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익명 인터뷰 시리즈④
진료·분쟁 혼자 떠안은 의사들 떠나는 악순환
"지역·의료기관만으로 '정상 구조' 못 만든다"
공중보건의사는 40년간 공공의료 한 축이자 최전선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근무 환경에 대한 문제도 40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특수한 근무 여건으로 신상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청년의사는 공보의 근무 환경을 진단하기 위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와 함께 익명 인터뷰를 기획했다. 공보의 4명이 응했다. 섬 지역에 근무하는 이른바 '섬보의'와 민간병원에 근무한 '병공의', 지방의료원에 있는 공보의들이다. 인터뷰는 유선으로 진행했다. 당사자 허락을 받아 신상과 관련된 내용은 각색했다.
'의료취약지'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는 매일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는 지방 의료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 이들 눈에 지방 의료는 더 이상 독자생존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방의료원에 근무하는 공보의는 물론 섬에서 근무하는 '섬보의'도 지방 민간병원에서 근무하는 '병공의'도 공유하는 인식이다.
연봉 3억6,000만원을 제시해도 지원자를 못 구한 산청군의료원 사례는 이런 의료 현실의 한 단면이다. 지난 1월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익명 인터뷰에 참여한 공보의들은 공보의 근무 환경과 산청군의료원 사례는 결국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3억6,000만원이 아니라 10억원을 주고 20억원을 줘도 해결할 수 없는(공보의 A)" 문제들이 자리잡고 있다.
공보의들은 무엇보다 의료사고나 분쟁이 벌어졌을 때 의료진 보호장치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산청군의료원은 근무를 희망하는 의사에게 업무대행 계약체결을 요구하며 의료사고와 분쟁 책임을 의사가 지도록 했다. 공보의들은 산청군의료원처럼 고의로 책임을 덮어씌우는 의료기관도 있지만 대다수가 "책임지고 싶어도 못 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방 의료기관은 의사가 "절대 처음 담당하기로 한 업무만 할 수 없는(공보의 B)"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빠져 있다. 대형병원 '법무팀'처럼 전담 조직은 고사하고 담당자 두기도 힘들다. 소송이나 배상에 쓸 재원도 없다. 따라서 병원이 작정하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더라도 의료 분쟁이나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의사가 많은 부분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공보의 A: 의사와 책임을 분담할 의료기관은 많지 않아요. 해주고 싶어도 못 해줍니다.
공보의 B: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인생이 걸린 일입니다.
그 뒤로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가 기다리고 있다. 공보의들이 근무하고 있는 지방 의료기관 대다수가 의사 혼자 2~3명 일을 소화한다. 지역과 진료과에 따라서 의사 혼자 주민 전체 의료 수요를 책임지기도 한다. 사명감으로 버티던 의사들도 결국 떠나고 만다.
공보의 D: 의사가 없어서 일이 힘들고 일이 힘들어서 의사가 사라져요. 악순환이죠. 매일 조금씩 조금씩 더 안 좋아지고 있어요.
의사 인력만 부족한 게 아니다. 의사와 함께 일할 간호 인력도 의료기사도 없다. 공보의를 투입해 24시간 근무 체제를 만들어도 교대근무할 간호사와 의료기사를 못 구해서 응급실이 유명무실해진다. 경찰·소방과 연결할 행정 인력이 없어 한밤중에 의사 혼자 온 섬을 돌며 응급환자를 육지로 보낼 배편을 구해야 한다. 지방은 지금 "인프라 자체가 전무한 총체적 난국(공보의 C)"에 빠져있다.
공보의 B: 의사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섬에 공보의 한 명 밀어 넣는다고 없던 인프라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의사한테 연봉 10억원을 준다고 해서 혼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어요.
