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평위 심사 기한 다다른 '트로델비', 핵심은 ICER 임계값 유연 적용
연내 혁신 신약 가치 반영 체계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10만 청원의 주인공인 삼중음성 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성분명 사시투주맙 고비테칸)'에 대한 급여 적용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 2024년 시행계획'을 통해 혁신성 평가 기준을 충족하는 약제에 비용효과성 평가 수용 범위를 유연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를 위해 올 상반기 중 신약의 혁신성 기준을 구체화하고 관련 규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신약의 건강보험 적정성을 평가할 때 점증적 비용 효과비(ICER)를 활용해 비용효과성을 평가한다. ICER란 환자가 신약을 사용함으로써 건강한 삶을 1년동안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을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산출한 값이다. ICER가 특정 임계값보다 높을 경우 이를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최근 신약 기술의 발전과 함께 약가 또한 높아지고 있어 신약의 혁신성에 따라 임계값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례로 2023년 의과학저널 스프링거 온라인판에서 게재된 '신약 등재제도 미충족 수요 조사' 연구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 약가 담당자의 신약 혁신 가치 인정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에 1.6점에 불과했고, 경제성평가의 개선점으로 92.9%가 ICER 임계값 개선을 꼽았다.
이에 작년 말 정부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충족하는 신약의 경우 ICER 임계값을 탄력 적용해 혁신 가치를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체 가능하거나 치료적 위치가 동등한 제품 또는 치료법이 없는 경우', '생존기간의 상당기간 연장 등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이 입증된 경우', '식약처 신속심사 허가 신약(GIFT), 미국 FDA 획기적 의약품 지정(BTD) 혹은 유럽 EMA 신속심사(PRIME)로 허가된 경우'다.
혁신 신약에 대한 경제성평가 우대 방안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이자 혁신성의 정의를 모두 충족하는 약제 중 하나인 '트로델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트로델비는 항암화학요법 이외 치료 옵션이 부재하던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2차 이상 치료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임상을 통해 전체생존기간 연장 효과를 입증한 치료제다.
미국국립암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은 트로델비를 가장 높은 수준인 카테고리 1(Category 1)로 권고했으며, 유럽종양학회(ESMO)는 항암제 평가 기준인 'ESMO-MCBS'에서 말기암 치료제 중에서는 드물게 최고점 5점을 부여했다. 2016년 미국 FDA로부터 획기적 의약품으로 지정된 바 있어 마지막 조건에도 부합한다.
트로델비는 보험 급여에 있어 가장 보수적으로 꼽히는 영국에서도 일찌감치(2022년 7월) 보험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질환의 중증도와 미충족 수요, 약제의 혁신성 등에 따라 ICER 임계값의 범위를 유연하게 적용한다. 일반적인 임계값은 2~3만 파운드로 명시하고 있으나, 기대수명이 24개월 미만이고 환자 수가 소수인 말기 환자군에서 3개월 이상의 생존 연장 효과를 확인한 치료제는 임계값을 5만 파운드까지 확대한다. 더불어 위중증도가 높은 질환의 경우 가중된 임계값을 적용한다.
트로델비는 말기 환자군의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제로 인정돼 기존 임계값보다 상향된 기준을 적용 받았다. 3상 임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트로델비 치료군의 전체생존기간은 11.8개월로 항암화학요법(6.9개월) 대비 약 5개월 연장됐다. 또한 트로델비 대상 환자는 391명으로 추정돼 인구 5만 명당 1명 미만으로 정의되는 희귀질환 환자보다도 적었다.
이에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ICE)는 트로델비의 ICER가 약 4만 7천 파운드로 측정됐음에도 비용효과적인 약제로 평가해 급여를 적용했다.
NICE는 트로델비가 말기 환자군을 위한 치료제의 기준을 충족하고 효과적인 치료 옵션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높은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에서 표준치료 대비 반응률을 크게 향상했다는 점에서 국가보건서비스(NHS)의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평가한 것이다.
특히 NICE는 효과적인 신약의 부재로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들이 겪는 부담을 강조했다. 항암화학요법을 표준치료로 사용해야 하는 삼중음성 유방암 특성상, 환자는 물론 보호자까지 상당한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항암화학요법을 시도하더라도 빠르게 재발하는 경향이 있어 재발한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를 위한 치료 옵션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로델비는 임상 3상을 통해 전체생존기간, 무진행생존기간, 객관적 반응률에서 표준치료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개선 효과를 확인했고, 이에 NICE 위원회는 트로델비를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에게 매우 효과적인 치료제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트로델비의 건강보험 등재에 대한 국내 환자들의 요구도는 이미 끓는 점을 넘었다.
급여화를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올해만 두 번 올라왔고, 도합 10만이 넘는 동의를 얻으며 트로델비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여실히 보여줬다.
작년 11월 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한 트로델비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 기한 마감을 코앞에 두고 있어, 정부의 혁신 신약 가치 인정 방안이 이들의 염원을 이룰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