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들이 내놓은 처방전]③ 필수의료=소방서
"지도·나침반 들고 길 찾아야…소청과 문제 해결 시급"
"입원전담전문의로 ‘개원→병원’ 이동 사다리 만들어야"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와 의료계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응급의료체계 개편, 지불제도 개혁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지만 사회 갈등만 키우는 모양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민국 의료체계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청년의사가 창간 31주년을 맞아 젊은 의사들과 한국의료를 진단하고 해법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토론: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장
장성인 연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정윤빈 세브란스병원 일반외과 입원전담교수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이상 가나다 순)
필수의료 분야 인력 부족, 건강보험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 한국의료의 미래는 암울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협심해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비관론이 대세인 시대에 젊은 의사들은 어떤 희망을 품고 있을까.
사회자 : 한국의료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데 이견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가.
강민구 : 결국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루느냐가 중요하다. (시간 차는 있겠지만) 사회적 합의는 나오기 시작할 것이고 이런 합의들이 바탕이 되면 여러 문제들이 너무 급하게 터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소아청소년과 문제는 지금 당장 해결해줘야 한다. 사회적 요구도가 워낙 높고 특히 30~40대 연령층이 원하고 있다.
사회자 : 소청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강민구 : 당장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병상당 인력 기준을 만들어 전문의를 고용하면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소청과 문제와 관련해서는) 30~40대가 정치 조직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때문에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주는 것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으로도 좋다. 비용을 투입해서라도 단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재훈 : 냉정하게 말하면 특정 과에 가산이나 혜택을 주는 정책으로 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인 문제는 한정된 재원을 기반으로 비용이 지불되는 구조인데, 어떤 과는 급격하게 비용이 늘어나고 어떤 과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이 문제다.
다른 말로 하면 행위별수가제나 한정된 재원을 기반으로 하는 지불제도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해결이 안되는 실손의료보험 문제, 인구구조 문제 등이 시간이 지나면 안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지도와 나침반 들고 40~50년 버텨야
사회자 : 시간에 맡기기는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장성인 :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길을 나서면 희망이 있다. 우리가 고령화를 ‘터널’로 표현하는데 40~50년을 버티면 된다. 다만 버티기 위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 기간을 지나면 인구구조가 조정되면서 절대적인 의료비 자체가 줄어든다. 그 시점이 올 때까지는 건강보험이 아니라 의료서비스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강민구 : 그 과정에서 소청과에 더 집중해야 한다.
장성인 : 소청과로 사람을 많이 보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제가 알기로 지금이 소청과 전문의가 사상 최대다. 다만 전문의들이 해당 분야에 없기 때문에 문제다. 이 사람들이 소청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면 된다.
강민구 : 방법은 급여라고 생각한다.
사회자 : 지역에 관계없이 소청과로 개업하고 환자를 몇명 진료하는 것과 상관없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것은 어떤가.
장성인 : 제가 실제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소청과 뿐만 아니라 필수의료가) 필요한 분야에 필요한 사람이 가면 그 사람에게 직접 비용을 지불해줘야 한다.
정재훈 : (필수의료 분야를) 소방서처럼 만들어야 한다.
사회자 : 우리가 흉부심장혈관외과 사례에서도 경험했듯이 수가를 대폭 올려준다고 다 해결되지 않는다. 소청과도 수가를 대폭 올렸을 때 원하는 효과가 나오지 않고 대도시에서만 공급이 크게 늘어나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장성인 : 소청과 문제는 좀 복잡하다. 중증환자와 지역의료 문제가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충주에 소아가 1만명 살고 있어서 소청과 전문의 5명이 필요하다고 가정하고 5명의 전문의에게 각각 월 1억원씩 지불하면 5억원이 필요하다. 이 5억원을 소청과 전문의 수와 상관없이 (지역에서) 매월 지급하는 비용으로 설정하면 충주에 소청과 전문의가 5명일 때 각각 1억원이지만 1명이 활동하면 월 5억원을 버는 것이다. 지역마다 이렇게 재원을 설정해 놓고 사람 수에 상관없이 투입하면 사람들이 지역으로 이동한다.
강민구 : 관련 수가를 올리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의료기관 병상당 인력기준을 만들어서 전담전문의를 채용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의사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단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기술 발전 통한 비용절감이 미래 될 수도
사회자 : 아주 희망적이라고 보긴 어려운 해결책인 것 같다.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는 없나.
