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조건 없는 대화' 제안…의료계 "환영하지만 진정성 필요"
대전협, 요구안 선결 촉구…대화 시점도 "선거용 사진 목적"
"전공의도 복귀하고 싶다…그러나 이대로는 안 돌아가"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 이어 전공의들에게 직접 대화를 제안하며 나섰지만 전공의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대화가 아닌 설득과 회유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대통령실은 지난 2일 대변인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이 전공의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시간과 장소, 주제와 상관없이 원하는 대로 대화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 등 의료계는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단 대화가 이뤄지려면 의대 정원 배정을 중지하는 등 정부의 진정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대한전공의협의회 측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전공의들은 대통령실이 총선을 의식한 정치적 목적에서 대화를 제안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울 소재 병원에서 수련했던 전공의 A씨는 “지금까지 정부와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로 보았을 때 진정성을 갖고 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며 “선거용 사진을 찍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겉치레뿐인 대화에 응하는 것은 전공의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충청권 지역 병원에서 인턴으로 수련했던 B씨는 “전공의들은 일단 대표가 없다. 또한 이번 제안은 진정 대화를 위함이 아닌 정치적 목적 혹은 회유를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정치쇼'에 이용될 정도로 멍청한 이들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있더라도 어용 전공의일 확률이 크다”고 했다.
경북권 지역 소재 수련병원에서 근무했던 C씨도 “전공의를 설득·회유하기 위해 대화를 제안한 것 같다.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점에서 재논의를 할테니 만나자고 해야 하는데 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것은 그저 돌아오라고 설득하기 위함 아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들은 대화가 시작되기 위한 조건으로 대전협이 앞서 요구했던 7대 요구안이 선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전협 비대위는 지난 2월 20일 긴급 임시대의원총회 후 성명서를 통해 전공의들의 요구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2,000명 의대 증원 계획 철회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완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전공의 대한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및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노동기구(ILO) 강제 노동 금지 조항 준수 등이다.
A 씨는 “대화 조건은 대전협이 공식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며 “우리의 요구 조건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한 발짝도 수용할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대화하자고만 하는 것은 전공의에게 부정적인 결과만 낳을 것”이라고 했다,
B씨도 “대전협이 요구한 7대 요구가 선결돼야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전공의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를 제의한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만약 대화가 성사되더라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기 위해 오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총선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A씨는 “교수들이 나서는 것도,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아직은 시기상조다. 만약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무조건 총선 이후에 해야 한다. (전공의와의 대화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에는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B씨는 “지금 메디스태프에 특정 글을 썼다는 이유로 몇몇 의사들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겉으로는 대화하자면서 물 밑에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게 모순”이라고 했다.
C씨도 “정부의 대화 요청에 굳이 조급하게 나설 이유는 없다. 전공의들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라도 해나가고 있었는데 정부가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진 격이다. 힘든 상황에서 더욱 희망을 잃고 좌절감을 느껴 사직하게 된 만큼 요구 사항이 반영되고 상황이 개선된 후 복귀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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