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학회 조사 결과, 전공의 36.4% 감소
지역부터 무너져…상급종합·국립대병원도 ‘흔들’
“법 이상의 국가적 특단 없이는 재도약 불가능”
의정 갈등을 겪으면서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 10명 중 4명이 수련을 포기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수련 받던 전공의들이었다. 이대로면 지역 흉부외과 수련체계는 조만간 붕괴된다. 그 영향이 수도권으로 번져 심장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가 ‘국가적 재건 플랜’을 요구하는 이유다.
흉부외과학회는 25일 흉부외과 전공의 현황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 의정 갈등 이전 총 107명이던 전공의는 현재 68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기피과’인 흉부외과를 선택해 수련을 받던 의사 39명(36.4%)은 의정 갈등을 겪은 뒤 올해 8월말 진행된 하반기 모집에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의정 갈등 이후 흉부외과 1년 차는 28명에서 20명으로, 2년 차는 38명에서 22명, 3년 차 17명에서 12명으로 줄었다. 4년 차는 24명에서 14명으로 줄어 내년에 배출되는 신규 흉부외과 전문의는 최대 14명뿐이다. 올해 배출된 흉부외과 전문의는 6명에 불과했다.
전체 흉부외과 전문의 수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흉부외과는 지난 2024년부터 신규 전문의보다 은퇴자가 더 많았다. 의정 갈등은 이 격차를 더 벌려 연간 감소하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10~20명 수준에서 30~40명 수준으로 증가시켰다.
흉부외과학회는 “수련 질 저하와 단기 공백을 넘어 지난 2022년부터 진행된 전문의 자연감소를 (의정 갈등이) 가속시켜 ‘유입보다 유출이 많은 구조’를 고착화했다”며 “중증·응급 진료 역량 붕괴와 국민 건강의 중대한 위험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역 흉부외과 전공의 반토막…"이미 임계치 돌파"
지역 상황은 더 나빠졌다. 수도권 흉부외과 전공의는 의정 갈등 이후 79명에서 54명으로 31.6% 감소했으며 지역은 28명에서 14명으로 절반이나 줄었다.
이미 강원과 충북, 제주 지역은 흉부외과 전공의가 한명도 없다. 흉부외과 수련체계를 유지하던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지역도 의정 갈등을 겪으며 전공의가 3분의 1로 줄었다. 대구·경북 지역은 10명이던 흉부외과 전공의가 3명으로, 부·울·경은 8명에서 3명으로 감소했다. 전남·광주 지역도 흉부외과 전공의 3명 가운데 1명만 남았다.
결국 수도권을 제외하면 흉부외과 전공의 1~4년 차가 모두 있는 수련병원은 없는 상황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흉부외과 전공의가 있는 수련병원은 5곳에서 3곳으로 줄었으며 부·울·경도 4곳에서 2곳으로 반토막 났다.
흉부외과학회는 지방 수련병원 흉부외과가 연차별 교육 기능을 잃었다며 “전통적 수련체계 붕괴가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수도권 야간·응급 수술 라인 유지와 교육 인증을 동시에 위협하고 지역 우수 인력 유출을 가속하는 구조적 붕괴를 의미한다”고 했다.
“이미 임계치를 돌파했다”고도 했다. 심장 수술을 하는 병원 89곳 중 흉부외과 전공의가 1명이라도 있는 곳은 의정 갈등을 겪으며 28곳에서 21곳으로 줄었다. 심장 수술을 하는 병원의 76.4%(68곳)는 흉부외과 전공의가 한 명도 없는 상태다.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 상황도 마찬가지다.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55.3%인 26곳은 흉부외과 전공의가 없다. 상급종합병원 21곳에만 흉부외과 전공의가 있다. 국립대병원도 17곳(분원 포함) 중 9곳(52.9%)에만 흉부외과 전공의가 있다.
전공의 다년차(2개년차 이상) 수련이 가능한 병원도 14곳에서 9곳으로 줄었다. 9곳 중 6곳은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이며 나머지는 부·울·경 1곳과 대전·충남 2곳이다. 대구·경북·전남·광주 지역은 다년차 수련이 가능한 병원이 없다.
학회 "국가적 특단책 없이 재도약 불가능"
흉부외과학회는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 모두에서 흉부외과 수련 기능이 광범위하게 소실된 사실이 확인됐다”며 “지역거점 필수의료 강화가 흉부외과 분야에서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수도권을 제외한 다수 권역에서 1~4년 차를 모두 갖춘 수련병원은 사실상 전무하고 다수 병원이 ‘1인 전공의 병원’으로 전락했다”며 “대체 불가능한 흉부외과 분야의 야간·응급 수술 라인과 교육 인증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흉부외과학회는 “의정 갈등은 흉부외과 인력·수련의 공급을 사실상 멈추게 했다”며 이제라도 흉부외과를 살리려면 정부와 의료전문가들이 모여 긴급 비상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창현 이사장(서울대병원)은 “수년간 학회가 앞장서 재건에 매달린 결과 2023년에는 20년 만에 전공의 지원자가 40명대로 회복돼 반등을 기대했으나 의정 갈등 이후 필수의료 기피가 심화됐다”며 “지역 전공의 이탈·미복귀가 이어져 지역 수련체계는 무너지고 있다. 국가적 특단책 없이 재도약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흉부외과학회는 “의정 갈등 여파가 가장 약한 고리인 지역과 필수의료를 강타했고 자력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논의하고 있는 필수의료법만으로는 이미 붕괴된 지역 기반을 복구할 힘이 부족하다. 법 이상의 비상대책, 국가 실태조사, 즉각 지원이 즉시 가동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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