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장마’-병원계 ‘안갯속’-간호계‧한의계 ‘맑음’

2023년은 길었던 코로나19 대유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이후 보건의료정책에도 많은 변화도 예상된다. 이에 의료계, 병원계, 간호계, 한의계 등 보건의료를 지탱하는 주요 단체들은 새로운 정책이나 달라지는 시스템을 자신들에게 보다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고자 벼르고 있다. 지난 행보를 바탕으로 이들이 처한 상황을 기상도로 정리했다.

醫, 초대형 태풍의 연속기나긴 장마의 시작?

2023년을 시작하는 의료계 앞날은 어둠 그 자체다. 2022년 말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사용 합헌 판결이란 초대형 태풍을 맞닥뜨렸는데, 이어 간호법과 면허관리강화법 국회 통과 저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논의 등 또다른 태풍이 예보돼 있어 '고난'의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의사 초음파 사용 합헌 판결의 경우 대법원 판결이 난 사항이기 때문에 뾰쪽한 대응책도 없다. 의료계와 법조계 일각에서 대법원 판단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는 있지만 대법원이 오랜시간 숙고해 내린 판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의료일원화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만 지난 2018년 복지부, 의료계, 한의계가 힘을 모아 추진했던 의료일원화가 ‘교육과정통합’을 통한 점진적 일원화라는 초안까지 작성했음에도 없던 일이 된 전례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과제다. 의료계가 큰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의료일원화 합의는 요원해 보인다.

간호법제정안과 면허관리강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도 의료계가 마주하고 있는 큰 숙제다. 대한의사협회는 보건의료계 여러 단체와 연대해 지난해 내내 간호법 저지를 위해 노력했지만 법사위 상정을 막지 못했다.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패스트트랙을 통한 본회의 상정까지 염두에 둔 상황에서 일단 법사위 상정 후 2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 결정이 나면서 한숨 돌렸지만, 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이 간호법 통과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통과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심지어 국회에서는 ‘지금 의협 등 의료계가 신경써야할 법은 통과돼도 명분 외 사실상 현장에 당장 큰 변화가 있는 간호법 보다 의사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면허관리강화법’이라는 충고까지 나온다.

코로나19 안정화 후로 미뤄졌던 의정협의도 그 과정이나 결과에 따라 의협에게 시련이 될 수 있다.

양 측은 ▲지역 수가 등 지역의료 지원책 개발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전공의 수련 환경의 실질적 개선 등 국민 건강 증진과 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방안 등 의료계가 원하는 주제를 주요 논의안건으로 정했지만 시선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에 쏠린다.

최근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 후 필수의료에 대한 국민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의정협의가 재개된다는 점도 의료계가 염두에 둬야할 부분이다.

만약 의정협의가 재개된 후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에 무게가 실리고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가 이에 반발해 집단행동에라도 나설 경우 국민적 비판 거세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나 공공의대 설립을 통해 필수의료에 종사할 의료인력을 양성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같은 주장과 논리가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잇따른 초대형 태풍을 맞닥뜨릴 의료계가 준비된 모습으로 올 한해를 잘 이겨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病, 건보재정 효율화‧필수의료 확대 등 ‘안개’

같은 의료계지만 병원계는 상황이 미묘하게 다르다.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허용,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간호법 등의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그보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의 핵심은 ▲의료적 필요도 기반 급여기준‧항목 재점검 ▲공정한 자격‧부과제도 운영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 ▲불법행위 엄단 및 비급여 관리 혁신 등이다.

이 중 공정한 자격‧부과제도 운영을 제외한 나머지 방안들은 모두 병원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의료적 필요도 기반 급여기준‧항목 재점검은 대규모 삭감,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는 외래진료 축소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불법행위 엄단 및 비급여 관리 혁신도 마찬가지다.

세부적으로 어떤 정책들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건강보험재정 효율화를 이유로 병원계 체질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대한병원협회의 대응에 관심이 모인다.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확대 추진도 병원계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필수의료분야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없이 각종 인증‧지정기준 등을 통해 필수의료인력 확대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수가로 지원한 금액이 8조원을 돌파한 점도 감안해야 한다.

코로나19 안정화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본격적으로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회귀’를 추진하면 코로나19 관련 수가의 상당수는 사라질 것이고, 코로나19 특수를 누렸던 병원들은 ‘8조원’이 투입되지 않았던 예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이 쉬울지 어려울지는 병원계와 복지부의 협상 등에 달렸다.

병원계 상황이 의료계보다는 나아보이지만 건보재정 효율화와 필수의료 확대 압박,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시대 준비 등에 소홀한다면 병원계 역시 2023년에 햇살보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로 보낼 가능성이 높다.

간호계‧한의계, ‘맑음’ 또 '맑음'

간호계는 그간 간호법을 ‘뭉개고’ 있던 법제사법위원회가 전체회의 상정 후 2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를 결정하면서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아져 희색이 만연하다.

물론 간호계 내에선 법사위가 논의 결정만 해놓고 소위안건에 상정하지 않거나 상정 후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이 간호법 국회 통과를 여전히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일부 의원이 제대로 된 설명없이 통과를 거부할 경우 역풍을 불러 오히려 통과 여론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간호법 외 간호계가 올해 주목하는 사안은 복지부가 진행 중인 진료지원인력(PA) 타당성 검증 시범사업이다. 복지부는 전국 10여개 의료기관에서 올 4월까지 진행되는 시범사업이 종료되면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를 확립해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PA라는 새 직능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간호사들이 대부분인 진료지원인력의 수행 역할이 확대된다면, 이는 그대로 간호계 입지 강화로 이어질 것이고 간호법 제정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다만 ‘직능 간 업무범위’는 간호법처럼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의료현장에서 의사나 간호사들이 직접적으로 느끼는 문제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작은 문제가 큰 갈등으로 번지는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

복지부가 고려의대 윤석준 교수를 책임연구자로 진행한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안) 타당성 검증’ 연구에서는 진료지원인력이 수행 가능한 업무로 ▲문진‧예진‧병력청취 등 단순 이학적 검사 ▲회진 시 입원환자 상태파악 및 보고 ▲혈액 검체채취 ▲심전도 ▲초음파 ▲엑스레이 ▲부목 ▲단순 드레싱 ▲고주파온열치료 ▲체외충격파쇄석술 ▲처방된 마취제 투여 ▲응급상황 심폐소생술 ▲치료부작용 보고 ▲심전도 모니터링 ▲환자 보호자 교육 및 상담 ▲환자 자조모임 운영 등을 꼽았다.

한의계는 지난해 말 대법원의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합법 판결이 나오면서 '맑음'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예고된 대법원의 뇌파계 한의사 사용 합법 여부 판결도 한의계에 긍정적으로 결정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편,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합법 판결 후 의료계 내에서 의료일원화 논의 움직임이 일고 복지부도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상황에서 한의계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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