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진화심리학 박사 1호’ 경희대 전중환 교수가 설명하는 ‘진화의학’

진화적인 시각이 들어간 의학? 생소했다. ‘과학’이라기보다 ‘인문학’에 더 가깝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물론 ‘진화의학’은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

국내 ‘진화심리학 박사 1호’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전중환 교수는 ‘진화의학’을 “How가 아닌 Why를 묻는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의학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유전이나 생리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진화의학은 ‘왜 질병에 잘 걸리게 진화했는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전 교수도 ‘진화의학’이 국내에서는 낯선 학문이라고 인정한다. 한 의과대학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지인(PhD)에게 진화의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더니 돌아온 반응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였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전 교수가 청년의사와 명지병원 주최로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열리는 ‘HiPex 2019 컨퍼런스(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19, 하이펙스)’에 강연자로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 교수는 ‘진화의학의 관점에서 본 질병, 의사, 환자’에 대해 강연하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하이펙스에서 그동안 다뤄진 주제 중 가장 ‘낯선 주제’이지 않을까 싶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전중환 교수는 최근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내에는 생소한 학문인 '진화의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염병을 예로 들면서 진화의학을 설명하기도 했다. 병에 걸리는 인간의 관점이 아닌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 관점이다.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을 사용하라고 하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콘돔을 쓰면 에이즈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다른 숙주로 옮겨가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니 독성이 낮은 바이러스로 진화한다. 한 숙주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하기에 자원을 아껴 쓰도록 독성이 낮아지는 것이다. 성관계가 문란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에이즈 유형을 비교하면 성관계가 문란하지 않은 지역에서 독성이 낮다.”

모기를 매개체로 하는 말라리아도 모기장 보급으로 다른 숙주로 옮겨가기 힘든 환경에서는 독성이 낮은 균으로 진화한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전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아파도 투혼을 불사르며 학교에 나올 필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아팠다는 이유가 적힌 결석계를 인정해준다고 했다. 진화의학적으로 조금이라도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게 병원체의 독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의학이 국내에서는 생소한 학문이다 보니 ‘사이비 과학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고 했다. 대체의학이나 자연치유를 말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는다. 그러나 전 교수는 “대체의학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기존 의학에 진화적인 시각을 넣자는 것”이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진화의학을 모르기 때문에 말하다보면 사이비 과학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과학은 ‘왜’를 묻는 게 아니라는 말까지 한다. ‘왜’에 집중하는 진화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면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전 교수는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행동생태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에서 진화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는 가족 내 갈등과 협동, 도덕적 혐오, 성도덕 등을 연구하고 있다.

생물학 전공자인 그가 진화심리학을 만나 시야가 넓어졌듯이 진화의학에 관심을 갖는 의사들도 늘기 바란다고 했다.

전 교수는 “생물학이 진화를 통해 종합됐음을 감안하면 의학도 진화를 통해 새로운 토대 위에 설 수 있다”며 “외국에서는 진화의학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우리나라 의사들 중에는 관심을 보이는 의사들이 드물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의학자는 반드시 생화학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진화적인 토대가 있어야 단편적인 사실들을 파편적으로 나열하기보다 하나의 틀로 통합해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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