 줌으로 연결해 ‘미국 혈액내과 의사의 삶’에 대해 들었다.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의사과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김태곤 교수는 “임상현장에서 생긴 궁금증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게 바로 의사과학자”라면서 “임상 샘플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많은 연구 결과를 임상시험에 적용하고, 여기에서 나온 샘플로 다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미국은 대개 4개의 트랙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의사과학자가 된 이유는 한국에서는 진료, 교육, 그리고 연구가 대학교수의 역할이라면 미국은 그 미션을 혼자서 감당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면서 "병원 행정이나 교육보다는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현재 60%는 리서치, 40%는 환자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그러다보니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연구비와 논문에 시달리는 단점은 있다"면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고, 상대적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을 좋아한다면 사이언티스트로서 미국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번 캠프에 참석한 의대생, 젊은 의사들은 행사 후 설문에서 ‘혈액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혈액학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의사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한 참석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땐 몰랐지만 혈액학이 환자들의 삶에 커다란 주축이 되는 학문임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의사 중의 의사’, ‘진정한 의사’란 무엇인지 고민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참석자는 “혈액학 뿐만 아니라 의사가 사회에서 가지는 역할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며 “특히 의대생들이 많이 방황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적절했던 자리였다”고 했다.
더욱이 한 참석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한 사람의 마지막을 끝까지 돌보아준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게 됐다.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면서 “강연자 한분 한분의 인생이 묻어나는 경험적인 조언들에서 혈액학 의사로서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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