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토론회서 “정치화된 의대 정원” 비판 쏟아져
“헬기 늘리고 서울 착륙장 확충하는 게 낫지 않나”
‘숫자’에 매몰돼 ‘교육 질’엔 눈 감았다는 지적도

대한의사협회는 6일 오후 용산 회관 대강당에서 '의대 정원 증원 추진과 대한민국 의사의 미래 토론회'를 진행했다(ⓒ청년의사).
대한의사협회는 6일 오후 용산 회관 대강당에서 '의대 정원 증원 추진과 대한민국 의사의 미래 토론회'를 진행했다(ⓒ청년의사).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어디에 얼마나 부족한지 “과학적인 근거 없이” 의사 수만 늘리면 ‘응급실 뺑뺑이’ 등 수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한의사협회가 6일 오후 용산 회관 대강당에서 진행한 ‘의대 정원 증원 추진과 대한민국 의사의 미래 토론회’에서도 이같은 비판이 이어졌다.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근거와 논리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번 토론회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구성된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 주관으로 열렸다.

의협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사 수 평균’이라는 가스라이팅”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OECD 국가 어디도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 같은 단순 비교만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지 충분한지 판단하는 나라는 없다. 진료 대기 일수, 건강지표, 의료 만족도 등 다양한 지표를 갖고 판단한다”며 국민 기대수명, 영유아 사망률, 치료 가능 사망률, 도시와 농촌 지역 의사 밀도 차이 등에서 한국은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한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OECD 통계 만능시대…"한국 의료 특성 고려한 새로운 방법론 必").

우 원장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명분으로 삼는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은 의사 숫자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며 “정부는 의대 정원을 충분히 늘리면 낙수효과로 인해 사법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필수의료 분야로 가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지역으로 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MZ세대로 부르는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과 시대적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했다.

이어 다른 선진국처럼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의사 인력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별도 기구나 조직”을 먼저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보건의료인력국 산하 국가보건의료인력분석센터(National Center for Health Workforce Analysis, NCHWA),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의사인력수급검토회, 네덜란드 의료인력계획자문위원회(Advisor Committee for Medical Manpower Planning, ACMMP)’와 ‘보건의료서비스연구소(Netherland Institute for Health Service Research, NIVEL)’, 호주 보건부 산하 ‘호주보건의료인력원(Health Workforce Australian, HWA)’을 예로 들었다.

우 원장은 “올바른 정책은 의대 증원이 향후 우리나라 보건의료 전반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먼저 제대로 하는 것”이라며 “서두르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했다.

의협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의협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통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이럴 거면 헬기 늘리고 서울대병원 주변 착륙장 대거 확보하라”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의 모순을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줬다는 비판도 있었다. 부산에서 피습 당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해 치료받은 과정을 두고 한 말이다.

우 원장은 “(의대 정원을 늘려) 낙수효과로 지역의료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유명 정치인이 증명했다. 헬기를 타고 서울로 올 거면 지역 병원을 늘릴 게 아니라 헬기를 늘리고 서울대병원 주변에 헬기 착륙장을 대거 확보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권력자는 헬기를 타고 서울로 가고 119구급차는 택시처럼 이용되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응급실 뺑뺑이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의협 서정성 총무이사 겸 범대위 총괄간사도 이 대표 전원 논란이 왜곡된 의료체계의 문제를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서 이사는 “지역에는 환자가 없다. KTX, SRT를 타고 서울로 간다.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져 대학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 바로 갈 수 있다는 걸 환자들이 더 잘 안다”며 “야당 대표도 서울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해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실력 있는 곳으로 가야 된다는 말이 나왔다. 지역의료를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서 이사는 “의대 정원 문제는 정치화 돼 버렸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통해 왜 정원을 증원해야 하고 지역·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한 분석도 없다”고 “한국의 의료정책은 무너졌다”고도 했다.

‘숫자’에 매몰돼 ‘교육 질’엔 눈 감았다

의학교육 질은 고민하지 않은 채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려대안암병원 산부인과 홍순철 교수는 “의대는 교수 1명당 학생 수가 1.6명이지만 법학전문대학원은 7.6명, 약대는 14.9명이라며 의대생을 더 뽑아도 감당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한다”며 “미국은 의대 1곳에 교수만 1,000명 정도 있다.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많은 교수가 근무하며 학생들을 교육한다. 단순하게 교수 대비 학생 수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교육 지원에 대한 논의도 전무한 상태”라고도 했다. 홍 교수는 대한산부인과학회 수련제도발전TFT위원장이기도 하다.

홍 교수는 “의료와 교육은 국가의 근간이기에 의사 증원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상설 조직을 통해 엄밀하게 평가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의대를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이것과 별개로 15명으로 구성된 의학교육점검반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도 했다.

저출산으로 학령기 아동도 급감하는 상황을 강조하기도 했다. 홍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는 수요 조사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각 대학 총장에게 가르칠 수 있는 학생 수를 적어내라고 하면 아마 최대한 많은 수를 적어낼 것”이라며 “전국 대학 입학 정원이 총 60만명이지만 지난 한 해 태어나는 아이는 25만명이 안된다. 대학 수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대학 총장이 적어낸 숫자로 입학 정원을 결정하면 재난이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의학교육 질에 대한 고민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청년의사).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의학교육 질에 대한 고민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청년의사).

“의대 정원만 증원, 부실의대 만드는 원인” 비판도

의협 법제이사인 박형욱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도 대학을 대상으로 진행되느 의대 정원 수요 조사를 토대로 정책이 추진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의학교육 질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의대들은 의학교육인증평가를 받는다. 교육이 얼마나 잘 됐는지 교수가 얼마나 충분한지 학생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대 교수들이 만든다. 대학 본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며 “의학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의대 교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정말 필수의료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상황이 어떤지, 얼마나 적자가 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수가도 비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정부는 의대 정원을 증원했을 때 의료이용이 얼마나 증가할 것인지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교육 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나왔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우성진 비상대책위원장(인하의대 본4)은 지난해 11월 25일 임시총회에서 의대 교육환경을 조사한 결과 현재도 열악한 곳이 많았다고 했다.

우 위원장은 “강의실은 의학교육평가인증에서 감점이 없도록 정원에 아슬아슬하게 설계돼 있다. 유급자가 많은 학년은 자리를 잡지 못하면 수업을 듣지 못하고 간이의자와 책상을 억지로 욱여넣어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학생 자치 공간과 복지 공간이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로 3~4개의 동아리와 학회가 한 공간을 돌려쓰고 있다”고 했다.

우 위원장은 임상실습교육에서도 의대생들은 “직원 동선을 방해하는 짐덩어리 취급을 받고 있다”며 “교육병원이나 인프라는 그대로인데 정치적인 사유와 대학 재단의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의대 정원만 증원하려고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 자체가 부실의대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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