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R&D, 튀는 의사들②]중앙대광명병원 허준녕 교수
군의관 시절 코로나 진단·분류앱 개발…MIT ‘젊은혁신가’
경동맥 청진 아이디어 얻어 뇌졸중 예방 ‘Carotid.AI’ 개발

의료 분야 연구개발의 힘은 임상에 있다고 말하는 의사들이 있다. 이들은 임상 현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한다. ‘이색 R&D, 튀는 의사들’은 임상과 R&D 분야에서 모두 성과를 내고 있는 의사들의 이야기다.

진료하는 틈틈이 환자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의사가 있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그림도, 사용하는 도구도 일반적이지 않다. 그는 컴퓨터로 환자에게 필요한 프로그래밍을 한다. 중앙대광명병원 신경과 허준녕 교수는 이 과정을 “그림을 그린다”고 표현했다.

허 교수가 그린 그림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게 ‘코로나19 환자 중증도 분류앱’과 진단앱인 ‘코로나19 체크업(COVID-19 CheckUp)’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한 지난 2020년 당시 군의관이었던 허 교수가 동료 군의관과 함께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앱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혼돈에 빠진 환자와 의료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했다. 허 교수는 그 공을 인정받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코로나19 대응 유공 표창을 받았다.

제대 후 민간인 신분으로 의료 현장에 복귀한 허 교수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 스마트폰으로 경동맥 협착 여부를 검사해 뇌줄중을 예방하는 앱이다. 경동맥 협착은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는 대표적인 위험 요소이지만 특별한 증상이 없다. 허 교수는 혈관이 좁아지면 호수를 누를 때 나는 소리처럼 이상잡음이 생긴다는 데 착안해 ‘Carotid.AI’를 개발했다. 사용법도 간단하다. 앱을 실행한 뒤 스마트폰 마이크 부분을 경동맥이 있는 목 부위에 가져다 대면된다. 이 앱은 현재 임상시험 연구 목적으로 승인된 상태다.

허 교수는 지난 2021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가 선정한 ‘35세 미만 최고 혁신가(Innovators Under 35)’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35세 미만 최고 혁신가로 선정된 한국인은 13명이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가 발간하는 세계적인 IT 전문 잡지다.

허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환자 진료를 하면서 그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당사자이기에 부족한 부분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실제 임상 현장에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툴도 많이 개발돼 있는 상태여서 “누구나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가 되기 전 IT 분야를 전공했을 것 같은 허 교수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한 뒤 연세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중앙대광명병원 신경과 허준녕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진단·분류앱, 뇌졸중 예방 앱 등을 개발하게 된 이유와 과정 등을 이야기했다(ⓒ청년의사).
중앙대광명병원 신경과 허준녕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진단·분류앱, 뇌졸중 예방 앱 등을 개발하게 된 이유와 과정 등을 이야기했다(ⓒ청년의사).

-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초등학교 시절 잠시 미국에 있었을 때 ‘world wide web(www)’으로 보는 사이트들이 나오는 걸 보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걸 보고 웹사이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이 취미인 사람이 있듯이 나에게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새로운 걸 창조해내는 취미가 생겼다. 그 자체도 그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상상하거나 느끼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듯이 저는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디자인하고 이를 구현하는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초등학교 때부터 남들 몰래 해 오던 비밀 취미였다.

- 상용화된 앱은 군의관 시절 개발한 코라나19 관련 앱이 최초인가.

공대생 시절 어떤 과목을 몇 시간 공부했는지 체크하는 ‘스터디메이트’라는 앱을 개발한 적 있다. 당시 다운로드 수로 우리나라 2위까지 했었다. 과목별로 공부 시간 등을 분석해주는 앱이었다. 1,000원짜리 유료 앱이었는데도 많은 사람이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했다. 공대 다닐 때 창업을 시도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벤처 캐피탈 대표였던 교수가 강의하는 교양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각자 프로젝트를 제출하고 가상 투자를 하도록 했다. 그때 낸 프로젝트를 보더니 교수가 ‘투자할 테니 사업화해보라’고 해서 처음으로 창업을 시도했었다.

- 어떤 아이템이었나.

‘핀노트’라는 거였는데 지금으로 보면 클라우드 같은 시스템이다. 당시에는 클라우드가 없어서 컴퓨터로 워드 작업을 하면 USB에 넣거나 이메일로 보내야 했다. 그런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자기 컴퓨터에 들어가서 바로 파일을 업로드하고 메모도 할 수 있는 거였다. 주변 사람들이 많이 썼다. 당시 클라우드 개념에 대한 보고서도 썼다.

