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

지방 한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응급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정상적으로 전원했지만 언론은 ‘응급실 뺑뺑이’라며 온갖 조리돌림을 했다. 그리고 해당 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 조사 이후 기관 징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있지도 않는 죄를 뒤집어씌워 수차례 수사하며 온갖 망신과 모욕을 주더니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 여론이 들끓자 이제는 차일피일 그 수사마저도 시간을 끌대로 끌며 해당 응급의학과 전공의의 피를 말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전공의뿐 아니라 코 앞으로 다가온 내년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마저도 아예 씨를 말리려 하고 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

지난 10월말 개최된 대한응급의학회 추계학술대회를 통해 수도권과 지방 여러 수련병원의 지도전문의인 응급의학과 교수들과 자연스럽게 수많은 소통이 이루어졌다. 현재까지 내년도 전공의 지원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보통 지방 대학병원이라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정원은 2~3명인데, 한 명도 지원자가 없는 병원, 나아가 지역도 있었다. 복지부가 나서서 수도권과 지방 전공의 정원을 50:50으로 조정하려다가 한발 물러서 55:45로 조정했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지방의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자는 0에 수렴하고 있어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필수의료 대책에 이어 응급의료 4차 기본계획도 야심차게 발표했다. 그러나 그런 거대 담론은 응급의료 현안들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멀고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응급의료 선진국이라고 하는 몇몇 외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응급의료 자원과 낮은 의료수가에서 애당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응급실 현장에서 야간과 휴일에 응급 진료 한번 해 본 적이 없는 언필칭 의료전문가들의 고상한 해법들이란 의대 증원과 추상같은 관계 법령 강화와 탐욕스러운 의사들에 대한 꾸짖음이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여전히 정부 정책에 불만이 가득하지만, 어쨌든 정부는 소청과 전공의뿐 아니라 전임의(전문의)들에게도 월 100만원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소청과 초진료도 인상했다. 정부가 다른 임상과와 형평성 문제 등 여러 이유로 반대했던 소청과 무과실 의료사고국가보상제도를 10년 만에 적용하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응급의학과는?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응급의학과 전임의는커녕 전공의 수련 지원 수당도, 응급의료 수가 관련 인상 소식도, 응급 환자에 대한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대책도 들리는 게 없다.

“의사 없다고 환자 안 받으면 불이익, 의사가 없어도 응급실에서 환자 받아야 된다”는 어이없는 응급실 뺑뺑이 대책만 보도되고 있다. 복지부는 사실이 아니며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 관리 표준지침을 논의 중이라고 했지만 응급의료 현장의 불안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생명을 지키는 최일선,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가족들과 설날, 추석 연휴 한번 남들처럼 여유롭게 보내지도 못하며, 야간과 휴일에 응급 진료에 매진해 왔다. 그 결과, 환자 한 명 죽기라도 하면 과도한 민원에 그치지 않고 민·형사 소송에도 시달리고 있다.

실제 한창 응급 환자 진료에 매진해야 할 30~40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응급실을 떠나고 있다. 과도한 정부 정책, 날로 엄중해지다 못해 가혹해지고 있는 사법부의 형사 책임 추궁과 인신 구속, 천문학적인 민사적 배상, 면허 취소 위험 때문이다. 이전에도 개인적 판단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개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소아청소년과 의료대란 해소 위한 태스크포스(Task Force)’, ‘지역 필수의료 혁신 TF’ 등을 구성해 노력하고 있지만 응급의료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눈에 띄는 대책이 나오고 있지는 않아 답답하다. 복지부는 의대 증원이라는 난제 해결에 매몰돼 정작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응급의료의 숨넘어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지난 1996년 배출 시작된 이래 2023년 현재까지 겨우 2,560명이 있을 뿐이다. 사망하거나 은퇴한 의사와 군의관, 공중보건의사들을 제외하면 응급실에서 야간과 휴일 응급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들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이 소아청소년과처럼 떨어지고 30~40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조용한 사직 흐름을 돌려세우지 못한다면,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 응급실 폐쇄의 지옥도가 현실에서 펼쳐지게 될 것이다.

겨우 숨 쉬고 있는 응급의료 현장의 기능마저 끊으려는 의도가 있지 않다면 국회와 정부, 법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전공의들을 존중하고 제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응급의학과 전문의·전공의들이 마음 놓고 자기 실력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 응급의료 환경을 만드는 대책을 시급히 시행해 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린다. 정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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