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슈테판 숀랜드 · 삼성서울병원 김기현 교수
"ANDROMEDA가 바꾼 치료 패러다임…다잘렉스 1차 치료는 글로벌 표준"
"제약사의 늦은 허가 신청과 정부의 급여 결정 지연…환자 생존 위협"

경쇄 아밀로이드증(AL Amyloidosis)은 극히 드문 희귀질환으로, 조기 진단이 어렵고 대부분 환자가 이미 심장이나 신장 기능이 크게 손상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다. 따라서 치료 개입 시점이 늦을수록 예후는 극도로 나빠진다. 최근 20여 년간 치료 옵션이 빠르게 진화했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여전히 '얼마나 빨리 표준치료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환자의 생존을 좌우한다.

그런 점에서 '다잘렉스(성분명 다라투무맙) 병용요법(DVCd)'은 이 질환 치료의 분수령을 만든 '게임 체인저'로 평가된다. 특히 ANDROMEDA 임상 연구는 다잘렉스 병용이 전체생존율(OS)과 장기 반응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경쇄 아밀로이드증 1차 치료에 표준요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피하주사 제형 출시 전략에 따른 제약사의 늦은 허가 신청, 그리고 뒤따른 급여 지연으로 인해 국내 환자들은 여전히 비급여 상태에서 치료를 감당해야 한다.

이에 본지는 경쇄 아밀로이드증 분야 권위자인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 슈테판 숀랜드(Stefan Schönland)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김기현 교수를 만나, 치료 패러다임의 전환과 다잘렉스 병용요법의 임상적 가치, 그리고 국내외 치료 환경의 차이를 통한 향후 개선 과제를 짚어봤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 슈테판 숀랜드 교수(좌)와 삼성서울병원 김기현 교수(우)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 슈테판 숀랜드 교수(좌)와 삼성서울병원 김기현 교수(우)

통상 1년 이상의 진단 방랑…조기 진단 어려워

"경쇄 아밀로이드증은 한국에서만 희귀한 게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20년 전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을 정도로 뒤늦게 주목받기 시작한 질환입니다."

숀랜드 교수는 먼저 경쇄 아밀로이드증의 희귀성을 강조했다. 이 질환은 골수에서 비정상적으로 생성된 면역글로불린 경쇄(light chain)가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에 침착하면서 손상을 일으킨다.

숀랜드 교수는 "심장에 침착되면 부종, 호흡곤란, 체중 감소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또 일부 환자에서는 눈 주변 출혈이나 혀가 두꺼워지는 거설증 같은 특이적 증상도 관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기현 교수는 "손발 저림 같은 신경 이상, 소화장애나 구토 같은 소화기 침범 증상도 흔하다"면서 "문제는 대부분의 증상이 비특이적이어서 환자가 평균 두세 명의 의사를 거친 뒤에야 진단을 받으며, 보통 증상 발생 후 확진까지 1년 이상 걸린다"고 덧붙였다.

진단 지연은 곧 환자의 예후 악화를 의미한다. 숀랜드 교수는 "환자들이 심장이나 신장이 이미 크게 손상된 상태에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 치료를 시작해도 회복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경쇄 아밀로이드증, 다잘렉스 등장으로 전환기 맞아

과거 경쇄 아밀로이드증 치료는 다발골수종에서 쓰이던 약제를 그대로 차용하는 수준이었다. 멜팔란, 사이클로포스파미드, 스테로이드 등이 그 예다. 이후 면역조절제, 프로테아좀 억제제가 더해지며 치료 성적은 개선됐지만, 여전히 예후는 제한적이었다.

