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혈액학회, 의대생·젊은 의사들을 위한 제1회 ‘Hematology 캠프’ 개최
김석진 이사장 “몰라서 기회 놓치는 일은 없어야…미약하나 도움이 되길”
혈액질환 진료는 병원 내에서 흔히 3D 진료과목으로 불린다. 위험하고(Dangerous), 어렵고(Difficult), 우울한(Depressing)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다란 보람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연구 분야도 매우 넓고, 환자와 의학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국내 혈액학 전문의는 10만명당 0.307명으로, 미국 0.707명의 절반, 일본 1.109명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환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혈액질환 분야를 전공하려는 젊은 의사들이 줄어들면서 의료진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에 대한혈액학회가 오는 28일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을 위한 ‘Hematology 캠프’를 개최한다. ‘Hematology 캠프’를 통해 알고 보면 흥미진진한 혈액질환 진료 및 혈액학의 참모습을 소개하겠다는 생각이다.
대한혈액학회 최초로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을 위한 진로탐색 기회를 마련한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석진 이사장을 만나 ‘Hematology 캠프’를 개최하게 된 배경과 의미에 대해 들었다.
- 의대생, 젊은 의사들이 외면하지는 않을까 가슴 졸이며 시작한 ‘Hematology 캠프’지만 우려와 달리 ‘대박’을 쳤다. 60명 정원을 채우는데 일주일도 안걸렸다.
혈액질환 진료가 병원 내에서 흔히 3D 진료과목으로 불리기에 의대생은 물론 젊은 의사들도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도 안돼 모집인원이 채워졌다는 소식에 솔직히 놀랐다.
사실 한해 내과 전문의가 수백명 배출된다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혈액종양내과를 세부 전공으로 하는 전문의는 매년 20~30명 수준, 그중에서도 혈액을 세부 전공 하는 사람은 한두 명 정도 밖에 안됐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원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결과여서 매우 기쁘다.
- ‘Hematology 캠프’를 개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학회에서 조사를 해봤더니 혈액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더라. 수련 기간이 있기 때문에 어느 수준의 인력이 꾸준히 배출돼야 혈액암 등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데 그동안은 힘들기는 하지만 ‘설마 지원자는 있겠지’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었듯 우리를 찾아오기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먼저 찾아가보자 생각했다. 잘 몰라서 기회를 놓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 혈액질환을 전공하려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내과만 보더라도 소화기내과나 순환기내과, 내분비내과 등은 개업을 할 때 유리한데 혈액내과의 경우 개업 시 유리하지 않다. 개업이 안되면 봉직의나 대학병원 교수로 일을 해야 하는데 사실 대학이 아닌 일반 종합병원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쉽지 않다.
또한 혈액질환의 특성상 심리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쉬운 질환은 없다. 다만 혈액질환은 그 어떤 내과적인 치료보다 부작용이 많고 급격히 안 좋아지면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프로야구를 예로 들면 감독은 우승을 시키면 명감독이라는 칭송을 받지만 성적이 안좋으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버리기 일쑤다. 고가의 치료를 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원망을 받기도 하고, 원망을 듣지 않더라도 의사 스스로 자책감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의사를)시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 혈액학 분야가 3D라고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인지.
그렇다. 심리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실제 혈액내과의 경우 입원환자 비중이 크다보니 주5일 근무제가 무색하게 주말에도 회진하러 병원에 나오는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질환의 특성상 언제 나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혈액암을 보는 의사들은 항상 병원에서 연락이 오는지 촉각을 세워놓고 있다. 야구에서 선발투수의 경우 하루 등판하면 몇일 쉬기 때문에 등판하는 날 무리하더라도 다음날은 편히 쉴 수가 있다. 그런데 불펜투수들은 언제 등판할지 모르기 때문에 경기 내내 긴장하며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더 힘들다고 하더라. 혈액암을 보는 의사들과 불펜투수들의 상황이 같다고 보면 될 것 같다.
- ‘Hematology 캠프’ 신청을 받아보니 관심이 적을 것이라는 예상은 기우였다.
피상적으로 ‘젊은 세대는 이렇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실리만 추구하고 힘든 것은 안하려 한다’ 잘못된 일반화를 했던 것 같다. 우리가 젊었을 때 뜨거운 마음을 갖고 의사 생활을 시작했던 것처럼 MZ세대의 마음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젊은 세대가 뭘 원하는지 관심 갖지 않고 헤아리지 못했던 기성세대의 잘못도 있는 것 같아 반성을 하게 됐고, 젊은 친구들에게 어떤 과를 전공하면 좋을지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 선배이고 스승으로서 미안했다. ‘Hematology 캠프’가 젊은 세대들이 전공을 탐색할 수 있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 혈액학이 힘들기는 하지만 보람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매력적인 부분이다. 혈액학의 매력에 대해 소개한다면.
사실 4기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큐어를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4기로 진단받은 환자도 큐어를 시킬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혈액학이다. 림프종이나 여러 가지 혈액암들이 잘 치료를 하면 완치도 되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 점이 그 어떤 분야와도 비교할 수 없는 혈액학의 매력이다.
- ‘이런 사람은 혈액학을 전공하는 게 좋겠다’, 추천해 준다면.
남과 다른 길을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 연구자로서 역량을 펼치고 싶어 하는 사람, 그리고 질환을 단편적이지 않고 융합의학 관점에서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혈액학은 굉장히 재미있는 학문이 될 것이다. 특히 대학병원에서 진료하거나 대학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혈액학 전공은 안성맞춤이니 적극 도전해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진로를 탐색해보기 위해 시간을 내어 ‘Hematology 캠프’를 찾은 의대생, 젊은 의사들을 위해 학회 차원에서 고려하고 있는 베네핏이 있는지.
이번 ‘Hematology 캠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명예회원 자격을 부여해 캠프 이후에도 꾸준하게 소통할 생각이다. 국제학회 때 학생들이나 젊은 의사들에게 맞는 교육세션도 진행하고 있는데 초청해 관심 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 캠프가 끝이 아니고 학회와 계속 인연을 맺는 시작점이 될 수 있도록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고민해 보겠다.
누가 알겠나. 먼 미래에 ‘Hematology 캠프’에 참석했던 사람 중에 대한혈액학회 이사장이 나올는지. 물론 다른 전공,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 대한혈액학회가 젊은 의사들의 인생에 미약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