정재훈 : 그래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인공지능 등 기술을 통한 진보가 길이 될 수 있다. 기술 발전을 통해 비용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이게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활용하는 대표적인 것이 식당 등에서 사용하는 키오스크(kiosk)이다. 병원에서도 이정도 혁명이 일어날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의료기관은 인건비 비중이 큰데, 중환자, 간병 등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키오스크 활용급 혁명이 일어나면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한국의료체계가 기술 발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는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플랫폼 만들어 수수료 장사하려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진보를 이런 시각으로 보는 순간부터 공급자도, 보험자도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만 해결된다면 기술 발전을 통해 (보건의료체계) 지속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
정윤빈 : 다양한 주체들이 보건의료체계 문제를 들여다 보고 정책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에서 희망을 좀 가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의국이 한번 무너지면 복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소청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신규 전공의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는 있다.
강민구 : 건강보험 급여 진료에 대한 긍정적 신호를 최대한 줘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몇년을 더 버틸 수 있다. 필수의료와 급여 진료 분야에 신규 진입하는 의사들이 있어야 한다.
입원전담전문의제도, 병원이 개원의 확보할 길
장성인 : 그런 의미에서 입원전담전문의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입원전담전문의는 병원 필수의료 영역으로 인력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물론 현재 좀 부실한 부분이 있지만 입원전담전문의를 잘 설계하면 의사들이 개원했다가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미용‧성형 분야로 진출하는 인력들은 아예 (필수의료 영역으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입원전담전문의제도를 통해 불씨를 살려봐야 한다.
사회자 : 전세계적으로 개원의 비율은 줄고 봉직의사가 많아지는 추세인데, 우리만 특이하게 개원의가 많아지는 상황이긴 하다. 그래서 봉직의로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는 것은 희망적이다.
정윤빈 : 입원전담전문의로서 이야기 하자면 아직 제도 초기니까 상급종합병원이나 서울로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입원전담전문의가 1,000명 정도 되면 그때부터 종별‧지역별 분포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지금은 제도 초기기 때문에 (외과의사라도 수술을 금지하는 등) 입원전담전문의 역할을 아주 강력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역할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강민구 : 입원전담전문의제도를 통해 전공의 착취로 유지되는 대학병원 진료체계를 전문의 중심체계로 전환할 수 있다. 앞으로 전공의 근로시간 단축과 1인당 환자 수 제한 등 전공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면서 병원이 전문의를 더 채용해 의료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장성인 : 지금 우리나라 건강보험정책을 위한 당장 한가지를 해야 한다면 입원전담전문의제도의 적극 활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관련 수가를 대폭 올려야 한다.
정부, 문제마다 적절한 대화 상대 찾아야
정재훈 : 장기적으로 의료는 사회와 절대 떨어뜨려 볼 수 없다. 결국 당장 급하게 개선해야 한다면 현 지불제도가 더이상 존속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 또 정책 수립 당사자들이 문제가 있는 영역에서 누구와 대화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의사 사회는 균일하지 않고 지역, 나이, 질환 등에 따라 파편화돼 있는데 대한의사협회는 너무 광범위한 집단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최적의 대화 파트너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집어내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장성인 : 행위별수가제가 굉장히 효율적인 지불제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불제도 개편에서 많이 언급되는) 총액계약제를 도입하면 비용을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게 의료의 질을 낮추면 이를 다시 높이거나 관리하는 비용이 지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40년 가까이 활용해 노하우가 있는 행위별수가제를 완전히 버리고 의료의 질 관리에 문제가 있는 지불제도로 갈 것이냐는 더 논의해 봐야 한다. 특히 지금 문제가 발생하는 영역에서는 지출 효율성을 위해 총액계약제로 가는 것이 아니라 비효율성을 각오한 개선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 [창간특집] 건강보험제도 "이대로면 파국"…지속가능 방안은?
- [창간특집] ‘가오 상실의 시대’가 필수의료 붕괴 불렀다
- 관심 커지는 ‘지불제도’ 개편, 현실적 어려움 토로한 복지부
- 의사-환자 신뢰 깨는 행위별수가제…"가치기반 지불제로 전환돼야"
- 전 세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 고민…독일·일본 해법은?
- "입원전담전문의, 교수 임용 가능성 높으면 오래 근무한다"
- 효과 확인된 입원전담전문의 "지속되려면 수가 10% 인상 필요"
- "하반기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 2.8% 불과…현실적 지원 필요"
- 개원가에서 병원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필수의료 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