김 교수는 "다라투무맙이 등장하면서 치료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었다"며 "CD38 항원을 표적해 형질세포를 제거하는 기전 덕분에 환자의 생존기간이 유의미하게 늘어났으며, 무엇보다 다라투무맙은 기존 화학요법 대비 다른 장기에 대한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숀랜드 교수 역시 "다라투무맙은 기존 치료법과 병용했을 때 전체생존기간, 심장·신장 반응률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희귀질환 특성상 대조군을 설정하기 어려운 한계에도 불구하고, 최근 임상 연구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ANDROMEDA 임상 성공은 '게임 체인저'

다잘렉스 병용요법(DVCd)의 위상은 ANDROMEDA 임상 연구를 통해 확고해졌다. 실제 작년 말 미국혈액학회(ASH 2024)에서 발표된 최종 데이터는 전 세계 혈액종양 전문의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 슈테판 숀랜드 교수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 슈테판 숀랜드 교수

숀랜드 교수는 "60개월 전체생존율(OS)이 다라투무맙 병용군에서 76.1%로 나타났다. 기존 VCd군은 64.7%였고, 위험비는 0.62였다"며 "연구 초기에는 OS가 50%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다라투무맙 병용군의 80% 이상 생존하며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 역시 "혈액학적 완전관해율은 다라투무맙 병용군에서 59.5%, 대조군은 19.2%였으며, 심장과 신장 반응률도 두 배 이상 개선됐다"며 "이런 결과는 다잘렉스가 단순히 효과 좋은 신약이 아니라, 질환의 생존곡선을 완전히 바꾼 게임 체인저임을 입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기존 VCd 요법을 받은 환자의 약 70%가 이후 다잘렉스 치료를 추가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생존율 격차가 크게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다잘렉스를 2차 치료 이후가 아닌 1차 치료 단계에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김기현 교수는 "연구에서 도출된 위험비가 약 0.6으로, 다라투무맙을 병용했을 때 사망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라며 "따라서 이 요법을 1차 치료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환자 치료에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는 이미 '골든 스탠다드', 한국은?

이 같은 데이터는 곧바로 해외 진료 지침과 보험 급여에 반영됐다. 숀랜드 교수는 "독일에서는 다라투무맙 병용요법이 4년 전부터 전면 급여로 적용됐다"며 "필요한 환자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기현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김기현 교수

김기현 교수 역시 해외 상황을 상세히 비교했다. 그는 "영국은 이미 1차 치료에서 다라투무맙 4제요법을 허가하고 급여를 적용했고, 스페인은 일부 제한적이지만 환자 조건에 따라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며 "호주 역시 전통적으로 보험 등재 기준이 까다로운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OECD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빠른 시점에 다라투무맙 4제요법을 보험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처럼 주요 국가들이 앞다투어 환자들의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여전히 비급여 상태라는 점이 문제"라며 "이미 글로벌에서는 논쟁이 끝난 치료인데, 한국 환자만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외부에 보이기 부끄럽고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는 경쇄 아밀로이드증 환자의 5~10%만이 자비로 다잘렉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하주사 제형이 외래에서 간단히 투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입원 사유가 되지 않아 실손보험 적용도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다라투무맙 4제요법은 전체생존기간을 두 배 이상 연장시키는 치료인데, 환자들이 제때 이 약을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매우 치명적"이라며 "이미 ANDROMEDA 연구에서 OS 데이터까지 발표된 만큼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급여 적용을 늦추는 것은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강조했다.

경쇄 아밀로이드증 환자들에게 다잘렉스 병용요법은 더 이상 새로운 선택지가 아니다. ANDROMEDA 임상은 이미 생존 곡선을 바꿔놓았고, 유럽과 미국은 이를 신속히 받아들여 환자의 접근성을 보장했다. 독일은 4년 전 전면 급여를 시행했고, 영국·호주 등도 보험 체계 안에 포함시켰다. 글로벌 의료 현장은 더 이상 이 치료의 필요성을 두고 논쟁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제약사의 늦은 허가 신청, 정부의 지연된 급여 결정 사이에서 환자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병이 진행될수록 치료 기회는 줄어드는데, 행정 절차라는 장벽 앞에서 환자의 삶이 희생되는 현실이 부끄럽다"는 김 교수의 말을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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