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R&D, 튀는 의사들③]강남세브란스병원 김병훈 교수
KAIST 공학 박사 취득 후 재활 앱 ‘MORA’ 개발 참여
“기술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 의료 기여 방안 고민해야”
의료 분야 연구개발의 힘은 임상에 있다고 말하는 의사들이 있다. 이들은 임상 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한다. ‘이색 R&D, 튀는 의사들’은 임상과 R&D 분야에서 모두 성과를 내고 있는 의사들의 이야기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근골격계 질환 환자의 재활을 돕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환자들도 진료한다. 진료실과 알고리즘 사이를 넘나드는 이 의사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병훈 교수다.
김 교수가 AI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전공의 시절 접한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였다. fMRI는 뇌를 MRI로 찍어 혈류 변화를 측정해 신경 활성 상태를 추론한다. 관련 분야를 더 알고 싶었던 김 교수는 전공의 때 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어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에 들어갔다. “눈 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기분이었다”는 김 교수는 본질을 보기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고민했고, 결국 의료영상 분야를 연구하기로 했다. 그렇게 KAIST로 갔고 4년 만에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AI 분야 연구는 그를 예상치 못한 길로 안내했다. 재활의학 분야다. 김 교수는 ‘에버엑스(EverEx)’에 합류해 근골격계 질환 환자의 재활치료를 돕는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MORA’ 개발에 참여했다. 에버엑스는 정형외과 전문의인 윤찬 대표이사가 만든 스타트업이다.
MORA는 환자가 집에서도 의료진이 처방한 재활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MORA Vu, MORA Ex, MORA Care, MORA Cure 등이 있다. 이 중 MORA Vu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은 의료기기로 AI 기반 자세 추정 기술로 스마트폰 카메라로 환자의 움직임을 촬영하고 분석해 정확한 운동 자세와 관절 가동 범위(Range of Motion, ROM)를 평가한다. 또 환자의 운동 수행률과 통증 변화를 기록해 의료진이 치료 경과를 추적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지원한다.
김 교수는 MORA 개발 과정에 공학자로서 AI 기술 분야를 담당했다. 청년의사와 만난 김 교수는 재활 분야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개발에 ‘AI 전문가’로 참여했지만 “정신건강의학 분야에도 응용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전공 분야로 확대할 계획도 이야기했다.
- MORA 개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가.
박사 과정에서 fMRI 데이터에 인공지능 분석 기법을 적용하는 연구를 했고, 나름 성과도 있었다. 당시 연구 내용을 인공지능 관련 학회에서 발표했는데, 그게 계기가 됐다. MORA 개발팀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위한 재활 앱을 만들고 있었고, AI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재활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교정하는 과정이어서 흥미가 있었다. AI 분야 연구를 확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
– 개발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
AI 기술 개발 파트를 맡았다. 특히 관절 가동 범위를 추정하거나 운동 자세를 분석하는 AI 모델 개발에 집중했다. 단순히 앱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정량화된 재활 평가가 가능하도록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데 주력했다.
– 정신과 전문의인데 재활치료 앱 개발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공학자로서 흥미를 느낀 것인가.
통증은 단순히 신체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만성 통증에는 심리적 요인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통증 환자 중에는 우울, 불안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재활 앱 안에도 인지행동치료(CBT) 요소를 일부 넣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도 충분히 연관성을 느낄 수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면 전공인 정신건강의학 분야에도 적용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 재활치료 앱 관련 기술을 정신건강의학 분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
언어모델이나 컴퓨터 비전 기술(컴퓨터가 이미지나 영상을 보고 인간처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AI 기술)이 더 정교해지면 정신과 진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면담 장면을 AI가 분석해 환자의 표정, 자세, 대화 패턴에서 심리적 단서를 추출할 수도 있다. 병원 차원에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 의대생 대상 ‘의사개발자 부트캠프’를 지난 2023년과 2024년 개최하기도 했다.
허준녕 교수와 함께 했던 프로젝트다. 의대생들이 개발과 AI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팀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했다. 의대생들이 팀을 이뤄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좋은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입(Prototype)으로 개발해 내는 의대생들을 보며 감탄했다. 의료 현장에서 기술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체감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예전보다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의대생이 많아졌다. 부트캠프에서도 그런 흐름을 확실히 느꼈다.
– 그런 관심이 R&D 참여나 의사과학자 육성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학생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와 분위기가 중요하다. 예전에는 '의대 졸업하면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 같은 고정된 루트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다른 길도 있다는 걸 교육과정이나 주변 환경을 통해 미리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의대 졸업 후 공학을 배우기도 하고, 반대로 공학을 하다 의대를 선택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다양한 진로가 열려 있다는 걸 학생 때부터 알 수 있게 해주는 교육 환경이다. 억지로 연구를 하라는 게 아니라, 경험을 해보고 나와 맞는지를 판단할 기회를 주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보는가.
당연히 필요하다. 특히 초기 연구자나 학생들이 실험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소규모 연구비 지원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요즘 국책과제는 대규모 중심으로 가는 추세인데, 그런 구조에서는 막 시작하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유연한 지원 제도가 필요하다.
–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의대생이나 젊은 의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그 자체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빨리 정상화되길 바란다. 저보다 똑똑한 후배들이어서 해줄 말이 많지는 않지만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다. 의사라는 직업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보람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는, 그 기술이 어떻게 의료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