- Carotid.AI는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

뇌경색은 발생하면 장애가 남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 예방 가능한 것 중 하나가 경동맥 협착이다. 경동맥에 지방이 쌓여서 좁아지면 스텐트 삽입술을 한다. 하지만 경동맥 협착은 특별한 증상이 없다. 경동맥 협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찾기는 힘들다. 집에서 편하게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때가 펠로우(전임의) 시절이었는데 담당 교수가 회진할 때 환자 목을 청진하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뇌졸중 환자 진찰법 중 하나가 청진이다. 경동맥 협착으로 잡음이 생기기 때문에 청진기를 목에 대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새는 MRI나 CT를 다 찍기 때문에 청진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교수는 청진기를 사용해 경동맥 소리를 듣더라. 그 모습을 보고 스마트폰 마이크로도 잘 들릴지 않을까 싶었다. 회진이 끝난 후 다시 돌아가서 스마트폰 마이크를 대 봤더니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깜짝 놀랐다. 바로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를 받고 연구를 시작했다. 환자들의 경동맥 소리를 녹음해 와서 들으면서 소름 돋았던 기억이 난다.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집에서도 간편하게 경동맥 협착 여부를 알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신났다.

- 펠로우 시절이었던 지난 2021년 하반기 개발을 시작해 2024년 4월경 앱이 나왔다. 2년 넘게 걸린 이유가 있나.

IRB 심사를 받는데 몇 개월이 걸렸고 환자 한명 한명에게 동의서를 받고 녹음을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들었다. 이 과정이 쉽지 않아 거의 2년 동안 경정맥 녹음 소리만 수집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앱을 만들었고 의료기기로 사용화하기 위한 임상시험를 하고 있다. 500~600명의 데이터가 쌓였지만 최대 10만명이 목표이기에 아직 갈 길이 멀다.

- Carotid.AI는 스마트폰 중에서도 아이폰만 사용 가능하다. 왜 그런가.

마이크가 있는 면이 평평해야 수음의 질도 고르다. 아이폰은 기종에 상관없이 마이크가 있는 면이 평평하지만 갤럭시 등 안드로이드 폰들은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마이크 면이 기종마다 다르게 생겼고 그렇게 되면 수음도 달라진다. 테스트도 해봤지만 예측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아이폰만 하기로 했다. 안드로이드 기반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은 고민 중이다.

- 현재 연구하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유전체에 관심이 있다. 유전자 검사 비용이 싸져서 접근성이 높아졌다. 20만원 정도면 홀게놈 시퀀싱(Whole Genome Sequencing)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이걸 두고 100만원 넘는 검사를 또 한다. 그래서 개인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얻은 홀게놈 시퀀싱을 스마트폰에 넣고 다니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유전자에 따라 더 효과 있는 약물도 있다. 의사가 별도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고 환자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는 유전자 데이터를 보고 어떤 약을 쓸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정밀의료를 말할 때 유전자를 빼 놓을 수 없다. 홀게놈 시퀀싱을 클라우드에 올리는 방안도 시도했지만 개인정보보호와 서비 유지 비용 등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개인이 스마트폰에 저장해 가지고 다니면서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방식에 대한 특허도 냈다.

- 한국 의료 현실에서 진료와 연구개발을 함께 하는 게 쉽지는 않다(허 교수는 이날도 새벽까지 환자를 수술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인터뷰를 해야 했다).

취미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디지털 분야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진료에 접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다들 힘들어서 연구하기도 쉽지 않다.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하기 힘들다. 쓸모 있는 기술이나 임상에 적용하면 도움이 되겠다 싶은 기술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특별한 건 없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겠는가.

- 지난 2023년과 2024년 의대생 대상 ‘의사개발자 부트캠프’도 진행했다.

학생들이 ‘어떻게 프로그래밍을 잘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였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초등학생 때부터 하지 않으면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더라.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한 번 공부해보면 쉽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직접 공부해서 만들어보면 ‘별거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의대생 10명이 참여하는 캠프를 마련했다. 공대 시절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가상 투자까지 하도록 했던 수업이 부트캠프의 동기가 됐다. 웹사이트도 만들지 못했던 학생들만 선정했다. 그 학생들이 캠프가 끝날 때는 앱과 웹사이트를 다 만들 줄 알게 됐다. 정말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은 있지만 ‘내 길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의사들도 많다. 그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될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디지털 헬스케어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하고 싶지만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못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ChatGPT 같은 게 나와서 뭐든지 하기 쉬운 시대가 됐다. 이미 나온 기술을 활용해서 공부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배울 수 있는 툴은 너무 많다. 궁금한 부분부터 하나씩 해 나가면 된다. 나도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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