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오주환 교수 “가치기반 의료 ‘플랜B’ 선택권 줘야”
인하의대 임종한 교수 “30년 만에 큰 변화…정부 신뢰 바탕 必”
복지부 강준 과장 “시범사업 통해 신뢰 쌓는 계기 마련할 것”
의사를 향한 비난 여론이 의사 수를 늘려 그 가치를 떨어뜨리자는 방향으로 번진 원인이 행위별수가제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료의 가치보다는 양이 중시되는 지불제도로 인해 의료체계가 왜곡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로 의사가 비판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구축하려면 가치기반의료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도록 지불제도 개편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의료계는 지불제도 개편에 앞서 정부가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조명희 의원이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치기반 의료 왜 중요한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지속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보건의료 개혁 필요성이 언급됐다.
서울의대 의학과 오주환 교수는 행위별수가제로 인해 의료서비스 양이 늘어나며 건강보험 재원이 고갈되는 현상을 ‘공유지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동의를 얻고 있다고 했다.
오 교수는 “건강보험은 건강을 위해 쓰려고 같이 모은 돈”이라며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검사하고 약 처방을 많이 해야 돈을 벌 수 있으니 우리 소는 살찌울 수 있지만 남의 소가 먹을 풀까지 뜯어 먹는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행위별수가제의 악순환 사이클”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환자가 의사에 대한 신뢰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의사를 비난하면 사회적으로 박수를 받는 것 같은 착각도 일고 있다”면서 “의사가 마음에 안 드니 의사 수를 늘려 가치를 떨어뜨리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겠느냐는 포퓰리즘이 동의를 얻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이에 오 교수는 가치기반 의료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도입한 이익공유제(Medicare Shared Savings Program, MSSP)를 예로 들었다. MSSP는 의료의 질을 달성하면서 비용 낭비를 줄인 경우 공급자에게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다.
오 교수는 “의료 서비스 비용을 적게 들게 제공하면서도 건강을 잘 유지시켜주면 돈을 더 많이 버는 거래방식”이라며 “이는 환자는 물론 보험자와 공급자 모두를 만족시켰다. 미국은 이 제도를 도입한 2011년 이후 국민 보건의료비 지출이 GDP 대비 16% 대에서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미국이 이런 선택을 한 시점이었던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16%에 이른 시점이 한국의 2030년이다. 한국도 가치기반 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플랜B를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오 교수는 최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폐과 선언 이후 벌어지는 소청과의원 ‘탈출 러시’ 현상에 대해서도 가치기반 의료로 전환이 소아청소년 의료 서비스 제공의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오 교수는 “소청과의원이 성인 만성질환 관리로 방향을 트는 탈출 러시가 벌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감기로 의원에 오는 아이들을 (행위별수가로) 진료하는 것 뿐 아니라 가치기반 의료로 전환해 영·유아 주치의로 나선다면 (출생률이 적다하더라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지불제도 개편이라는 큰 개혁을 추진하는데 있어 정부와 의료계 간 신뢰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의료 공급자 입장에서 봐도 점점 시간을 더 많이 쏟아 진료량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 가운데 번아웃 되고 있다. 정부가 그런 것들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정하려고 노력했는지는 미흡했다고 본다”며 “정부가 가치기반 의료를 구현하는데 있어 신뢰를 가져야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우 원장은 “가치기반의료로 전환한다는 방향성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수행할 때 있어 현실적이고 실증적인 문제들을 동시에 잘 고려해서 제도적 미비점을 검토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 원장은 “이 제도로 (의료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것들이 기존 행위별수가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결과적으로 긍정적으로 흘러가도록 사회적 합의가 많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30년 만에 이뤄지는 지불체계 변화가 성공하려면 의료 공급자와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인하의대 임종한 교수는 “30년 만에 큰 변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한 방식으로 하게 되면 신뢰를 얻기 힘들다. 공급자와 소비자 신뢰를 얻어야 하는 만큼 훨씬 깊이 논의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3차 병원이 가능한 외래와 경증환자를 줄이고 본래 역할에 전념하도록 논의에 신뢰를 줘야지만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일차의료도 지역의사 입장에서 자긍심을 갖고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뒷받침 되도록 혁신적으로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새로운 수용층이 없다면 가치기반 의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政 “지속가능한 의료 위해 본격적인 논의 시작해야 할 시점”
정부는 지난 30년간 행위별수가제 중심으로 의료 인프라 확충을 완성했고 이제는 지속가능한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지불제도 뿐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병상, 인력, 공사보험 문제까지 유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정부에서 기존 지불제도와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증·응급 협력진료 네트워크 보상, 어린이병원 적자 사후보상 시범사업 등 정책이 본 사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강준 의료보장혁신과장은 “행위별수가제 중심으로 인센티브 구조들로 인프라를 확충했다고 본다”며 “30년 정도 된 이 체제가 앞으로 지속가능할 것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의료개혁 지체됐던 부분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 과장은 “제2차 건강보험 계획을 하반기에 세울 계획이다. 2차 계획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현재 시행 중인 시범사업들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현장에서 이런 제도들이 잘 운영되도록 세심하게 챙기겠다”며 “신뢰에 대한 의료계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는데 이런 사업들을 제대로 진행하는 것들이 신뢰를 쌓는 기초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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