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분당서울대병원 김나영 성차의학연구소장
의학 남녀 차이 생물학·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이해
"모든 사람에게 더 적합한 의료서비스 제공" 목표
류마티스관절염은 여성 환자가 더 많고 뇌졸중은 남성에서 더 흔하다. 남성은 여성보다 심근경색 위험이 크고 여성은 알코올에 더 취약하다.
같은 질병도 남녀 간 발생률이나 양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왜 발생하는지'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남녀 성별은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변수라 오히려 임상 현장과 의학 연구에서 쉽게 간과됐다. 모든 기준은 "170cm, 65kg, 남성"이었고 "인류 50%는 항상 오류의 위험"을 부담해야만 했다.
기존 의학 연구 대부분 남성 연구자가 남성을 대상으로 하면서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너무나 치명적인 피해"가 이어졌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회수한 약물 10개 중 8개가 여성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수면제 졸피뎀은 지난 2013년에야 여성 처방량이 남성 절반으로 줄었다.
'성차의학(Sex/Gender-Specific Medicine, SGM)'은 이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시작했다. 생물학적 성별(sex)과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규정되는 성별(gender)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모든 사람에게 더 적합하고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게 목표다.
정밀·맞춤의료 시대를 맞아 성별이라는 기본적인 변수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21년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 특성을 고려하도록 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성차 연구의 법적 토대도 마련됐다.
이런 흐름 속에 국내 첫 '성차의학연구소'가 분당서울대병원에 문을 열었다.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가 초대 소장을 맡았다. 김 교수는 지난 2021년 '소화기질환의 성차의학'을 펴내고 '임상영역에서의 성차의학' 대표저자를 맡는 등 국내 성차의학 분야를 이끌어왔다. 지난 5일 오후 진행한 개소식에서 김 교수는 "기초 영역에서 성차의학 연구를 발전시키고 환자 치료 질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미국 스탠퍼드의대나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등 앞선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국내 의학계에 성차의학 중요성을 알리고 관련 연구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성차의학 연구와 연구소 설립에 영향을 미친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도 협력한다.
청년의사는 김나영 교수를 만나 성차의학 중요성과 과제에 대해 들었다.
- 그동안 성차의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연구 성과를 냈다. 성차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지난 2014년 젠더드 이노베이션(Gendered Innovations) 초청을 받으면서 성차의학을 본격적으로 인지했다. 지난 2013년 시작한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젠더혁신사업 일환으로 기능성 위장관질환 연구를 하게 됐는데 역류성 식도염은 남성이 더 잘 걸리지만 속은 여성이 더 쓰리다는 결과가 나왔다. 발생률은 물론 양상에서도 성차가 존재했던 것이다.
지난 2016년 한국연구재단 수주로 대장암 성차 연구를 시작하게 됐고 관련 논문 발표 기회도 자주 얻으면서 이를 계속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소화기 분야는 물론 순환기, 신경, 피부까지 다른 분야 성차 연구 성과를 접하면서 이런 마음이 커졌다.
- 성차의학만 다루는 연구소를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도 궁금하다.
지난 2017년 대학원 과정에 이어 2018년 서울의대 의학과(본과) 2학년 선택과목으로 성차의학을 개설했다. 당시 서울의대 학장이었던 신찬수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첫 시도였고 의과학에서 섹스와 젠더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련 연구가 너무 부실해 실망스럽다는 평이 돌아왔다. 의대생을 교육하겠다면서 '남성과 여성은 이런 차이가 있다' 수준에 머문 것이다. '왜?'라는 물음에 답을 주지 못했다.
그때 정말 많이 반성했다. 성차의학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이전에 성차 자체에 대한 학문적 접근 시도 자체가 부족했다.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학은 생명력을 잃는다. 질병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깊이를 끝없이 더해야 한다.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속적으로 연구 성과를 내려면 연구자가 모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관련 조직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국내에서 성차의학연구소는 분당서울대병원이 최초다.
지난 2021년 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가 여성과총 부설기관에서 독립하고 과학기술기본법이 개정됐다. 이런 대외적 흐름과 '혁신'을 강조하는 분당서울대병원 기조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백남종 전 원장에게 연구소 설립을 건의해 임시 기구부터 시작해보자는 답을 받았다.
-성차의학을 '여성의학' 범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성차의학 주제를 꺼내면 여성주의(페미니즘) 운동하겠다는 거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다. 최근 사회적으로 젠더 문제가 첨예해지면서 공격적인 반응도 상당하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성차의학 대상은 모든 사람이다. 남성 유방암 환자가 더 적절하고 안전한 치료를 받고 여성만큼 남성 골다공증 예방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성차의학이 하는 일이다.
- 성별을 주제로 하면 '성소수자'도 포함되나. 최근 성소수자의료 중요성도 강조되는데.
초반에는 성차의학을 성소수자(LGBTQ) 주제로만 연결하는 시각도 있었다. 오히려 이런 반응을 보고 LGBTQ 문제를 알게 됐다. 성차의학은 전인적 치료에 도움이 돼야 한다. 지정된 성별과 경험한 성별의 불일치로 인한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부족하다. 성차의학에서 이에 대해 연구해 나가야 한다.
다만 생물학적 개념인 섹스는 범주화와 정량화가 가능하지만 젠더는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젠더는 사회문화적 맥락이기 때문에 서구의 선행 연구 방법과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부적합하다. 성차의학 연구 지평을 넓히려면 앞으로 젠더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말만 들으면 모든 질병에서 남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아청소년과가 이런 경우다. 2차 성징 전에는 '성차'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그럼 좀 실망스럽기도 하다(웃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당연했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동안 너무 당연해서 놓칠 수밖에 없었던 의학의 사각지대에 대해 우리 의학자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