공보의 A: 지역에서는 의사 1명이 지역민에게 제공하는 의료 혜택이 수도권이나 대도시 50%도 안 된다고 봐요. 기본 인프라가 없는데 공보의가 아니라 대학병원 교수가 와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공보의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프라에 매일 무너지는 지방 의료 현실을 목도하면서 "지방 의료는 더 이상 독립적으로 생존하기 어렵다(공보의 B)"고 했다. 인구는 적고 교통은 불편하다. 거동이 불편하고 돌봐주는 이 없는 고령층은 의료 혜택을 접하지 못한 채 "지역 안에서 질병을 끌어안고 살아간다(공보의 A)." 환자가 찾지 않는 의료기관은 수익을 내지 못한다. 의료진에게 비급여 진료 등 매출 압박을 해도 한계가 있다.
공보의 C: 인구가 적으니 의료 수요도 훨씬 제한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박리다매'가 안 돼요. 그 반대는 더 어렵죠. 그런데 (정부) 지원조차 턱없이 부족해요.
공보의 B: 지역은 이제 의료기관 힘만으로 필요한 만큼 민간 전문의를 고용하고 수익을 올려 독자생존하는 '정상 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결국 정부가 나서야만 한다고 했다. 정부 필수의료 지원 대책 중 하나로 거론됐던 지역 가산 수가 제도를 도입하고 인력·시설·설비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을 보조하는 등 전면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단시간 내 인구 증가나 교통 수단 확충 같은 "생활 인프라 수준 개선은 어려우니 최소한 의료 인프라라도 지켜보자는 절실함(공보의 B)"을 발휘할 때라고 했다.
공보의 C: 투자라고 생각해야지 '낭비'라고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공보의 D: 물론 비용이 엄청나게 들겠죠. 확실한 건 지역도 못 하고 국가도 외면하는 문제를 의사가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국가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기꺼이 들어갈 의사는 이제 없습니다.
관련기사
- [기획] 위법 행위 거부하니 '급여 삭감'…"1년 잃었다"
- [기획] '무늬만' 응급실에서 보낸 4개월…"인력사무소 같았다"
- [기획] 주168시간 상시 '정상 진료'…"의사 아니라 민원대"
- [단독] 공보의는 노예처럼 일하라?…야간·주말 '응급' 삭제에 '발칵'
- 산청보건의료원 지원 포기한 의사 “3억6천? 안가는 덴 이유 있더라”
- “3억6천에 의사노예계약”…손해보험 개별 가입하라는 보건의료원
- 현역병 18개월 VS 공보의 37개월…"차라리 현역 입대"
- 지원도 없고, 보상도 없고, 자유도 없는 '섬보의'들
- 대학병원장 출신 보건소장이 느낀 ‘솔직한’ 지방의료 현실
- 공공의료기관 근무의사, 서울 3000명-세종 3명 ‘1000배’ 차이
- 코로나로 공보의 정신건강 '빨간불'…모니터링 체계조차 없는 현장
- 분만취약지 보건소장으로 인생 2막…한 산부인과 명의의 충고
- 공보의 야간·주말 '응급' 삭제…그만큼 "절박한 현실 봐달라"
- "절박한 현실?…후배 희생 요구하는 게 대안인가"
- 국고지원 필수의료 실습 의대생 173명 수료
- 응급의료종사자 폭행 신고 의무화한 법안, 복지위 통과
- 30년 도전 전남 지역 의대 신설…'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
- "지역 필수의료 강화하려면 공공의료위 운영 개선해야"
- 공보의 4명 중 1명 없어졌다…커지는 '병공의' 축소 목소리
- "공공병원 착한적자 메우려면 운영 비용 전체 보상해줘야"
- 지자체장 떠나면 지방의료원장도 임기 만료 추진
- "공무원에 무면허 의료행위 시키지 말고 인프라 개선하라"
- 코로나 ‘올인’ 지방의료원들, 손실보상 끊기자 다시 ‘적자 늪’
- "공보의 수 감소가 곧 지방의료 위기…효율적 배치 방안 필요"
- 사망 육군 훈련병 초기대응 미흡 '軍 의료체계' 질타 이어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