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연구진, 31개국 비교 분석해 국제학술지 발표
건보 자료 분석 결과, 환자 감소에도 의료비는 증가
코로나19 팬데믹은 단순히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피해에 그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심뇌혈관질환, 당뇨병, 정신질환 등 비감염성 질환의 사망률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경희대 약대 서혜선 교수 연구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사망률과 의료 이용, 질병 부담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Lancet’ 자매지 ‘eClinicalMedicine’에 발표했다. 사망률은 31개국 데이터를, 의료이용과 질병 부담은 한국 건강보험 청구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지난 2014년부터 2022년까지 31개국에서 수집한 20개 질환군 관련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팬데믹 이후 31개국 중 27개국에서 최소 1개 질환 사망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했다. 특히 심혈관질환 사망률 증가가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2020년 1월까지를 팬데믹 이전으로, 2020년 2월 이후를 팬데믹 기간으로 분류했다.
헝가리는 팬데믹 기간 순환기계 질환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매달 평균 0.017명씩 증가했다. 리투아니아 역시 같은 수준의 증가세가 나타났다. 한국은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작아 월평균 0.0004명 증가에 그쳤지만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한 수준이었다. 일본은 2020년 초반 순환기계 질환을 포함해 여러 질환 사망률이 오히려 줄었으나 이후 다시 상승세로 전환됐다.
이 밖에도 허혈성 심장질환은 9개국에서, ▲당뇨병 13개국 ▲치매 11개국 ▲폐렴 8개국 ▲간질환(간경변 포함) 7개국 ▲신부전 9개국에서 팬데믹 기간 사망률이 증가했다.
한국도 팬데믹 여파가 더욱 뚜렷했다. 건강보험 청구자료를 분석한 결과, 팬데믹 기간 감염병, 호흡기질환 등 13개 질환군에서 환자 수가 줄었고, 8개 질환군에서 외래 방문이 감소했다. 입원일수가 감소한 질환은 감염병, 내분비·대사, 산부인과 질환 등 12개 질환군이었다.
그러나 암, 정신질환, 선천기형, 설명되지 않는 증상 환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특히 정신질환은 초기에는 줄었다가 이후 빠르게 증가했으며, 양극성 장애와 섭식장애, 월경장애 같은 세부 질환은 팬데믹 이후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의료비도 흥미로운 결과를 보였다. 환자 수는 줄었는데도 암, 신경계, 심혈관계, 호흡기, 비뇨기, 안과 질환에서 총 의료비가 팬데믹 기간 증가했다. 이후에도 안과, 심혈관계, 비뇨기 질환은 의료비가 꾸준히 늘었다. 특히 신경계, 호흡기, 산부인과 등 8개 질환군에서는 1인당 의료비가 팬데믹 기간 곧바로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를 경증 환자는 병원에 오지 못하고, 중증 환자 중심으로 진료가 이뤄진 결과로 해석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가 감염병 피해에 그치지 않고 만성질환과 정신질환 사망과 부담을 동시에 키운다는 점을 다국가 데이터를 통해 처음 입증했다는 데 의의를 뒀다. 국가별 차이가 크다는 점도 드러나 획일적인 방역 정책의 한계를 보여줬으며, 팬데믹이 여성 건강과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향후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진은 “보건의료체계의 회복탄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팬데믹 동안 만성질환 관리가 중단되지 않도록 진료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는 원격 모니터링, 가정 기반 진료, 의약품 전달 체계 간소화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많은 국가가 여전히 보건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어 효과적인 감염병 대응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공중보건 인력을 강화하고 이해관계자 간 소통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도 했다.
서 교수는 “이번 연구는 COVID-19 팬데믹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질환과 의료 이용에 미친 영향을 국가 간의 비교를 통해 종합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성과”라며 “향후 공중보건 위기 대응 정책 설정에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경희대 규제과학과 최경선 박사와 장민설 학생, 서울의대 박상준 교수, 경성대 약대 김시인 교수가 참여했다.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 ‘Impact of COVID-19 on disease-specific mortality, healthcare resource utilization, and disease burden across a population over 1 billion in 31 countries: an interrupted time-series analysis’는 지난 7월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