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만 늘려서는 문제 해결 안돼" 지적 쏟아져
한의협 "한의대 정원 줄여 의대 정원 늘리자" 제안
복지부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10년 뒤 더 큰 위험”
소아청소년과 '오픈런'과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되는 의사 수 증원에 대해 “종로에서 뺨 맞고 동대문에서 화풀이 하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의료 제도와 시스템 문제이지 의사 수 부족이 원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 단순히 의과대학 정원을 늘려 의사 수를 증원하더라도 필수의료와 의료취약지 문제 해결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거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21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의사 수요와 공급’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지불보상체계 등 정책적 개혁과 맞물려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서울의대 의학과 오주환 교수는 “의사 수 증가가 인구집단의 건강향상에 반드시 기여하지도 않는 서비스 제공만 증가시켜 사회적 낭비를 더 만들어 내는 의료비 지출증가 경향을 일으킨다”며 “의사 수 증가가 아닌 오히려 다른 해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의료 현안을 해결하는 '만능키'처럼 생각하는 분위기에 대해 "종로에서 뺨 맞고 동대문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오 교수는 “(의사가 배출되는) 12년 후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정책을 실행하기보다 사회적 지출을 줄일 때 의사의 수익성을 높이는 지불보상제도 변화가 낫다”면서 “소규모 시범사업을 통해 정책 작동 여부를 실험해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고령화로 인한 의사 수 증가 필요 주장도 실제 고령화로 인한 의료의 실질적 수요 증가 규모와 의사 수 자연 증감 패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그 적정성이 검토돼야 한다”고도 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의사 수 부족’ 논쟁에서 벗어나 의료 제도와 시스템 문제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의사 총원 확대가 아닌 필수의료 분야 인력 증원에 집중해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홍윤철 교수는 “의사 인력 총원을 늘린다고 필수의료 분야 인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사 인력을 늘린다는 의제에서 필수의료 분야 인력을 늘리는 의제로 바꿔야 한다”며 “의사 인력 총원만 늘리면 의료시스템은 더 왜곡되고 필수의료분야 인력 부족현상을 더 심하게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의사 인력 수급 문제는 인력 총원 증원이나 수가 조정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한 의료서비스 제공 체계와 지불보상체계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의사 인력을 필수의료에 한해 늘리되 현재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필수의료 전공의 비율을 5대 5가 될 수 있도록 비수도권 필수의료 전공의 수 배정을 늘리고, 의대 정원을 ‘지역필수의료인재선발전형’을 통해 늘리는 정책을 제안했다.
홍 교수는 “비수도권 전공의 수 배정을 늘려 5대 5로 맞추는 방안이 좋다. 다만, 수도권 전공의 수를 빼 지방으로 보내는 것은 민감한 사안이다. 비수도권 필수의료 전공의 수를 순증 시키되 정원을 채우든 아니든 그대로 운영하고 10년 간 한시적으로 지역필수의료인재선발전형을 통해 선발하도록 하자”고 했다.
홍 교수는 “그래도 안 간다면 필수의료분야와 의료취약지역 가산수가를 수도권의 3배 정도로 올리면 상당한 유인효과가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것만 갖고 해서는 안 된다고 보지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의료서비스와 지불보상체계 개선이 따라줘야 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의료서비스와 지불보상체계 개선을 위한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해당 지역에서 예방의료서비스를 보건과 복지 서비스와 통합해 추진해야 한다”며 “예방을 빼면 우리나라 의료비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한의협 "한의대 정원 줄여 의대 정원 늘리자" 구체적인 감축안 제안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대 정원을 줄여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으로 인력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은 의대와 한의대가 함께 있는 대학의 한의대 정원을 줄여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햇다. 현재 의대와 한의대가 모두 있는 사립대는 4곳이며 이곳에 배정되 한의대 입학 정원은 300명이다. 한의대 4곳에서 운영하는 한방병원 9곳의 일반 수련의와 전문 수련의 최소 정원은 약 110명으로 이 정도만 남기고 190명을 줄이자고 했다.
두 번째는 지방 공공의료와 응급의료 부족지역 내 한의대 정원을 감축해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한의대가 있는 사립대 중 도 단위에 위치한 한의대는 6곳으로 이곳 정원은 332명이다. 한의대 6곳에서 운영하는 한방병원 13곳의 일반 수련의와 전문 수련의 최소정원은 약 130명으로 이 정도만 배출될 수 있도록 한의대 정원을 감축하는 안이다.
현재 한의대 정원은 750명이며, 정원 외 입학까지 포함하면 795명이다.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된 행사에 한의협이 참여해 공식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 토론회가 처음이다.
한의협 황만기 부회장은 “충분한 교육을 받은 우수한 의료자원인 한의사 인력을 우선 활용해야 한다”며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면 한의대 정원을 감축해 의대 정원 확대에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政, 의대 정원 확대 의지 강해…“지금하지 않으면 안돼”
정부는 의사 수부족에 대한 근거가 되는 기존 연구들도 “존중”돼야 한다며 의대 증원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의료계와 소통을 통해 원만히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송양수 의료인력정책과장은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의사 인력 부족 문제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국책 연구기관에서 그간 실시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의사 인력 부족 의견을 냈다. 비판적 시각도 중요하지만 연구자의 전문성도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 과장은 “의사 인력 확충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의사 인력 확충 없이는 절대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10년 뒤 미래에는 더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 효과를 낼 수 있는 단기 정책들도 병행해 추진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송 과장은 “필수의료 전문의 고용을 위해 수가체계를 정비하고 의대생과 전공의 시절부터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에서 다양한 교육과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수련체계를 개선하겠다”며 “근로여건과 처우개선, 공공정책수가 등 경제적 보상과 함께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의료계와 소통하며 원만히 해결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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