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대 배장환 교수, 의대 증원 논란 의견 피력
"의료 정책, 수가 협상과 달라…국민·정부 설득 연구"
총파업 예고에는 "특정 부분 아닌 전체 파업 필요"
의대 정원 증원을 두고 의료계가 정부가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정책을 다룰만한 역량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직능단체의 역할에만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충북의대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인 배장환 교수는 지난 3일 서울 용산역 내 회의실에서 열린 의료윤리연구회 모임에서 ‘의대 증원 사태-무너진 것과 쌓아야 할 것’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배 교수는 OECD 통계와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꼽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지역병원 불신 문제의 원인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잘못된 정부 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는 증상 중심의 환자배분체계다. 흉통으로 119를 불렀다고 가정했을 때 단순 늑골 골절부터 대동맥 박리 등 원인이 다양하다. 병원 입장에선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할 때만 환자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 늑골 골절 환자는 뺑뺑이를 돌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면 의사를 1만명 늘려도 부족하다”고 했다.
이어 “소아과 오픈런도 애가 아프다고 회사에서 병가를 주지 않기에 부모들이 특정 시간에만 몰리는 것이다. 애가 아프면 병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또 동네 의사는 환자가 대학병원에 가고 싶다고 하면 소견서를 써줄 수밖에 없다. 충분히 의원에서 치료 가능하지만 환자가 우기면 어쩔 수 없다. 상급종합병원 전원을 결정하는 주체가 환자인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와 정치권을 향해서는 “국민을 향해 경증 환자는 대형병원에 가선 안 된다. 상급종합병원 전원의 결정 주체는 환자가 아닌 의사여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치권의 배임으로 지역의료가 무너진 것과 다름없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직속으로 추계위원회를 꾸려 의사 증원 수를 연구해야 한다. 또한 늘어난 의대생이 10년 후 의사가 될 텐데 그 사이에 지역의료 강화책 등을 정부에서 고속 추진한다면 의정 간 깨진 의리가 그나마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정부 협상에서 의협의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배 교수는 “현재 의협과 정부 간 물밑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대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아무도 모른다. 의협과 대전협 간 교통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2020년 단체행동 때 의대생이 현재 전공의가 된 만큼 기성 의사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 상황을 의협이 잘 이해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배 교수는 의협이 정부의 카운터파트(counterpart)가 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배 교수는 “의협에 의료 정책이라는 거대 담론을 논하고 이끌어 갈 준비가 됐는지 묻고 싶다. 수가 협상은 잘 하면 박수받고 그렇지 않으면 드러누우면 되는데, (의대 정원 정책은) 그게 아니다. 의사 수 추계에 대해 연구했지만 의협 자체에서도 자료를 갖고 오지 못하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의협 자체에서 국민과 정부를 설득할 만한 연구를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그렇게 되면 결국 사적인 전문가의 단체만 될 뿐이지 정부의 의료 정책에 ‘감 놔라 배 놔라’할 수 있는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의사이자 의협의 구성원으로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협이 총파업을 예고하며 이를 회원 투표에 부친 것에 대해서는 개원가뿐 아니라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에서 파업이 다같이 이뤄져야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배 교수는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특정 직능 단체의 의견이 아닌 국민의 불편감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그런 불편감을 인지할 능력조차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공의 사직 때에도 정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의료의 상당량이 개원가에서 이뤄지기에 개원가 파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의료전달체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파업이 압박의 카드로 쓰이려면 특정 부분만의 파업은 의미가 없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안 되면 종합병원으로 가면 되고 또 병원, 의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며 "일정 부분에서만 100% 파업하는 것 보다 전체 부분이 30~40% 파업해야 효과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반면 의협의 역량 문제가 아닌 의료계가 통일안에 합의하지 못하는 게 근본적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김충기 조교수는 “의협의 역량이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의료계에서 의견이 다 다른데 취합되지 못했다는 게 문제”라며 “의료계는 장기적 관점에서 어떤 의료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합의된 결론을 매번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과 국가, 그리고 의료의 근본적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는 게 패착”이라고 했다.
이어 “의협도 정치적으로 취약하기에 그런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이라며 “의협 집행부의 문제가 아닌 의료계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취합하고 정리된 방향으로 나아가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본적 개혁이 없으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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